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대만에서는 올해 ‘봉래미(蓬萊米)’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대만총독부가 대만에서 생산된 자포니카계 쌀에 봉래미라는 이름을 붙인 지 100년이 된 것이다. 대만 농업부는 지난 4월 양명산 죽자호(竹子湖)의 봉래미 원종답에서 모내기 행사를 개최한 데 이어 8월 26일에는 수확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서는 지난 100년간 대만 벼농사를 대표하는 5개 품종의 쌀로 밥을 지어 참석자들이 맛보게 했다. 한 세기의 벼 육종 역사를 밥맛으로 경험하게 한 셈이다.
봉래미 100년의 역사는 대만 벼 육종의 변화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대만에서는 일본 통치기에 자포니카계 벼를 대만의 기후에 적응시키기 위한 육종과 재배시험이 이루어졌다. 이후 벼 육종은 수량과 재배 안정성, 병해충 저항성, 밥맛과 품질 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대만의 다양한 쌀 품종은 이러한 육종의 축적 위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우리나라의 벼 육종 역시 시대에 따라 목표가 변화해 왔다. 식량이 부족했던 시기에는 다수확이 중요한 과제였으며, 이후에는 밥맛과 품질, 병해충 저항성, 재배 안정성 등이 중요해졌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성과 가공 적성, 소비자의 기호까지 품종 육성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마트의 쌀 판매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마트에서 쌀을 살펴보던 중 흥미로운 장면을 보았다. 어떤 쌀 포장에는 생산자나 상품 브랜드보다 ‘신동진’이라는 품종명이 훨씬 크게 표시되어 있었다. 신동진이라는 이름 자체가 소비자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선택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동진은 우수한 품종이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소비자는 쌀을 고를 때 생산지역과 농협, 상품 브랜드뿐만 아니라 품종도 함께 살핀다. 신동진, 삼광, 새청무 등 익숙한 품종명은 밥맛과 품질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구매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사과의 홍로와 후지처럼 쌀에서도 품종명이 상품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점에서 대만 봉래미 100년은 전남광주 농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남광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벼 재배 지역이며 쌀 산업의 비중도 크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농협, 생산자단체에서는 지역 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브랜드 개발과 포장 디자인, 홍보와 판촉 등에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입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할 분야가 바로 전남광주의 환경과 시장에 적합한 우수 벼 품종의 육성이다.
품종은 한번 경쟁력을 인정받으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농업의 지식재산이자 브랜드 자산이 된다.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잘 적응하고 수량과 재배 안정성이 높으면서 소비자가 좋아하는 밥맛까지 갖춘 품종이라면 품종명 자체가 상품을 알리는 힘을 갖는다. 여기에 고온과 이상기상에 대한 적응성, 병해충 저항성, 저장성과 가공 적성까지 갖춘다면 농가와 유통업체,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특히 전남광주는 지역별 농업환경이 다양하다. 해안지역과 평야지역, 내륙지역의 기후와 토양 조건이 다르고 재배환경에도 차이가 있다. 이러한 특성을 세밀하게 활용하면 전남광주에 적합한 품종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의 환경적 장점을 살린 품종도 육성할 수 있다. 육종 단계에서부터 농가의 재배성, 미곡종합처리장의 가공성, 유통업체의 상품성, 소비자의 밥맛 평가를 연결하는 체계도 중요하다.
지역 쌀 브랜드와 품종을 결합하는 전략도 생각해 볼 만하다. 지자체나 농협의 브랜드가 생산지와 품질관리를 보증하고, 품종명이 쌀의 고유한 특성과 밥맛을 설명하는 구조이다. 지역 브랜드에 해마다 홍보비를 투입하는 것과 함께 소비자가 품종 이름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장기적인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지역 쌀의 경쟁력은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
대만이 봉래미 100주년을 맞아 모내기와 수확을 재현하고 100년 동안 개발된 대표 품종의 밥맛을 국민에게 소개한 것은 육종을 하나의 농업문화 자산으로 활용한 사례이기도 하다. 한 품종의 탄생과 확산에는 연구자의 노력, 농민의 재배 경험, 지역의 자연환경과 소비자의 선택이 함께 축적되어 있다.
전남광주에서도 앞으로 30년, 50년 뒤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밥맛과 지역을 떠올릴 수 있는 벼 품종이 나왔으면 한다. 마트의 쌀 포장지에서 상품 브랜드보다 크게 쓰인 ‘신동진’이라는 이름은 그 가능성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좋은 품종을 만드는 일은 농사를 위한 육종인 동시에 지역의 미래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기후 위기, 전남농업의 해법은 ‘품종 개발’.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5.21.).
허북구. 2022. 지자체의 작물 품종 육성, 지역 농업 살린다.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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