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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문화 들춰보기: 나주 배 나무상자와 수출배 상자 (사)한국농어촌관광학회 부학회장겸 학술지 편집위원장 허북구 2022-06-30
배영래 jnnews.co.kr@hanmail.net

마차로 운반하는 나주배 상자[나주=전남인터넷신문]나주배박물관 1층에는 나무상자가 있다. 그 상자는 요즘 과수원이나 청과상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이지만 과거에 나주배를 수확, 저장 및 유통 시에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배를 수확하거나 판매상들이 배를 취급할 때는 주로 광주리를 이용했다. 그러나 나주에서 발달한 반지하 및 지하 저장고에 배를 저장할 때라든지 수출할 때는 나무 상자를 이용했다.

 

2022년 3월 12일 나주시 다시면 동곡리 월성마을 배 과수원에서 인터뷰를 한 정0심(1933년생) 씨는 “옛날에 배를 지하 저장고에 저장할 때는 나무 괴짝(상자)에 담아서 저장했다.”라고 제보했다.

 

2022년 3월 7일에 나주시 금천면 신가리 배 과수원에서 인터뷰를 한 박0덕(1944년생) 씨는 “결혼 전에 집에서는 어른 키만큼 파서 만든 지하 저장고가 있었는데, 만삼길 배를 나무상자에 담아 저장했으며, 어른들이 이것을 들고 지하로 오르고 내리는 것을 보았다”라고 제보했다.

 

2022년 3월 7일에 나주시 금천면 수락촌 배 과수원에서 인터뷰 한 문0례(1947년생) 씨는 “시집와서 지하 저장고에 배를 괴짝(상지)에 담아서 저장했는데, 상자가 무거워 저장고에 저장하고, 꺼내는 것이 힘들었다.”라고 제보했다.

 

2022년 3월 11일 나주시 다시면 동곡리 동촌마을 자택에서 인터뷰 한 문0남(1949년생) 씨는 “친정은 나주시 송월동인데 배를 보관할 때는 상자에 담은 다음 위에서 왕겨를 부었다. 그러면 왕겨가 배 사이로 흘러내렸으며, 보온이 되었다. 즉 왕겨를 저장할 때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라는 제보를 했다.

 

2022년 3월 12일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에서 인터뷰 한 김0숙(1955년생) 씨는 “어릴 때 영산포 대박촌 외갓집에서 살았는데, 배를 나무상자에 담아서 지하 저장고에 쌓아 놓았으며, 꺼낼 때는 지게로 지고 나왔다.”라고 제보했다.

 

나주 배 농가에서 나무 상자는 이처럼 저장할 때 담는 용기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만삼길 기준으로 1상자에 20개 정도 들어갔으며, 1상자당 무게는 20-23kg 정도 되었다는 제보가 있다.

 

나주 배 농가에서 일제 강점기 때부터 사용된 나무상자는 1990년대 말까지도 사용되었다. 2022년 3월 14일에 노안면 장동리 장림마을에 인터뷰한 김0학(1963년생) 씨에 의하면 “1990년대 말쯤 플라스틱 컨테이너가 나와 배를 30kg 정도씩 담았다. 수출배는 종이로 감싼 다음 나무상자에 담았으며, 배와 배 틈 사이는 왕겨를 채웠다.”라고 제보했다. 

 

1960년대 중반 나무 상자에 담겨진 수출용 배를 마차에 싣고 나주역으로 운송하는 사진(제공: 나주문화원 윤여정 부원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나무상자는 나주 배 산업에서 중요한 자재였다.

 

나무 상자가 나주 배 재배 농가에서 이렇게 많이 사용됨에 따라 나주군과물조합(후에 나주배원예조합이 됨)에서는 상자용 나무를 유통시켰으며, 배 재배 농가에서는 이것을 구입 후 상자를 짰다. 따라서 배 재배 농가에서는 봉투 만들기뿐만 아니라 상자를 짜는 것도 부수적인 일이었는데,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아이들까지도 동원되어 하교 후나 쉬는 날에는 상자 짜는 일을 했다.

 

나주 배에서 나무 상자는 재료, 제조처, 크기, 용도, 유통, 이용 방법, 띠지 등이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 많은 사연이 있으며, 나주 배 재배 역사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 따라 나주배박물관에 나무상자가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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