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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 연해주 독립유공자를 찾아서 ‘백규삼 선생’ - 안중근과 함께 조국 독립 맹세한 백규삼…항일투쟁 발자취 재조명 - 연해주 의병투쟁부터 군자금 모집·민족교육까지 독립운동 헌신
  • 기사등록 2026-10-27 08: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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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이 안중근 의사와 단지동맹을 맺고 연해주 일대에서 무장투쟁과 민족교육에 헌신한 독립운동가 백규삼(白圭三·1873~1917) 선생의 항일 공적을 재조명하고 나섰다.27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공동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서른네 번째 인물로 백규삼 선생을 선정하고, 그의 독립운동 행적과 역사적 의미를 조명했다.

백규삼 선생은 함경북도 명천군 하고면 출신으로, 호는 동산(東山)이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러시아어와 중국어에 능통해 연해주와 중국 동북지역을 무대로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다.
 


1908년 7월 안중근 의사가 러시아 연해주에서 의병부대를 결성하자 지휘부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2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국내 진입작전에 나서 함경북도 경원군 일대 일본군을 공격했다.

이후 회령 영산 전투에서 패해 연해주로 돌아온 백 선생은 1909년 초 연추(현 러시아 크라스키노 인근)에서 안중근·김기룡 등과 함께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는 단지동맹에 참여했다. 이위종 등이 결성한 항일단체 동의회에서도 서기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특히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이후에는 동지들과 함께 안중근유족구제회를 조직해 유족을 위한 성금을 모으고 구명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블라디보스토크 자택에는 안 의사의 단지동맹 관련 문서와 혈서로 쓴 대한독립기 등 귀중한 유품을 보관했으며, 이를 참배하려는 한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백 선생은 이후 훈춘·연추·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영사관과 헌병대 습격을 계획하는 등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1911년에는 연해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민족운동 단체인 권업회 설립에도 참여했다.

무장투쟁과 함께 민족교육에도 앞장섰다. 1912년 훈춘 한인기독청년회 교육과장을 맡은 데 이어 1915년 부회장, 1916년 회장으로 활동하며 한인 청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와 독립운동 기반 확대에 힘썼다.

또한 이동휘·황병길 등과 협력해 민족교육을 지원하고 독립군 양성을 위한 기반 구축에도 참여하는 등 훈춘지역 항일운동의 주요 지도자로 활동했다.

이처럼 연해주와 중국 동북지역을 오가며 무장항쟁과 독립운동 조직 결성, 민족교육에 헌신한 백 선생은 1917년 1월 7일 훈춘에서 폐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로 분류돼 있어 후손 발굴과 역사적 공적을 계승하기 위한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백규삼 선생의 삶이 안중근 의사의 항일투쟁을 뒷받침한 연해주 한인사회의 조직적인 독립운동과 연대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알리는 역사문화 기록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고려방송: 안엘레나(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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