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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의 "풍경소리"
  • 기사등록 2011-03-28 14: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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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 날씨가 풀리면서 하늘은 그야말로 활짝 열려 지천으로 봄의 향연을 마음껏 펼치고 있습니다.

좋은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가 축복으로 여겨지고 봄이 무르익은 날에는 들판에 나가도 마음이 평온하겠지만 산으로 가도 더욱 좋을 것입니다.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산에 오르다 보면 명산대천에 자리 잡은 사찰을 지나가게 되는데 땀이 베인 몸으로 잠시 숨을 고르면서 가볍게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순간,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는 왠지 모르는 대자연과의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기묘한 감흥을 줍니다.

산에 들어서는 인간의 영혼을 깨워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도 같고, 아니면 오래된 인연의 끈을 다시 엮는 순간의 잔잔한 충동으로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산속의 오래된 사찰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반가운 소리는 들을 때마다 새롭게 가슴을 울립니다.

종가의 오래된 고택에도 어김없이 풍경소리가 울려오는데 조상님들 께서는 집안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아놓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마 사람이 살아가는 사바세계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세계나 영혼의 세계에 있어서도 사악하고 탁한 정기를 막아내고 맑은 기운을 불러들이기 위하여 풍경소리를 매개로 활용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돈된 날씨의 풍경소리는 그 분위기 만큼이나 잔잔하고 부드러운 반면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무쌍한 바람의 방향과도 같아 천방지축의 울림으로 사람의 마음을 더욱 어지럽게 흔들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상님들은 건물과 하늘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곡선의 끝자락에 풍경을 달아 좋은 것과 궂은 것의 모든 것을 수용하였던 것입니다.

결국에 선현들이 남긴 크고 작은 교훈들은 모두가 우리의 정신 건강에 약이 되는 풍경소리로 다가서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어록들은 우리 주변에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룰 정도로 많을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진실한 말씀은 은연중 우리 곁에 우뚝 서 있게 마련일 것입니다.

채소의 뿌리를 씹는 담박한 생활로 외물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다는 “채근담”의 후집 19편에는 “길고 짧은 것은 한 생각에 달려 있고, 넓고 좁은 것은 한 치 마음에 매여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한가로운 자는 하루가
천고보다 아득하고, 뜻이 넓은 자는 좁은 방도 넓기가 천지와 같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전집에서 나타나는 주옥같은 문장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을 주었는데, 후집에서도 또한 가슴을 울리는 말씀들이 너무도 많아 이를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산림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는 자는 아직도 산림의 맛을 진정으로 얻은 것이 아니고, 명리의 이야기를 싫다고 하는 자는 아직도 명리의 정을 완전히 잊은 것이 아니다.

고요한 밤의 종소리를 듣고 꿈속의 꿈을 불러 깨우며, 맑은 못의 달그림자를 보고 몸 밖의 몸을 엿본다.

산하의 대지도 이미 작은 티끌에 속하거늘 하물며 티끌속의 티끌이랴. 혈육 몸뚱이도 물거품과 그림자로 돌아가거늘 하물며 그림자 밖의 그림자이랴. 최상의 지혜가 아니면 밝은 마음이 없느니라.

냉정한 마음으로 열광했던 때를 살핀 뒤에야 정열에 끌려 분주했음이 무익함을 알고, 번거러움에서 한가로움으로 들어간 뒤에야 한중의 즐거움이 가장 유장한 것임을 깨닫는다.

눈앞에 닥치는 모든 일은 족함을 알면 선경이요. 족함을 모르면 범경이다.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원인은 잘 쓰면 생기가 되고 잘못 쓰면 살기가 된다.

바쁠 때 성정을 어지럽히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한가할 때에 심신을 맑게 기를 것이요. 죽을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면 모름지기 살아 있을 때에 사물의 진상을 꿰뚫어 알 것이다.
숨어사는 숲속에는 영욕이 없고, 도의의 길 위에는 염량(炎凉)이 없다.

외로운 구름이 산골짜기에서 피어나 가고 머무름이 하나도 매임이 없고, 밝은 달이 하늘에 걸려 고요함과 시끄러움을 모두 상관하지 않는다.

갈대 꽃 이불 덮고 눈밭에 누워 구름 위에서 잠들지라도 한방의 밤기운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요. 대 잎 술잔 기울이며 바람을 읊조리고 달을 희롱하면 만장의 홍진에서 떠날 수 있으리라.

심기가 동요되면 활 그림자를 뱀으로 의심하고, 누운 바위를 엎드린 범으로 보나니 이런 속에서는 모두가 살기요, 생각이 고요하면 석호도 갈매기로 만들고, 개구리 소리도 고취로 삼나니 사물에 접함에 모두 참 기틀을 본다.

마음속에 욕심이 있는 자는 차가운 못에 물결이 끓는 듯 하여 산림에 있어도 그 고요함을 보지 못하고, 마음속이 비어있는 자는 혹서에도 서늘한 기운이 생기나니, 번화한 곳에 있어서도 시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꽃이 화분 안에 있으면 마침내 생기가 없어지고 새가 새장 속에 들면 문득 천연의 맛이 덜어지나니, 산속의 꽃과 새가 어울려 아름다운 문채를 이루며, 마음대로 날아서 유연히 묘미를 깨달음만 같지 못하다.

늙어서 젊음을 보면 바삐 달리고 서로 다투는 마음이 없어질 것이요, 초췌하여 영화로움을 보면 분잡하고 화려한 생각을 끊을 것이다.

옛 고승이 이르기를 대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티끌이 움직이지 않고, 달빛이 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다 했고, 옛 선비도 말하기를 물의 흐름이 빨라도 경계는 항상 고요하고, 꽃이 떨어짐이 비록 잦아도 뜻은 스스로 한가롭다. 하였으니 사람이 항상 이런 뜻을 가지고 사물에 응접한다면 몸과 마음이 얼마나 자유로우랴.

숲 사이의 솔바람 소리, 바위틈의 샘물 소리를 고요한 가운데 들으면 천지자연의 음악임을 알게 되며, 풀숲의 안개 빛, 물속의 구름 그림자를 한가로운 가운데 보면 건곤 최상의 문장임을 알게 된다.

눈으로 서진의 형진을 보고도 오히려 흰 칼날을 자랑하며, 몸은 북망의 여우나 토끼에게 맡겨질 것이로되 아직도 황금을 아까워하니, 옛말에 사나운 짐승은 길들이기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항복 받기 어렵고, 깊은 계곡은 채우기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채우기 어렵다 한 것은 참말이로다.

엎드림이 오랜 새는 나는 것도 반드시 높고, 먼저 피는 꽃은 지는 것도 또한 빠르다. 이를 알면 발 헛디딜 근심을 면할 것이요, 조급한 생각이 사라질 것이다.

진공(眞空)은 공(空)이 아니니 형상에 집착함도 진실이 아니고, 형상을 깨뜨림도 진실이 아니다. 묻노니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속세에 있으면서 속세를 벗어나라 하셨나니 욕정에 따름도 괴로움이요 욕정을 끊음도 괴로움이라, 우리는 스스로 잘 닦아야 한다.

천성이 맑으면 배고파 밥을 먹고 목말라 물을 마시더라도 심신을 건강하게 기르지 않음이 없으나, 심지가 흐리면 비록 선을 말하고 게(부처를 찬양하며 교리를 설명한 시)를 강론한다 하더라도 이는 모두 정혼을 희롱하는 것일 뿐이다.

병에 걸린 뒤에야 건강이 보배인 줄 생각하며, 난세에 처한 뒤에야 평화가 복됨을 생각하는 것은 일찍 아는 지혜가 아니다. 복을 구하기에 앞서 그것이 재앙의 근본이 됨을 알며, 생을 탐하기에 앞서 그것이 죽음의 원인이 됨을 아는 것이야 말로 탁월한 지혜가 아니랴.

밭가는 시골 늙은이는 황계와 백주를 말하면 흔연히 기뻐하나 고급요리에 대해 물으면 알지 못하며, 솜옷과 잠방이를 말하면 유연히 즐거워하나 곤복에 대해 물으면 알지를 못하나니, 그 천성이 온전한 지라 그 욕망도 담박하다. 이것이야말로 인생 제일의 경계인 것이다.

마음속에 사심이 없으면 마음을 살필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마음을 살피라는 석가의 말은 오히려 한 가지 장애를 더할 뿐이다. 만물의 본체는 하나이므로 본디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가지런히 하라는 장자의 주장은 오히려 같은 것을 쪼개어 차별을 둔 셈이 된다.

새끼로 된 톱으로도 나무가 잘려지고 물방울로도 돌이 뚫리나니, 도를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힘써 찾음을 더하라. 물이 모이면 도랑을 이루고 참외가 익으면 꼭지가 빠지나니, 도를 얻으려는 자는 한결 같이 천기에 맡길 것이다.

마음이 쉬면 문득 달빛이 비치고 바람이 불어오나니, 반드시 인간 세상을 고해로만 생각할 수는 없으며, 마음이 멀면 수레 티끌과 말 자취가 절로 없어지나니, 어찌 구태여 산속에서만 살려 하겠는가.

높은 데 오르면 사람의 마음이 넓어지고, 흐름에 임하면 사람의 뜻이 멀어지며, 눈 오는 밤에 글을 읽으면 사람의 정신이 맑아지고, 언덕마루에 올라 읊조리면 사람의 흥이 높아진다.

마음이 넓으면 만종도 질그릇 같고 마음이 좁으면 한 오라기의 머리칼도 수레바퀴 같다.

귀는 세찬 바람이 골짜기에 메아리를 던지는 것과 같아, 바람이 지나간 뒤에 메아리가 머물지 않으면 시비도 함께 사라지며, 마음은 밝은 달이 못에 비침과 같아, 텅 비어서 어디에도 붙지 않으면 외물과 나 두 가지를 모두 잊을 것이다.

꽃은 반만 핀 것을 보고 술은 조금만 취하도록 마시면, 이 가운데 무한한 가취가 있다. 만약 꽃이 활짝 피고 술이 흠씬 취하기에 이르면 곧 악경을 이루나니, 가득함에 처한 자는 마땅히 생각할 것이다.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덜면 덜수록 고뇌에서 벗어나 세속을 초탈할 수 있다. 사람과의 사귐을 덜면 남과 다투어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줄고, 말을 적게 하면 허물이 적어지고, 생각을 덜면 정신이 소모 되지 않고, 총명을 줄이면 천진의 본성을 보존할 수 있다.

날로 일을 더하려는 자는 자신의 손으로 자기 몸을 결박하는 일이다.

불가에서는 수연(隨緣)이라 하여 세상 모든 일은 인연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보고 인연에 따라 처신할 것을 강조 하였으며, 유가에서는 소위(素位)라 하여 자기 본분을 지키며 살 것을 강조하였다.

수연과 소위는 인생의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이것은 곧 바다를 건너가는 데 필요한 구명대 역할을 한다.“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맺고 있습니다.

비록 옛 선현의 가르침이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있다 손 치더라도 모든 것이 인간의 가슴속에 일어나는 천변만화의 근본을 조용한 성찰을 통하여 설파 하신 것으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요즈음의 세상은 고도의 문물이 그 끝을 모를 정도로 번잡하여 사람의 가슴이 너무나 많은 혼란에 시달려 우리들 자신의 문제일 뿐 아니라 명확하게 정리된 생각을 가질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이러한 때 비록 현실이 각박하다 하더라도 촌음을 내어 자연의 품에 안겨 청량한 소리에 스스로의 영혼을 맡겨보는 여유가 필요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에게 썩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소금이 있듯이 영혼의 나태와 혼돈에는 천상의 메시지를 안고 비단 옷을 나풀거리며 구름타고 내리는 선녀가 흔드는 요령소리와도 같은 은은한 풍경소리에 심취하여 번잡한 세상사를 홀연히 벗어나는 순간의 자유를 만끽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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