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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에서 보는 삶의 지혜! ‘因緣’의 울림
  • 기사등록 2015-04-27 15: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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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 뜰에는 작년, 신안에서 가져다 심은 튤립이 꽃망울을 내밀고 아침마다 인사를 한다. 튤립이 핀 뜰이 주는 의미는 남다른 것 같다. 튤립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알뿌리에서 꽃이 피기까지의 여정이 아름다운 수채화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여정은 튤립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하나로, 한마음으로 잇고 있다.

 

어느 날 출근길에 튤립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화단으로 갔는데, 일부 꽃대가 고사되어 있는 모습에 몹시 안타까웠다. 꽃을 빨리 피우게 하려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주었던 거름이 꽃대에 닿아 금년에는 꽃을 피우지 못하게 된 것이다.

 

枯死된 튤립의 울부짖음에 뼛속 깊은 아픔을 느끼는 것은 사랑하는 법을 말로만 했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함에서 오는 반성이다. 튤립을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몰랐고, 퇴비 주는 방법을 묻지 않았던 것은 배움이 지혜로 삶에 녹지 못하는 우리 현실을 반영한 것이리라.

 

어렸을 적,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온 강아지를 데리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강아지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면 강아지도 좋아할 것으로 생각하여 귀찮게 굴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일어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일이다. 금년에 겪은 아픈 경험을 기억하고 깨달아서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아픈 경험이 삶의 지혜가 되지 못한 사례가 수없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에드워드 핼릿 카(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우리가 과거에서 얻은 교훈은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고 건설하는 데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은 어떠한가?

 

이제까지의 교육은 역사적 사실이나 연대를 외우는 즉, learning of fact로서의 교육이 중시되어 왔던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제껏 기원전 5세기에 철기가 보급되었다는 사실을 외우는 것에 집중하는 교육을 해 왔다. 그러나 이제 교육의 패러다임은 전환되어야 한다. 철기가 우리의 생활에 투입된 순간, 세계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생각하고 토론해 보는 ‘training of mind’ 즉, 질문하는 시대로 가야 한다.

 

공부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배우고 익혀서 너와 내가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배움의 목적은 표현하는 데 있는 것이며, 인생은 배운 것을 상황에 어울리게 표현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교육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사랑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만 가르쳤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질문하도록, 답을 찾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그렇게 가고 싶은 곳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학교 부적응 학생 또는 탈락자가 해를 거듭할수록 많아지는 것도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서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내년에 필 튤립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우리 직원들의 마음과 손놀림이 벌써 분주하다. 올해 반복되었던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는가 하면, 내년에 다시 심을 때는 색깔별로 꽃을 심기 위해 꽃 색깔에 어울리는 색 리본을 끼워 구분하는 작업을 하는 등 직원들의 마음속에 삶의 지혜가 녹아들고 있었다.

 

튤립에 관한 정보를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은 튤립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이며 진정으로 튤립을 사랑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사랑해서 만나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잘못 적용해서 부적절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튤립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맞이했던 올해의 안타까운 상황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직원들은 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튤립은 뭇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라면서 우리에게 사랑하는 지혜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이상과 욕망, 바람직한 것과 바라는 것, 좋은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의 엇박자 때문에 삶이 고달플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는 因緣이 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추는 것이 因이고, 그 因일이 바탕이 되어 일과 사람을 연결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을 緣이라 한다.

 

따라서 因을 갖추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며, 緣을 먼저 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면서 아름다운 꽃을 보고자 한 것은 아닌지? 진지하고도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 因도 없으면서 緣을 추구한 것이다. 튤립에서 얻은 지혜는 바로 因緣이었다./전라남도강진교육청교육장/교육학박사 문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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