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최근 토종작물을 재배하는 농장을 방문했다. 농장주는 우리 종자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토종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종자를 구하고, 해마다 심어 수확한 뒤 다시 종자를 받아 이어가는 데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뜻밖에 큰 고민을 들었다. 재배한 토종작물의 소비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토종종자를 보존하려면 누군가는 계속 심어야 한다. 농민이 계속 심으려면 수확한 농산물을 이용하고 구매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보존의 가치를 인정받아 재배를 시작할 수는 있어도 생산물이 계속 쌓이면 재배를 이어가는 데 부담이 생긴다. 결국 토종종자의 지속적인 보존은 종자를 심는 밭과 수확물을 먹는 밥상이 연결되어야 가능하다.
과거 농민들이 특정 종자를 대대로 이어 온 배경에도 음식이 있었다. 사람들은 밥맛이 좋은 벼를 골랐고, 장을 담그기 좋은 콩을 심었다. 떡에 알맞은 쌀, 죽에 좋은 곡물, 나물로 먹기 좋은 채소, 김치를 담그기 좋은 배추와 무가 선택되었다. 명절이나 제사에 필요한 작물도 있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종자에는 재배상의 특성과 함께 사람들이 무엇을 만들어 먹었는가라는 식문화의 선택이 축적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전남광주의 토종종자를 보존하려면 종자 조사와 함께 밥상에 대한 조사와 식문화 연구가 필요하다. 토종벼의 이름과 재배 특성을 조사하면서 그 쌀로 어떤 밥과 떡, 술을 만들었는지를 찾아야 한다. 토종콩은 된장과 간장, 두부, 콩나물 등과 연결해 살펴볼 수 있다. 조와 기장, 팥, 녹두, 들깨, 참깨, 무와 배추 역시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조리하고 먹었는지를 조사하면 종자가 지닌 식문화적 가치가 드러난다.
조리 적성에 관한 연구도 중요하다. 같은 쌀이라도 밥에 좋은 특성과 떡에 좋은 특성이 다를 수 있다. 콩도 장을 담갔을 때의 맛과 향, 두부를 만들었을 때의 수율과 조직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채소 역시 생식, 나물, 김치, 건조 등 이용 방법에 따라 선호되는 특성이 달라진다. 과거 사람들이 특정 종자를 선택해 계속 심었던 이유를 찾으려면 재배 특성과 함께 맛과 조리법, 음식의 용도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도 종자와 음식문화의 관계에 주목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음식사 연구자 윌리엄 워이스 위버(William Woys Weaver)는 가보종 종자와 전통음식의 관계를 다루면서 종자에 축적된 음식문화의 의미를 제시했다. 코트니 풀릴러브(Courtney Fullilove)도 생물다양성 보존을 다루면서 종자와 식물에 관한 지식, 식용과 조리의 문화적 가치를 함께 살펴보았다. 종자는 유전적 자원이면서 사람들이 재배하고 조리하고 먹어 온 식문화의 자원이기도 하다.
전남광주의 토종종자 조사에서도 질문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종자의 이름과 재배지역, 재배법을 기록하면서 누가 심었고 무엇을 만들어 먹었는지까지 조사하는 것이다. 어떤 음식에 잘 맞았는지, 맛과 향은 어떠했는지, 명절이나 제사 등 특정한 때에 사용했는지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고령 농업인과 지역 주민들이 기억하고 있는 음식 이야기는 토종종자의 이용 가치를 찾는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찾아낸 식문화는 토종종자의 소비에도 새로운 길을 열어 준다. 토종콩으로 지역의 장을 만들고, 토종벼로 밥과 떡을 만들며, 토종채소를 지역 식당의 음식에 활용할 수 있다. 로컬푸드와 음식관광, 농촌체험, 치유농업 프로그램에서 토종작물의 재배와 수확, 조리를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역의 음식점이 토종농산물을 이용하고 소비자가 그 음식을 찾게 되면 농민에게 재배를 이어 갈 경제적인 이유가 생긴다.
여기서 토종종자 보존의 또 다른 방향을 생각할 수 있다. 종자를 먼저 보존하고 나중에 활용처를 찾는 방식과 함께, 지역에서 사라져 가는 음식과 조리법을 조사하고 거기에 사용했던 종자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오래된 밥상에서 종자를 찾는 것이다. 어떤 콩으로 장을 담갔는지, 어떤 팥으로 죽을 쑤었는지, 어떤 벼로 떡을 했는지, 어떤 무와 배추로 김장을 했는지를 조사하면 사라진 종자의 흔적과 이용법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방문했던 농장에서 들었던 소비에 대한 고민도 결국 이 문제와 맞닿아 있었다. 토종종자를 심는 농민의 열정이 다음 농사로 이어지려면 그 농산물을 기다리는 소비자가 필요하다. 소비자가 찾으려면 토종작물로 만든 음식의 맛과 이야기, 이용법이 있어야 한다. 밭에서 종자를 지키는 사람과 밥상에서 그 가치를 소비하는 사람이 만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전남광주의 토종종자를 지키기 위해 이제 밭과 종자만큼 지역의 오래된 밥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종자를 심어 온 역사와 그것을 먹어 온 역사를 함께 찾고, 오늘의 음식과 소비로 연결해야 한다. 종자는 밭에서 자라고, 밥상에서 소비되며, 그 수요를 힘으로 다시 밭에 심어진다. 종자가 밥상에서 보존된다는 말에는 바로 이러한 순환의 의미가 담겨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1. 전남 농특산 품목의 경쟁력 강화 방안, 허북구 농업칼럼. 세오와 이재.
허북구. 2021. 전남 농특산물의 상품화 제안, 허북구 농업칼럼. 세오와 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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