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최근 한 무더운 여름날, 밭에서 일을 하던 농촌 고령자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전해졌다. 언론에 보도된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사고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무거운 농촌의 현실을 담고 있다. 고령자의 과도한 노동, 즉 ‘일중독’은 개별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농촌 복지의 사각지대’로 인식해야 한다.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 농촌의 현실은 다층적이다. 고령자들의 노동 없이는 농촌이 유지되기 어려운 구조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고령 노동이 심각한 건강 문제와 안전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70대, 80대 고령자가 새벽부터 일어나 논밭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체력적 한계의 문제가 아니라 일 자체에 중독된 채 삶의 균형을 잃어가는 고령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일중독은 자신을 혹사하면서도 일을 멈추지 못하고, 노동 외의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심리적·정신적 상태이다. 특히 농촌의 고령자들에게 일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삶의 존재 이유’이자 ‘정체성’과 직결된 경우가 많아서 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과거에는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고령자의 건강을 염려하며 적절히 제동을 걸 수 있었지만, 현재는 고령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이를 제지하거나 말려줄 가족조차 없는 현실이다. “일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다”라는 고령자의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닌 그들의 실존적 불안을 반영한다.
문제는 이러한 고령자의 일중독 상태를 쉽게 인식하거나 치료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고령자 스스로 “나는 일중독이니 치유가 필요하다”고 인지하거나, 자발적으로 치유농장을 방문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치유농장이 일중독으로 의심되는 고령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개별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것도 인력과 예산 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치유농업이라는 우수한 도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혜에서 소외되는 고령자층이 존재하는 것이다.
현재 전국 각지에는 다양한 치유농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농업기반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 완화, 인지기능 향상, 사회적 교류를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이 다수 존재한다. 특히 고령자를 위한 치유농업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회복 중심의 참여’를 통해 신체 기능을 보호하고,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연결망 회복에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장점을 실제 고령자들에게 적용하려면, 보다 체계적인 행정 개입이 필수적이다.
행정기관은 치유농업의 복지적 가치를 재인식하고, 특히 농촌 고령자의 일중독 문제를 예방하고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정책적으로 설계·운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보건소, 농업기술센터, 복지센터 등 지역 기반의 공공기관과 치유농장을 연계한 ‘고령자 맞춤형 치유농업 연계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일정 연령 이상의 고령자들에게 주기적으로 치유농업 프로그램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건강 상태와 생활 습관 등을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또한 마을단위 고령자 실태조사를 통해 ‘잠재적 일중독 대상군’을 선별하고, 이들에게 치유농업을 체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단순히 “일을 그만두세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노동 욕구를 건강하게 전환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정기적인 ‘치유의 날’ 행사나 마을 권역 단위 치유농업 거점 지정도 고민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중독이 단순한 개인 습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질병’으로 이해되고, 이를 복지의 문제로 전환해 접근하는 관점 변화다. 고령자가 일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 즉 노동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농촌의 환경이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령자의 사회적 역할, 공동체 내 참여, 치유적 활동을 장려하는 새로운 농촌복지 모델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농촌 고령자의 일중독은 단지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고립, 불안, 상실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복합적 위험요소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치유농업이라는 도구를 적극 활용하되, 자발적 참여에만 의존하지 않고 행정적 개입과 정책적 지원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치유는 멀리 있지 않다. 단지 그것을 안내하고 연결해 줄 ‘복지적 손길’이 필요할 뿐이다. 고령의 농촌 어르신들이 일 대신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 그 시작은 행정의 인식 변화에서 비롯될 수 있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5. 일중독 농촌 고령자의 온열질환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7.11.)
최연우. 2025. 치유농업을 부르는 농촌 고령자의 일중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