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최근 일본의 장례식에서 눈에 띄는 것은 ‘생화제단’이다. 일본식 장례 제단인 백목(白木, 시라키) 조각(彫刻) 제단을 밀어내고 대량의 꽃이 사용되는 생화제단은 대규모 장례식뿐만 아니라 소규모 가족 장례식에서도 인기가 높다.
현재 일본 장례에서 생화제단의 사용 비율은 80%가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2024년 5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일본 요코하마 파시피코 요코하마 홀에서 개최된 ‘제27회 장의 비즈니스박람회 2024’의 회장에도 생화제단이 곳곳에 있어 생화제단은 일본 장의의 대표적인 이미지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이윤희. 일본 장의 박람회에서 장례 꽃장식 강습 이벤트. 전남인터넷신문 2024.6.3).
게다가 생화제단의 규모는 크고, 디자인은 다양하며, 국내에서도 일본식 디자인을 도입해서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 일본의 생화제단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을 것으로 지레짐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자료를 보면 생화를 이용한 제단 장식 역사는 한국이 훨씬 앞선다. 그 배경에는 일본의 경우 종교적으로 폐쇄된데 비해 한국은 기독교와 가톨릭에 대해 개방적이어서 서양식 꽃 문화인 제단의 꽃장식 문화가 비교적 빨리 도입되었다. 한 예로 1960년 6월 26일 행해진 김구 선생 11주기 추모식 사진을 보면 계단식의 제단에 마련된 김구 선생 영정 좌우에 꽃바구니를 배치하여 꽃장식 제단 형식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단에 꽃장식을 하는 문화가 빨리 도입되었으나 1969년 3월 5일에 선포된 가정의례준칙에 화환 규제 등이 포함되었고, 1980년 12월 31일에 개정 공포된 법률 제3319호인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에 의거 화환, 화분 등의 과대 사용 단속이 실시되면서 꽃의 사용은 사치로 규정되어 생화제단의 사용과 발전이 저해되었다.
일본에서 생화제단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67년이다(山田慎也. 2001. 死をどう位置づけるのか : 葬儀祭壇の変化に関する一考察. 国立歴史民俗博物館研究報告 91:119-136.). 1967년 10월 20일 정오 무렵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1878-1967) 일본 총리는 오이소(大磯)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장례식은 가족에 의해 도쿄 카테드랄(東京カテドラル)에서 행해졌는데,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유골은 10월 31일 일본 도쿄·기타노마루 공원의 무도관으로 옮겨져 오후 2시에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이날 장례식에는 일본 황태자 부부를 비롯해 여야당 국회의원, 72개국 대사 등 6,500명이 참가했고, 일반 참가자는 약 4만5천명이었다. 히비야화단(日比谷花壇)에서 장식을 맡은 영결식장의 제단은 거대한 영정을 중심으로 흰색과 노란 국화로 장식되었다. 정면에는 붉은 카네이션과 흰 국화로 세로 2.5m, 가로 4.2m 크기의 일장기를 연출했다.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유골함 주위에는 요시다 총리가 좋아했던 장미 300본이 제공됐고, 헌화용 국화도 대량으로 준비되었다. 이때 사용된 생화는 국화 한 품목만 해도 약 8만 개였다.
당시 국화 납품 업체는 관동(関東) 인접 현(県) 및 간서(関西) 방면까지 가서 국화를 가져오는 바람에 국화 값이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사태도 있었다(東京新聞. 会場費, 花代…安倍晋三元首相の国葬にかかる費用って?吉田茂氏の国葬を振り返って考えた. 2022.8.25.).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국장 모습은 TV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적으로 중계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에서 생화제단이 서서히 보급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1967년에 치러진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영결식장 제단 생화장식은 일본 최초의 생화제단이자 본격적인 유래원이라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