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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밥상에 남아 있는 토종 식물과 음식 - 농업 칼럼리스트·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6-09-23 10: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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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추석 풍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고향을 찾는 모습부터 차례와 성묘, 가족이 모이는 방식, 명절 음식까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생활문화가 바뀌면서 농촌의 토종식물과 집집마다 이어져 온 음식도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나마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토종식물과 음식 가운데 일부는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밥상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시골을 다니며 토종식물이나 전통음식을 조사하다 보면 의외의 곳에서 오래된 자원을 만날 때가 있다. 널리 재배되는 작물도 아니고 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느 집 텃밭 한쪽에서 해마다 씨를 받아 심는 콩이나 무, 마늘, 채소 등이 자라고 있다. 왜 계속 심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에 소박하다. “우리 아들이 이것을 좋아해서”, “딸이 오면 해주려고”, “애들이 어릴 때부터 먹던 것이라서”라는 말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거의 만들지 않다가 추석이나 설처럼 자식들이 고향에 오는 날이면 만드는 음식이 있다. 부모는 자식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작물을 심고, 씨앗을 받아 다음 해에 다시 심는다. 특정한 콩이나 마늘, 채소를 계속 재배하는 이유가 명절 음식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지역에서는 이미 보기 어려워진 음식인데도 한 집안에서는 가족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명절마다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명절 밥상은 토종 식물과 전통음식이 살아남는 작은 보존 공간이었다.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관리한 것도 아니고, 보존을 목적으로 계획해서 재배한 것도 아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 자식이 고향에 와서 다시 먹고 싶어 하는 맛이 씨앗과 재배법, 조리법을 함께 이어 왔다.

  

그 음식은 한 집안의 ‘소울푸드’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먹었던 맛에는 재료와 조리법뿐만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 함께 먹었던 가족, 고향집과 마을의 풍경, 계절의 기억이 겹쳐 있다. 추석에 고향을 찾았을 때 유난히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면 그런 음식일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사라진 식재료가 텃밭에 남고, 음식점에서는 보기 어려운 음식이 명절 밥상에서 이어져 온 배경에는 가족의 기억과 입맛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전승 구조가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농촌의 고령화로 씨앗을 받아 심던 사람이 줄어들고 명절에 가족이 모이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부모 세대가 더 이상 농사를 짓거나 음식을 만들기 어려워지면 그 집의 토종 식물과 음식도 함께 사라질 가능성이 커진다. 자식은 그 맛을 기억해도 어떤 종자를 심었는지, 언제 파종하고 수확했는지, 어떻게 갈무리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음식을 만들었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의 기억과 손기술에 의존했던 씨앗과 음식의 전승이 끊어지는 것이다.

  

더욱 아쉬운 것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 가운데 오늘날 새롭게 활용할 가치가 큰 자원도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특정 지역에서 재배해 온 토종 작물은 지역 농업의 유전자원이며, 그것으로 만든 음식에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활문화가 축적되어 있다. 독특한 맛과 향, 색, 조리법을 가진 음식은 지역 특화상품과 농촌융복합산업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농촌관광의 음식 체험이나 치유농업 프로그램 등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한 집안의 음식이 지역의 새로운 음식문화 자원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그러려면 먼저 찾아내고 기록해야 한다. 특히 추석과 설은 평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집안 음식과 토종 재료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 명절에 무엇을 만들어 먹는지, 그 재료는 어디에서 구하는지, 직접 재배한다면 씨앗은 언제부터 이어져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가 그 음식을 좋아해서 지금까지 만들게 되었는지도 중요한 기록이다. 음식 이름과 조리법에 더해 씨앗과 재배, 수확과 저장, 조리, 가족의 기억까지 기록하면 그 음식이 가진 문화적 배경도 함께 남길 수 있다.

  

올해 추석 고향집 밥상에 평소 보기 어려운 음식이 올라온다면 눈여겨볼 일이다. “네가 좋아해서 해마다 심는다”는 부모님의 말 속에 사라져 가는 토종 식물이 숨어 있을 수 있다. “명절에 너희가 오니까 만든다”라는 음식에는 한 집안이 오랫동안 이어 온 조리법과 기억이 담겨 있을 수 있다. 그 재료의 이름을 묻고 씨앗을 살펴보고 만드는 방법을 기록하는 작은 관심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가족의 입맛과 명절 밥상이 지켜 온 토종 식물과 음식 가운데 미래의 지역농업과 음식문화를 풍성하게 만들 자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소멸되고 있는 전남 지역 고유 음식재료와 조리기술.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4.8.)

허북구. 2026. 전남의 토종 식재료 농업과 음식.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1.21.)

허북구. 2024. 설음식과 남도 음식의 세계화.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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