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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려인마을, 연해주 독립유공자를 찾아서 김경천의 시 '불쌍한 독립군 ‘ 시베리아 혹한 속 독립군의 체온을 기록한 증언의 시 2026-01-24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제목 : 불쌍한 독립군

영하 사십도 시베리아 추위에/ 여름모자 쓰고서 홋 저고리로/ 밑 빠진 메커리(누더기옷)에 간발하고서/ 벌벌떨고 다니는 우리 독립군

한반도를 결박한 철사를 벗겨/ 화려강산 옛 빛을 보려하였더니/ 경박한 사람들은 코웃음하며 /부모 찾아서 보려무나

서산에 지는 해는 쓸쓸도 하다 /너의 고향 이곳에서 몇 천리더냐/ 널 기르신 너의 부모 이곳 있으면/ 너의 모양 보고서 어떠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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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협력해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이 일곱 번 째 인물로 김경천 장군(1888~1942) 의 삶과 항일투쟁을 그의 시를 통해 새롭게 조명한다.

김경천 장군(1888~1942)의 일기 『경천아일록』에 실린 시 〈불쌍한 독립군〉은 바로 그 체온을 문장으로 옮긴 작품이다. 설명이나 과장은 없다. 전선에서 직접 겪은 체험이 증언의 언어로 남아 있다.

“영하 사십도 시베리아 추위에/ 여름모자 쓰고서 홑저고리로…”

시의 첫 연은 독립군의 현실을 미화 없이 드러낸다. 독자는 이 시를 읽는 순간 독립운동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혹한의 길을 함께 걷는 동행이 된다. 닳아 해진 옷과 떨리는 몸, 그리고 끝내 꺼지지 않는 의지가 감각으로 다가온다.

시 속의 독립은 화려한 이상이 아니다. “한반도를 결박한 철사를 벗겨 / 화려강산 옛 빛을 보려하였더니” 여기서 독립은 웅변이 아닌 노동의 행위다.

그러나 그 앞에 놓인 것은 환호가 아니라 조롱이었다. “부모 찾아서 보려무나.” 이 말은 당시 독립군이 감당해야 했던 냉소와 오해를 압축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부모를 버린 것이 아니라, 부모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미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시의 마지막 연에서 던지는 질문은 오래 남는다. “너의 고향 이곳에서 몇 천리더냐.” 이는 거리의 문제가 아니다. 태어난 땅과 돌아가야 할 땅 사이에 놓인 수천 리의 역사, 국경과 총, 체제와 언어의 장벽을 건너야 했던 고려인 독립군의 운명에 대한 물음이다. 그 고독은 개인의 비애가 아니라 공동체가 감당한 선택의 무게였다.

이 시가 오늘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립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책임의 형태로 현재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불쌍한 독립군〉은 감상이 아니라 증언이며, “부모가 본다면 어떠하리요”라는 질문은 오늘의 우리를 향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김경천 장군은 일본 육사 출신 장교였으나 국권 상실 이후 모든 것을 버리고 망명해 무장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0~1920년대 러시아 극동과 만주, 시베리아를 오가며 독립군 조직과 지휘에 참여했고, 전선의 체험을 시로 남겨 독립운동의 내면을 기록했다. 그는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쳤고, 199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김경천 장군과 고려인 선조들의 독립운동은 영웅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었고, 다음 세대에 남겨야 할 약속이었다. 시베리아의 얼음 위를 맨발로 건너던 발걸음은 시간을 건너 오늘, 다시 우리 앞에 서 있다.

고려방송: 양나탈리아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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