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현대 사회는 정보와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낯선 것에 대한 불안과 관계 단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빠른 변화와 경쟁 중심의 생활은 인간에게 심리적 긴장과 피로를 지속적으로 유발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치유농업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치유농업의 효과를 이해하는 데에는 단순히 “자연이 좋다”는 수준을 넘어 심리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 활동한 폴란드 출신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Zajonc의 이론은 치유농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로버트 자이언스(1923~2008)는 폴란드 우치(Łódź)에서 태어났으며,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뒤 심리학 연구를 이어갔다. 그는 프랑스 파리대학교(University of Paris)에서 수학한 후 미국 미시간 대학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미시간대학교 교수로 오랫동안 활동하였다. 말년에는 스탠포드 대학교에서도 연구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감정과 인지의 관계,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 정서 반응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지만, 특히 “단순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 이론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단순노출 효과란 어떤 대상에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사람은 그 대상에 대해 친숙함과 호감을 느끼게 된다는 이론이다. 자이언스는 1968년 발표한 연구에서 인간은 어떤 대상을 반복적으로 접하기만 해도 그 대상에 대한 선호가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즉 인간은 깊은 분석이나 논리적 판단 이전에 ‘익숙함’ 자체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이언스의 이론은 치유농업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데 상당히 유용하다. 치유농업 현장에서 참여자들은 농작물, 흙, 꽃, 나무, 자연의 소리, 농촌 풍경 등에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처음에는 단순한 체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자연 공간 자체에 안정감과 친숙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는 차원이 아니라 반복된 자연 경험이 심리적 안정감을 형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 처음 농장을 방문하면 낯설고 어색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흙을 만지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곤충이나 냄새에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농장을 방문하고 작물을 심고 물을 주고 수확하는 과정을 경험하다 보면 이러한 거부감은 점차 감소한다. 대신 익숙함과 안정감이 형성된다. 치유농업 프로그램에서 반복 방문과 정기적 활동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음식치유와 연계된 치유농업에서는 단순노출 효과가 더욱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사람은 특정 음식의 향, 조리 과정, 식사 분위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따뜻한 국 냄새, 익숙한 반찬,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경험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심리적 안전 신호로 작동한다. 어린 시절 반복적으로 경험한 음식이 안정감과 위로의 기억으로 남는 것도 이러한 심리 구조와 관련이 있다.
치유농업에서 중요한 것은 거창한 프로그램만이 아니다. 오히려 반복 가능한 작은 경험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매주 같은 시간 농장을 방문하고,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작물을 관찰하는 과정 자체가 심리적 안정 구조를 만든다. 자이언스의 이론은 치유농업의 효과가 단발성 이벤트보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경험 속에서 더욱 커질 수 있음을 설명해 준다.
또한 단순노출 효과는 인간관계 회복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현대인은 관계 단절과 고립 문제를 겪고 있지만, 치유농업에서는 같은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함께 활동하게 된다. 처음에는 서먹했던 관계도 반복적인 공동 작업과 식사, 대화를 통해 점차 편안함과 친밀감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는 치유농업이 단순히 자연 체험 산업이 아니라 관계 회복의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치유농업의 공간 설계에서도 자이언스의 이론은 활용 가능성이 크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새로운 자극만 강조하기보다, 참여자가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익숙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계절별 꽃길, 반복되는 동선,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식탁이나 휴식 공간 등은 참여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다. 사람은 익숙한 공간에서 긴장을 낮추고 감정적 안정 상태에 들어가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버트 자이언스의 단순노출 효과는 치유농업이 왜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심리학적 단서가 된다. 치유농업은 단순히 농작업을 체험하는 활동이 아니다. 반복적으로 자연과 관계를 맺고, 익숙한 공간과 사람을 경험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다. 인간은 낯선 경쟁 사회 속에서는 쉽게 불안을 느끼지만, 반복적으로 접하는 자연과 공동체 속에서는 점차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게 된다. 치유농업의 진정한 힘은 이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6. 마르틴 하디데거의 존재철학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5.11.).
최연우. 2026. 앨버트 메라비언의 정서 전달 이론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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