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보성은곡다원의 가마솥 수제차와 전남 전통 제다기술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0-09-07 10:28:31
기사수정


[전남인터넷신문]보성군 읍내에서 회천면 율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봇재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를 막 넘으면 길 오른편에 휴계소겸 녹차를 판매하는 은곡녹차 다원이 있다. 지난 늦봄 이곳에서 우전 햇차를 마신 적이 있다.

 

맛이 부럽고 향이 좋아 주인 분에게 출처를 물어보았더니 본인이 직접 만든 수제차라고 했다. 수제 녹차는 차를 덖는 솥과 제다 방법 및 기술에 따른 편차가 크다. 그래서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구체적으로 제다 경력과 어떤 솥을 사용했는지 등 몇 가지에 대해 질문을 했었다.

 

주인(보성은곡다원, 주병석 씨, 61세)에 의하면 그의 부친께서는 1963년에 차밭을 개간한 이래 평생 동안 차를 업(상표명; 춘향차)으로 하셨다고 했다. 주병석 씨 또한 어렸을 때부터 숨은밭골(은곡)이라는 골짜기에서 차나무를 재배하면서 부친으로부터 제다를 배웠고, 대를 이어 다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필자가 마신 녹차는 부친께서 녹차를 덖을 때 사용했던 가마솥으로 덖은 차라고 했다. 가마솥으로 덖은 차라는 말을 듣고, 마신 녹차의 향과 맛이 가마솥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덖음차에서는 차를 덖는 기술과 함께 솥도 매우 중요하고, 가마솥으로 덖은 차만의 고유 맛이 있기 때문이다.  

 


덖음 녹차에서 차를 덖는 과정은 효소가 살청(殺靑, 효소의 상실 또는 불활성화)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살청은 찻잎이 불에 달궈진 쇠에 접촉하면서 쇠의 온도에 의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나 그 원리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고, 솥의 재질, 두께, 크기, 형태와도 관련이 있다. 차가 덖어지는 원리는 솥에 접촉된 아래쪽의 찻잎에서 수증기가 나와서 주변에 있는 찻잎을 찌면서 살청이 된다. 위의 잎은 뚜껑역할을 하므로, 차를 덖을 때는 수증기가 날아가지 않도록 다량의 찻잎을 이용해야 한다. 만약에 적은 양의 찻잎만을 덖게 되면 뚜껑이 없기 때문에 수증기는 대기 중으로 쉽게 날아가며, 그 과정에서 잠열로 온도가 내려가 찻잎은 건조되면서 품질이 떨어진다.

 

찻잎에서 나오는 수증기에 의한 살청효과는 찻잎의 양과 함께 솥의 구조, 크기와도 관련이 있다. 중국의 소수 민족들이 만든 차 중에는 탄 냄새가 나는 차들이 많다. 그 원인은 이들이 평소에 가정에서 사용하는 작은 솥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솥이 작기 때문에 찻잎도 적게 넣어 덖는데, 이 과정에서 찻잎에 함유된 수증기는 증발되면서 잠열에 의해 찻잎의 온도가 상승되지 않는다. 수증기를 잃은 찻잎은 건조되면서 표면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게 되고, 타게 되어 차에서 탄 맛이 나게 된다. 더욱이 이들이 사용하는 솥은 우리나라의 가마솥처럼 위가 좁아서 수증기가 솥 안을 맴도는 구조가 아니라 넓게 되어 있어 쉽게 빠져 나간다.

 

차를 덖을 때 솥의 경사각도 또한 차 맛에 영향을 미친다. 그 사례는 일본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일본에서 덖음차는 명나라 때 전해진 것으로 1700년대에 증제차가 발명되기 전까지 주로 이용되었던 제조법이다. 현재는 일본 전체 차생산량의 1%도 되지 않으며, 주로 큐슈(九州)지역 사가현(佐賀県), 나가사키현(長崎県), 구마모토현(熊本県), 미야자키현(宮崎県)과 시코쿠(四国)의 고치현(高知県)에서 제조되고 있다. 큐슈에서는 차를 덖는 방법은 솥의 기울기에 따라 아오야기(青柳)식과 우레시노(嬉野)식으로 구분된다. 아오야기식은 솥을 수평으로 한 채 차를 덖은 방식으로 쿠마모토, 미야자키에서 행해지는 방식이다. 우레시노식은 솥을 45도 각도로 해서 차를 덖는 방식으로 사가, 나가사키에서 행해지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 방식은 덖음차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찻잎의 무게와 색택, 맛에 영향을 미친다. 차는 덖는 방식에 따라 무게가 달라져 우레시노식의 경우 30-35%가 감소되며, 아오야기식은 40-50%가 감소한다. 차의 형태는 우레시노식으로 제다 한 것의 경우 진주처럼 둥글며, 색택은 황록색이고, 수색은 황색이 짙은데 비해 아오야기식으로 제다한 것은 형태가 다소 길쭉하며, 차의 색은 청록색이고, 수색은 다소 청색기가 있다.

 

차의 덖음용 솥은 찻잎의 수확기에 따라서도 달리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차는 수확기가 늦어질수록 찻잎의 수분이 줄어든다. 찻잎의 수분이 줄어들면 차를 덖을 때 발생하는 수증기의 양이 적어져 수증기에 의한 살청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따라서 덖을 때 솥의 온도를 높여 적은 수분으로도 수증기가 충분히 발생하도록 하는데, 이 때 차의 향이 볶은 콩처럼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일찍 수확해서 수분 함량이 많은 찻잎은 낮은 온도에서도 충분한 양의 수증기가 나와서 살청이 되고, 차 본래의 향과 맛이 난다. 이러한 특성을 아는 제다인들은 차의 수확기에 따라 솥의 형태가 다른 것을 사용해서 차의 품질을 높인다.

 

보성은곡다원(은곡녹차)에서 필자가 마신 차는 대를 이어서 사용해온 가마솥으로 덖은 차였지만, 그곳에서는 차를 덖을 때 반드시 가마솥만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았다. 솥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차맛의 특성을 명확히 알고 있고, 손님들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친으로부터 배워서 오늘날까지 행하고 있는 가마솥제다법에 대한 찬사와 애정은 넘치고 넘쳤고, 기술의 전승을 바라고 있었다.

 

전남에는 보성은곡다원(은곡녹차)에서 가마솥으로 차를 덖어서 원하는 품질의 차를 만들어 왔듯이 오랜 전통과 경험을 바탕으로 특유의 차를 만드는 다인들과 문화가 산재되어 있다. 그 기술과 문화는 많지만 이것을 찾아서 정리하거나 과학적 해석에 의한 이론화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론화 작업이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차별화된 특성과 우수성을 소비자들에게 객관적으로 전하기가 어렵다. 가마솥제다법처럼 우리 입맛, 우리 여건에 맞춰서 축적된 경험에 의해 선발된 제다 기술의 전승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역 학계는 물론 지자체에서도 지역 고유의 제다 기술과 문화를 찾아서 분류하고, 이론화하여 지역의 자산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jnnews.co.kr/news/view.php?idx=286517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확대이미지 영역
  •  기사 이미지 강진 백련사, 동백꽃 후두둑~
  •  기사 이미지 핑크 빛 봄의 미소 .꽃 터널 속으로
  •  기사 이미지 김산 무안군수, 사전투표 첫날 소중한 한 표 행사
전남오픈마켓 메인 왼쪽 2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