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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홍도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홍도원추리의 가치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0-08-04 10: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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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흑산면 홍도가 노란 꽃으로 뒤덮였다. 원추리의 한 종류인 홍도원추리가 섬 곳곳에 피어서이다. 원추리는 1802년에 이가환이 초고를 쓴 물보(物譜)에서 ‘원츌리’로 기록되어 있다. 1820년대 유희가 여러 가지의 물명을 모아 한글 및 한문으로 풀이하여 만든 물명고(物名攷)에는 ‘원쵸리’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근심을 잊게 하는 풀이다’라는 뜻의 중국명인 훤초(萱草)가 변하여 된 이름이다.

 

원추리는 동아시아 원산의 백합과 다년초이다. 6-8월이 되면 잎 사이에서 나온 꽃대에서 나팔 모양의 주황색 꽃을 피운다. 원추리 학명은 Hemerocallis fulva이다. 속명 Hemerocallis는 그리스어의 hemera(하루)와 callos(아름다움)가 어원으로 아름다운 꽃이 하루 만에 시드는 특징에서 유래된 것이다. 종명 fulva는 주황색이라는 뜻으로 주황색 꽃에서 유래된 것이다.

 

홍도원추리의 학명은 Hemerocallis hongdoensis 이다. 속명은 원추리와 같으며, 종명은 홍도에서 발견된 데서 유래된 것이다. 원추리의 영명은 꽃의 수명이 짧고, 꽃은 백합 같다고 해서 daylily이다. 홍도원추리의 영명은 Hongdo daylily로 홍도의 원추리란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홍도원추리는 학명, 영명 및 한글명에서 알 수 있듯이 홍도에서 발견된 원추리이다. 이름에서부터 이 식물이 홍도 사람들과 함께 오랜 세월 동안 살아 왔음을 알 수 있다. 홍도원추리는 울릉도 사람들이 춘궁기 때 먹고 목숨을 이었다는데서 유래된 명이나물(산마늘)처럼 홍도 사람들에게 먹을거리와 생활용품 소재, 그리고 아름다운 꽃을 통해 근심을 잊게 하는 등 각별한 존재였다.

 

바다로 둘러싸인 홍도 사람들은 육지 주민들이 보릿고개를 겪을 때 원추리 싹과 잎은 나물로, 뿌리는 전분으로 이용하면서 배고픔을 견디어 냈다. 원추리의 어린 순을 밑에 깔고 그 위에 생선을 올려놓고 쪄 먹었던 풍습도 있었다. 원추리 꽃이 지고 날 때쯤이면 원추리 잎을 잘라서 새끼를 꼬아 띠 지붕을 만들었다. 원추리 잎은 배 밧줄, 광주리 등 생활에 필요한 필수 도구를 만드는데도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원추리의 식용 문화는 홍도만의 풍습은 아니다. 조선 중종 22년(1527년)에 최세진(崔世珍)이 지은「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원추리의 중국 이름 훤초(萱草)에 대해 넘나믈로 풀이되어 있다. 이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원추리의 어린 순을 나물로 무쳐먹거나 묵나물 또는 국을 끓여 먹었던 문화는 매우 오래 되었다. 궁중에서는 원추리탕이라는 토장국을 즐겼다는 기록도 있다.

 

중국 명나라 서광계가 1639년에 저술한「농정전서(農政全書)」에는 어린 싹은 삶아서 우려내어 기름과 소금으로 조리하여 먹고, 꽃을 포함하여 잎, 싹 모두를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채소라고 기술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원추리 꽃을 황화채(黃花菜) 및 금침채(金針菜)라고도 하며, 귀중한 요리 재료 중의 하나로 취급된다. 일본에서는 어린 싹을 나물이나 초무침으로 사용하고, 꽃봉오리를 샐러드로도 사용하고 있다. 원추리는 이처럼 해외에서도 식용재료로 이용되어 왔고, 현재도 이용되고 있다.

 

망우초(忘憂草)라고도 불리는 원추리에는 근심을 잊게 하는 약으로서의 이용 및 감상 문화도 있다. 진(晉)나라 장화(張華)가 쓴「박물지(博物誌)」에는 “신농경(神農經)에 가로되 성품을 보양하는 약 중에 근심을 기쁨으로 만드는 것이 원추리이다. 생각하건데 근심을 잊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적혀 있다.

 

연산군의 무오사화(戊午史禍)에 죽은 성종 때의 유신(儒臣)인 권오복(權五福)은 “집에 심은 복숭아는 늙지 않고 뜰에 가꾼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한다”는 시를 남겼다. 꽃 감상 문화는 오늘날에도 일본 후쿠시마현 기타카타시(福島県 喜多方市)의 ‘원추리꽃 축제’ 등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신안군은 지난해 홍도원추리를 ‘제1회 섬 원추리 축제’로 포장해서 내놓았다. 올해는 해변 경관 채색과 환경정비를 하는 등 '제2회 섬 원추리 축제'를 준비했다. 코로나 19로 축제는 취소가 되었고 내년을 기약하게 돼 아쉽지만 콘텐츠의 보강과 홍도원추리의 가치 향상 시간을 갖게 됐다.

 

그 가치를 드높이는 시간은 홍도원추리 꽃을 보여 주기 위해 산책길을 만들고, 마을 지붕을 채색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홍도원추리의 진정한 가치는 고난의 시절에 섬사람들이 원추리에 의지하고, 이용해온 문화에 있다. 채색된 지붕보다는 원추리 잎을 잘라서 새끼를 꼬아 만든 띠 지붕 하나가 더 홍도다움을 살리고, 홍도원추리를 가치 있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사라져 가는 홍도원추리의 식문화, 공예문화, 생활문화, 풍습의 일부와 이야기라도 복원했으면 한다. 그것들은 홍도의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고, 선조들의 삶과 미래 세대를 연결해 주는 끈으로서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전남인터넷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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