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수확의 계절이다. 농산물이 풍년을 맞으면 농민이 웃어야 하는데 오히려 걱정이 커지는 경우가 있다. 생산량이 늘어난 만큼 소비가 따라주지 못해 가격이 폭락하기 때문이다. 배추와 양파, 마늘을 비롯해 전남의 여러 농산물에서도 되풀이되어 온 일이다. 이때 흔히 산지 폐기, 소비 촉진, 판촉행사 등이 대책으로 등장한다. 대만 타이중시 다자(大甲)의 토란은 다른 방향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를 보여준다.
1998년 다자(大甲)에서는 토란이 크게 풍작을 이루었다. 공급과잉으로 가격은 1근에 3~4대만달러까지 떨어졌고 농민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지역 제과기술자 우충차오(吳聰朝)는 산더미처럼 쌓인 토란을 보면서 새로운 과자를 만드는 데 도전했다.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탄생한 것이 오늘날 다자를 대표하는 ‘위터우쑤(芋頭酥)’, 즉 토란 페이스트리이다.
우충차오가 단순히 토란을 빵 속에 넣었다면 지역 명물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토란 자체를 상품의 정체성으로 만들었다. 전통적인 나무 찜통으로 토란을 찌고, 반죽을 여러 차례 밀고 접어 겹을 만든 뒤 토란을 연상시키는 나선형 무늬를 표현했다. 속에는 다자에서 생산된 빈랑심우(檳榔心芋)를 사용했다. 다른 지역의 토란 산지를 직접 조사하고 농업시험 연구자에게 자문하면서 다자 토란의 특성을 제품에 연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1999년 타이중의 설맞이 특산물 판매 행사에서는 하루 판매액이 30만 대만달러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생산 규모도 하루 밀가루 사용량 300kg, 토란 과자 생산량 1만 개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토란 가격 폭락에서 시작된 과자가 다자를 상징하는 특산품으로 성장한 것이다.
여기에서 전남 농업이 주목할 부분은 가공 자체보다 농산물과 음식문화의 결합이다. 농산물의 소비 확대를 위해 가공품을 개발하는 사업은 우리나라에도 많다. 그러나 시제품 몇 종류를 만드는 것과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문화를 만드는 것은 차이가 크다.
다자의 토란 과자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토란을 원료로 사용하면서 모양에도 토란의 이미지를 담았다. 이후 다자 진란궁(鎮瀾宮)의 문화와 연결한 과자, 지역의 토양과 농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제품 등이 개발되었다. 토란은 원료에서 출발해 다자라는 지역을 기억하게 하는 문화적 소재로 영역을 넓혔다. ‘다자 하면 토란, 토란 하면 다자’라는 관계가 상품을 통해 형성된 셈이다.
이 관계는 농업에도 중요하다. 특정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는 대표 음식이 꾸준히 팔리면 원료 농산물의 지속적인 수요가 생긴다. 더 나아가 그 음식에 적합한 품종과 품질에 대한 요구도 만들어진다. 생산자가 시장에서 팔리는 농산물을 재배하고 가공업체가 그것을 구매하는 단순한 관계에서, 음식문화가 필요한 농산물의 특성을 제시하고 농업이 그 수요에 대응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전남에는 이러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농산물이 많다. 쌀·보리·콩·고구마·무화과·유자·배·양파·마늘·녹차를 비롯해 지역성이 강한 농산물이 곳곳에 있다. 문제는 풍년 때 많이 팔아 주자는 일회성 소비운동을 넘어 이 농산물이 들어가야 제맛이 나는 음식, 이 품종이어야 상품의 특성이 살아나는 가공품을 얼마나 만들어 왔느냐는 데 있다.
특히 지역 농산물 가공에서는 원료의 지역성과 품종 특성을 제품 개발 단계부터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맛과 향, 전분 특성, 조직감, 가공적성 등을 조사하고 그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음식과 가공기술을 개발하면 종자와 재배, 가공, 음식, 관광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할 수 있다. 농촌융복합산업도 이러한 연결 속에서 지역성을 더욱 분명하게 확보할 수 있다.
전남 농업에도 풍년과 가격 폭락은 되풀이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당장의 물량을 소진하는 대책과 함께 지역 농산물이 지속적으로 선택될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품종과 산지의 특성을 음식에 담고, 그 음식이 지역을 찾게 하는 문화와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는다면 농산물의 가치는 생산량과 시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1998년 가격 폭락에서 출발한 다자(大甲)의 토란 과자는 농산물의 위기를 새로운 지역 자산으로 전환한 사례라는 점에서 전남 농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전남광주 농업 2.0, 개인 노력에서 지역 협업으로.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9.7.).
허북구. 2026. 100년 전 전남 농업에서 찾는 지역특화농업.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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