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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현대인을 살리는 바다의 산삼 낙지 한 접시 - 곽경자 이학박사(곽경자 식초담다 대표, 전남도립대학 식품생명과학과 겸…
  • 기사등록 2026-05-26 08: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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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낙지는 죽어가는 소도 살린다’ 오월에 다시 생각하는 존재의 힘, 오월, 낙지 한 접시 앞에서 묻는다. 존재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왜 끝내 누군가에게 쓸모 있고 싶어 하는가?

 

5월이 오면 오래된 기억으로 밥상을 차린다. 푸른 잎이 짙어질수록 마음속 그리움도 짙어진다. 내게 오월은 늘 엄마를 떠올리는 계절이다. 그리고 동시에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계절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끝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고 싶어 하는가.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해의 오월도 그랬다. 겨울에 뵈었던 아흔둘의 어머니는 백수를 넘기실 듯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계셨다. 하지만 자식의 마음은 늘 늦다. 서울에 계신 엄마를 꼭 다녀와야 한다는 강박처럼 밀려오는 죄책감 속에서 친구가 사준 낙지 한 죽을 들고 길을 나섰다.

 

중학교 시절부터 오랜 친구는 “엄마께 낙지 탕탕이 해드려라”며 선뜻 돈을 보내주었다. 그녀는 40년 전 내 아버지 회갑 날 먹었던 낙지 이야기를 즐거운 기억으로 꺼낸다. 생전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낙지탕탕이, 초무침, 연포탕의 바다 향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의 추억 한가운데에는 늘 낙지가 있었다. 바닷가가 친정이었던 어머니에게 낙지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고, 병약한 남편과 여섯 남매를 먹여 살려야 했던 생존 방식으로 아끼지 않고 드시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낙지는 죽어가는 소도 살린다”라는 말을 어머니는 주문처럼 반복하셨다.

 

어느 날 나는 살아 움직이는 낙지를 무서워하는 딸에게 방언처럼 내뱉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음식은 혀끝의 맛만이 아니라 세대를 건너는 가족의 거대한 서사가 된다는 것을.

그날 어머니는 부어오른 다리로 겨우 앉아 계셨지만 “낙지 사왔어”라는 말에 눈빛부터 달라지셨다. 큰언니가 탕탕 두드린 낙지를 된장과 참기름에 찍어 드리자 어머니는 꼭꼭 씹어 삼키셨다. 그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마지막 존재의 의지였는지도 모른다.

 

낙지는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보양 음식이었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서해안 낙지는 따로 기록할 필요가 없을 만큼 맛이 뛰어나다고 했다. 특히 서해 갯벌 낙지는 뻘 향이 깊고 육질이 부드럽다. 보리가 익어갈 무렵 농부들이 낙지를 소에게 먹여 모심기를 준비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만큼 기력을 북돋는 음식이었다.

 

오늘날 과학 역시 이를 증명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낙지에는 타우린이 풍부하다. 타우린은 피로 회복과 시력 보호, 혈압 안정, 콜레스테롤 조절에 도움을 준다. 심장의 수축 기능을 조절하고 뇌의 교감신경 흥분을 낮춰 심리적 안정에도 영향을 준다. 현대인에게 낙지가 ‘바다의 보약’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오월의 낙지는 영양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를 살리고 싶었던 마음의 음식이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빨래를 개고 집안을 정리하셨다. 끝까지 가족에게 쓸모 있는 존재이고 싶어 하셨던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기를 원하셨을까?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란 거창한 존재론을 부정하고 싶다.

  

금어기가 오기 전 마지막 낙지철. 올 오월에는 가족들과 낙지 한 접시를 나누어 보면 어떨까. 그 바다 향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용히 깨닫게 될 것이다. 존재의 가치는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건강한 가족 밥상 위에서 세대를 넘나드는 건강한 서사가 시작되고 있다는 일이다.

 

참고문헌

곽경자. 2026. 보리밥 열무김치 비빔밥, 발효음식 속에 담긴 흥 문화.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5-14).

곽경자. 2026. 제철 머위, 엄마의 목소리와 쓴맛에 담긴 건강의 비밀.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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