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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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정 당신 가시면무덤가도래솔이 되더라도 지금은떠난 빈 자리홀로 지킵니다 그리움 짙으면돌겻잠으로날밤을 새우고 동살잡힐 즈음에야새로운 설움에잠기렵니다 당신 되오시면고즈너기바라보기만 할 뿐 이젠 결코울지 않겠습니다만이놈의 덧정은 어찌하랴 하십니까 2022-10-27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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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이는 결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52년생과 58년생남편과 나는 여섯 살 차이다 앞서가고 있는 남편의 뒤를 밟으며내 삶의 흐름을 가늠한다 몸이 과하지도 않고 음식이 과하지도 않지만남편은 환갑에 다르고 육십대 중반에 또 다르더니이제 70이 되니 더욱 다르다 빤히 날 보던 남편이 “자네는 여전히 젊고 이뻐”한다나는 피식 웃을 ... 2022-10-21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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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허리띠를 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여린 살갗 부벼대던 나무 가지들이바람의 아이를 가졌다 한 줄금 소낙비라도지나는 날에는잡풀들도 껴안고 뒹구는지샛길마저 보이지 않는다 만삭이다터질 듯 무거운 몸 뒤척이다허리띠를 풀고외로워서 이 계절에 빛깔 고운 가을 하나낳을란갑다. 2022-10-13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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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바람길 잃어버린 널 찾아 헤매는 동안가을이 왔다터벅터벅 은백색의 잎 진자작나무 숲, 출렁다리 지나고 나면눈 덮인 겨울거친 바람 속을 걸어가야 하리 함께인 듯 하면서도늘 혼자였던 날들이외롭고 힘겨울 때도 있었지만그때가 내게는 가장 소중한시간들이었음을 깨닫는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늘 반복된 일상들이었지만 그날들이 이토록 그... 2022-10-06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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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배 고단한 항구에는 꼭두새벽이든깊은 밤이어도 가리지 않고부산한 부추김이 끊이지를 않는다밀물과 썰물의 교차로는날이면 날마다 시차를 바꾸면서가거나 오고 오거나 가는데틈새를 비집어 절묘한 순간떠나간 배는 언젠가 돌아올 것이다 무심한 물결이 찰랑대는 바닷가정들었던 사람들 한 척, 두 척, .......희뿌연 화등 하나 길 잡아 추켜들... 2022-09-30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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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날 기다림은 여지없이 무너졌지만훈훈한 기별이라도 흘러들까귓볼 열어놓고 가슴 설렌다 돋보기 위에 확대경을 걸쳐도앞산이 아슴프레 아른거리는 아침,우편함 속에선 전날 늦게 배달된우편물의 잠꼬대가 한창이다 문패가 없어도택배기사의 구둣발소리투박스럽게 다가오는 날코로나와 백신의 숨바꼭질 얘기로시장끼 떼우긴 시기상조다 장... 2022-03-31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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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정표 출렁다리 건너면 동화 같은 그림이다일상의 이정표를 손에서 놔야 보이는서정이 울긋불긋한 시어들이 밀려온다 짓누르던 내 몫의 일손을 멈춰놓고다리를 지나오며 내려놓은 큰 시름이벌겋게 취한 단풍을 스스로 소진 한다 세상의 소음들을 삼켜버린 호숫가에밤새운 물보라가 그 소임 다하는 날가을 길 돌아본 개울, 겨울을 재촉한다 2022-03-24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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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장 돌아가신 지 마흔아홉 번째 봄날벽장 속 빛바랜 보자기를 꺼낸다아버지의 일기장이다 젊은 날의 참회가 기록된 닳고 닳은 일기장먼지 수북하고 안색이 노오랗다 마흔아홉 나이에 훌쩍 떠난손대면 푸석푸석 거리는 아버지 유품아버지가 계신 저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부뚜막에 태운다 “황성 옛 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 2022-03-17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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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에 서 있는 그리움 달은 저 넓은 하늘에 촘촘히 별을 심어 놓았다 갓바위 예술회관 앞데크에 우뚝 선 시 판화를 심연 속으로 삼킬 듯 밀물은 차오르고달빛은 내 뒤를 따라와쏟아지는 기억들이 내면을 적시고 삼학도 앞바다에 그리움들이 노를 젓고 있다 어쩌면 판화에 쓰인 시어처럼내 가슴속에 남아있는 아픔과 사랑그리고 어머니와 걷는 동안 詩속에서 나는... 2022-03-11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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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손을 놓지 못하시는가 잎이 지는 것도 순서가 있다 합니다 역설처럼,맨 먼저 피는 잎이 맨 나중에 지고맨 나중에 피는 잎이서둘러 지는 것도 있습니다 혼신으로 붙들고 있는 것도잎새가 아니라내내 붙들고 지내온 나뭇가지입니다 우리의 생애처럼삶은 애착이겠지요끝끝내 붙든 손을 놓지 않으려는 것이겠지요 함께 어울려 사는 내내제 몸뚱이를 목숨껏 껴안은저... 2022-03-03 김동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