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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의 산방야화(4) "음덕(陰德)"
  • 기사등록 2017-08-21 08: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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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송의 신종황제 치하의 정치가로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여 구법을 주창하면서 자치통감을 저술하였던 사마온(司馬溫)은 “돈을 모아 자손에게 남겨준다 하여도 반드시 지킨다는 보장이 없고, 귀한 책을 모아 남겨준다 해도 다 읽는다고 볼 수가 없다. 차라리 남모르는 가운데 음덕(陰德)을 쌓아 자손을 위하는 계책으로 삼느니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무릇 훌륭한 뜻을 품었던 선비들은 “선을 행하고도 그 이익을 보지 못하는 것은 풀 속의 동과(東瓜)와도 같아서 모르는 가운데 절로 자라나고, 악을 행하고도 그 손해를 보지 않음은 뜰 앞의 봄눈과도 같아 반드시 남모르게 소멸 한다”면서 오히려 혼자 있을 때를 더욱 삼가여 고귀한 기품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형주자사 양진은 왕밀이라는 사람이 깊은 밤을 틈타 은밀히 어려운 일을 부탁하기 위하여 황금 10근을 바치면서 지금은 다른 사람이 없으니 염려 말고 거두도록 권하자,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아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일거에 거절을 하였다 합니다.

 

속담에 적선한 집에 남은 경사가 있다는 말과 같이 옛 선비들은 자손대대로 잘 살 수 있도록 복을 구하는 방책으로 남이 모르는 가운데 선행을 통하여 인덕을 베푸는 일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조선 말경에 조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장가간 첫 날밤인데 모든 하객들이 흩어지고 그야말로 인생의 새 출발을 시작하여 신랑 신부가 화촉을 밝히려 하는 동안 갑자기 신부가 복통을 일으켜 괴로워하더니만 느닷없는 사내아이를 분만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당연히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어야 함에도 사나이는 침착하게 갓난아이를 삼베 포대에 정성껏 싸서 담을 넘어 다리 밑 안전한 곳에 놓고서는 은밀하게 신방으로 되돌아 온 것입니다.

 

갑자기 신랑이 배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자 장모가 급히 깨어 일어나 무슨 일이냐고 묻자 다짜고짜 내 배에는 약이 미역국 밖에 없다고 소리를 지르니 혼비백산한 장모는 부랴부랴 미역국을 끓이고 뜨거운 밥을 지어 들여보낸 것입니다.

 

평생 동안 수치심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을뿐더러 집안이 망신을 당할 절체절명의 두려운 순간에 이를 감추어준 것도 모자라 미역국까지 끓이도록 해주니 그야말로 감격할 따름입니다.

 

자신과 모든 사람을 속이고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신부에게 따뜻한 국을 먹도록 권하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신부는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신랑의 지극한 은덕을 가슴속 깊이 새기는 것입니다.

 

조씨 신랑은 새벽 같이 일어나 산책을 하는 시늉을 하면서 하인을 불러 다리 밑에서 이상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니 가보자고 하더니 깜짝 놀라면서 경사스런 일 끝에 우연히 마주친 인연으로 불쌍한 생명이니 키워야 한다면서 집으로 데려온 것입니다.

 

조씨는 운명처럼 다가선 신부와 어린 생명과의 사이에 극적으로 전개된 최악의 순간을 침착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최선의 합일점을 찾아 자신과 신부와 어린 아기에게 닥친 불행을 지혜로써 봉합하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일가를 이룬 조씨는 데려온 아들과 새로이 낳은 자식들을 조금의 차별도 없이 극진하게 대하고 이에 신부는 감읍하고 신랑의 의연한 태도에 백골이 난망하니 온갖 정성으로 남편을 모시면서 어언 17년여의 무상한 세월이 꿈같이 흘러갔습니다.

 

가슴에 수도 없는 번민과 애증의 고뇌를 되새기던 여인은 눈물을 머금고 장성한 아들을 불러 자신이 한때의 잘못으로 이웃 총각과의 불륜을 저질러 기구한 숙명으로 출산하였는데 이를 한 치의 책망과 불평 한마디 없이 거두어 키워준 의인의 은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토로를 하였습니다.

 

만감이 교차 하였을 문제의 아들은 자신에게 닥친 출생의 비밀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거두어 준 의부에 대한 경외심으로 몇 날을 고민하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떠나게 됩니다.

 

세월은 이 세상의 모든 아픔과 번민을 부드러운 손길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인내심으로 모든 것을 품어 치유를 하는데 어언 또다시 20여년이 바람 같이 흘러 조씨도 세상과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집안의 어른이 운명을 하였으니 상제를 비롯한 모두가 슬픔에 젖어 예법에 의하여 지극정성으로 예를 올리고 장례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홀연히 대문 앞에 중년의 수려한 승려 한사람이 나타나 목탁을 두드립니다.

 

조상을 마친 승려는 조용히 상주를 찾아 근 방 바다위에 무인도 하나가 있는데 그 섬 안에는 백 명의 자손과 천명의 증손들이 길이 번창하여 대를 이어 정승판서가 나타날 명당자리가 있으니 자손만대의 광영을 위하여 선친의 유해를 그곳에 모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외모로 보아 도가 높은 승려로 보이고 권하는 태도가 매우 진지한데다 더 할 나위 없는 명당자리라는 데 마음이 쏠려 친족들과 의논하여 승려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조씨의 집안은 날로 번창하고 현명한 후손들이 대를 이어 조선 말기의 당당한 세도가로써 수도 없는 학자와 관료를 배출한 명문이 되었습니다.

 

문제의 승려는 조씨 부인이 첫날밤에 분만하여 17년간 길러 주었던 조씨의 의붓 아들로 집을 떠나 곧바로 불가에 귀의하여 풍수지리에 전념하고 전국을 두루 섭렵하여 조씨의 음덕에 보은하기 위하여 최고의 명당자리를 미리 마련해 두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길흉과 화복이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으로 이어지고 인간의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여 곧바로 소멸이 되거나 변하지 않는다면 맑은 마음과 좋은 생각으로 모든 사물을 향하는 진솔한 정념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음덕으로 승화되어 나와 후손들에게 영광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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