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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삼식 님!’
  • 기사등록 2015-06-25 13:48:18
  • 수정 2015-06-25 16: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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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유머가 있다. ‘영식 님’, ‘일식 씨’, ‘이식이’, ‘삼식이 새끼’를 들어보셨는지요? 집에서 한 끼도 안 먹고 세 끼를 모두 밖에서 해결하는 남편에게는 아내가 ‘님’자를 붙인단다. 그게 바로 ‘영식 님’이다.

 

아침 한 끼만 집에서 먹고 나가 점심, 저녁은 해결하고 들어오는 남편에게는 ‘씨’자가 붙고, 아침 먹고 나가서 점심은 밖에서 해결하고 저녁때는 집에 들어와 식사를 하는 남편에게는 ‘이’가 붙는다. 하루 세끼를 모두 아내가 해다 바쳐야 하는 남편에게는 ‘삼식이 새끼’라는 불명예가 따라다닌단다.

 

어떤 재혼 커플은 바로 ‘그 놈의 밥’ 때문에 멀미가 나서 곧 이혼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는 걸 보면, 가정마다 어떻게 ‘삼식이 새끼’를 현명하게 구슬리고 다독거려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느냐에 주부들이 머리를 굴리고 있는 소리가 돌 굴러 가는 소리처럼 들려오는 듯도 하다.

 

물론 ‘삼식이 새끼’라는 말이 나온 데는 평생 가족을 뒷바라지하느라 힘들었던 주부들의 입장이 반영되었으리라. 아이들이 다 커서 이제 좀 편할 만하고 ‘내 새끼 입으로 밥 들어가는 기쁨’도 없으니 상차리기는 그저 귀찮은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은퇴해서 가정으로 돌아온 남편이 바깥에서 해야 할 일도 없어졌으면서 가정에서는 예전처럼 대접 받으려고만 하니 얼마나 속이 뒤집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머에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함께 식사하는 것’이 주는 많은 의미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음식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 서로 공동체임을 확인해 왔다. 함께 식사하기, 수다와 잡담은 소소하게 쌓인 감정과 구원(舊怨)을 묵은 때를 씻어내듯 해소하는 과정에서 꽤나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런데 이제 가족끼리 밥상을 같이하는 것마저도 멀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드는 무엇인가 크고 도도한 흐름과 방향이 늘 있어 왔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식사’에 관한 유머는 세계를 움직이는 큰 흐름과 관계없이, 또한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에 대한 숙고와는 별도로,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도 하지 않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내뱉는 지친 독백을 여러 사람들이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밥을 함께 먹는 것은 단순히 한 끼로 배고픔을 때우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음식을 대하는 태도, 말투, 배려, 격려 등을 몸에 익히는 인성 교육의 시작이자 보루다. 아이들에게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는 것에 급급한 엄마들도 있지만, 아이들의 식사 시간은 단순히 '먹이기 위한 것'만이 되서는 안 된다.

 

밥상은 아이들이 처음으로 '관계'를 배우는 자리이기도 하다. 식탁에서는 연장자가 먼저 수저를 뜨는지 확인한 후 밥을 먹기 시작하여야 한다.

 

또, 다 먹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며 먹는 속도를 맞춰 주어야 한다. 하루에 있었던 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넓혀 나간다. 그러면서 형제자매끼리는 서로 챙겨주며 우애를 쌓을 수도 있다.


현관과 교문을 ‘맞이’와 ‘배웅’의 문으로 만드는 것은 가정을 지키는 것이고, 동시에 삶의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 충전소 중 하나는 또한 밥상을 지키는 것이다. 그 밥상을 지키는 첫 번째 일은 ‘삼식이 새끼’를 ‘삼식 님’으로 바꾸고, 모든 사람이 존경받는 ‘삼식 님’이 되어보는 것은 아닐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남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어떤 사물을 볼 때,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단편적인 물음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가져올까?’에 착안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소소한 ‘밥상’ 이야기지만 ‘밥상 따위가 무엇인가?’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의 밥상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라는 기대와 의지를 갖게 된다면, 미래 사회가 지향하는 나눔과 배려가 있는 사회로 조금 더 다가가지 않을까?

 

사람은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다. 산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챙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제까지 좀 지나칠 정도로 몸 챙기기에 편중되지 않았는지? 공부란 서로가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적용하는 것이다. 잘 살아가는 방법의 시작은 ‘밥상’에서 시작한다.

 

인성 교육의 시작은 마음 챙기기에서 시작한다. 집이 집이려면 집 안에 사람이 살아야 하는 것처럼, 사람도 몸도 소중하지만 몸 안에 있는 마음도 중요한 것이다. 몸만 챙기는 사람은 본래 ‘밥보’인데, ‘ㅂ’이 탈락하여 ‘바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마음 챙기기는 ‘밥상’을 같이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밥상’은 소통과 배려, 더 나아가 행복의 배움터요, 인간의 길을 찾아가는 물음과 답을 생각하는 삶의 체험의 장인 것이다./

 

강진교육장/교육학박사 문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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