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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보리싹떡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1-01-19 08: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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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지난해 눈이 흩날리는 날, 나주에서 보리싹떡을 만들었다. 떡집에서 보리싹떡을 만드는 동안 그곳을 찾은 어르신들은 50여년 만에 보리싹떡을 본다며 많은 관심을 나타내셨다. 떡은 잡지에 소개하기 위해 만든 것이어서 촬영만 끝내고 그곳에 계신 분들에게 나눠 드렸다. 

 

보리싹떡을 만들기 위해 보리싹을 자르고, 씻고, 시루에 떡을 찌는 동안 떡집은 보리싹떡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떡을 드시면서도 맛있다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떡집에는 젊은 분들도 계셨는데 그분들은 보리싹떡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며, 먹어보니 맛있다고 했다. 

 

이날 만든 보리싹떡은 보리싹과 떡가루를 섞은 다음 쪄서 만든 떡으로 과거에는 보리떡이라고 했다. 요즘은 보릿가루를 반죽하여 찐 떡을 보리떡이라고 하지만 과거에는 보리싹을 이용해서 만든 떡이 보리떡이라는 이름을 차지할 정도로 많이 이용되었다. 

 

보리싹떡은 과거에 전남 나주를 비롯해 나주의 인근인 담양, 영암, 영광, 화순, 함평 등지에 많이 이용된 떡으로 겨울철이면 인기가 좋았다. 보통 인절미나 쑥떡이 제사, 설 등 특별한 날이 이용되었다면 보리싹은 간식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2016년 4월 3일 나주시 남평읍 대교리에서 만난 이0자 씨(1936년생)는 아가씨 때 밤이면 친구들과 놀다가 누군가 내일은 보리떡을 해 먹을까 하고 제안을 하면 쌀을 걷어서 떡을 해 먹곤 했다고 하셨다. 보리싹은 낮에 봐놓은 논에서 베어서 이용했었다. 다만, 보리싹을 자를 때는 동이 트기 전(꽃줄기가 신장하기 전, 추대)에 베었다. 추대가 시작되는 봄에 보리싹을 베어버리면 이삭이 생기지 않아 농사를 버리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이렇게 보리싹떡을 많이 해 먹었기 때문에 보리밭 주인들은 보리를 보호하기 위해 보리밭에 머리카락을 뿌렸다. 나주시 남평읍 정광마을의 김0례 어르신(1946년생)에 의하면 “집안 여성들의 머리를 자르거나 이발소에서 머리를 구입해 보리밭에 뿌려 보리싹을 잘라가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나주시 다시면 청림마을의 최0보 어르신(1929년생)에 의하면 “1970년대만 해도 봄철이면 보리밭에 머리카락을 뿌리기 위해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라고 제보했다. 

 

보리싹떡에는 찹쌀을 이용하면 맛있지만 귀해서 멥쌀이나 조(서숙), 보리를 섞어서 만들기도 했다. 보리싹떡을 만드는 방법은 우선 쌀이나 보리 등을 도굿대질(절구에 넣고 절굿대로 분쇄함, 절굿대질)한 것에 소금 간을 한 다음 보리싹을 채취하여 다듬고 씻어서 숭숭 썬 것을 혼합해서 시루에 쪘다. 

 

나주시 다시면 월천리 이0애 씨(1931)는 “보리싹떡은 보리싹을 많이 넣어도 찔긋찔긋하게 맛있었다”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보리싹떡이 맛없다고 할 수 있으나 어른들은 언제 먹어도 맛있고, 옛날의 일까지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다”라고 하셨다. 

 

흩날리는 눈을 보니 지난해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모여서 보리싹떡을 맛있게 드시던 어르신들이 생각났다.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어 다시 보리싹떡을 함께 드셨으면 한다. 동시에 시대 변화와 함께 보리싹떡처럼 전통 음식과 풍습 등 많은 것이 사라지고 있다. 그중에는 현재와 미래에도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도 무관심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찾고 활용방안을 연구해서 고부가가치의 지역 특산자원으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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