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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참회
  • 기사등록 2012-05-29 09:46:20
  • 수정 2014-12-04 16:3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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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박영동]금년도의 봄은 언제 왔다가 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세월의 흐름이 유리알처럼 투명하여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고요히 스쳐간 것으로 보여 집니다.
숫자로 남겨진 인생의 애환들도 돌이켜보면 그 실상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득하기만 하고 한편으로는 허무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인연을 맺어온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였던 크고 작은 일들과 주고받았던 좋은 정들이 공든 탑처럼 쌓여가는 것인지, 아니면 허물어져 가는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한때는 마음속 지극한 정을 나누었던 사람들과의 행복했던 순간도 떠오르고, 사소한 오해로 등을 돌리고 외면하였던 쓰라린 기억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모든 사람들과 만물이 그지없이 사랑스럽게 보이기만 하더니 요사이는 인간의 마음이 선과 악의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모호해지기도 합니다.

몇 번이고 평정을 찾아 고요히 있으려 하건만 촛불처럼 흔들리는 마음은 자꾸만 애증의 그림자를 뿌리면서 삶의 물음표를 화살처럼 던져 혼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펼쳐놓은 인연의 실타래가 어찌나 끝없이 번져가는 것인지 시간과 체력과 현실이 감당하기에 버겁기도 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써 동분서주하고 있는 와중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착오와 오해가 생기고 이를 해명해주거나, 우연찮게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매듭을 풀어주고 싶어도 능력이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은 참으로 자괴감이 앞서기도 합니다.

나를 원하는 사람들과의 좋은 인연을 생각해보면 우선은 힘이 든다 할지라도 기꺼이 한 몸을 태워 성심으로 응대해 주고 싶지만, 현실이 허락해주지 못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쓸쓸함이 허전한 가슴을 타고 막연하게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을 수행으로 일관하여 후회가 없이 성스런 삶을 누렸을 것으로 느껴지는 법정스님께서도 열반에 들어서시기 전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은 앞으로의 세상에서 계속 참회 하겠습니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사)맑고 향기롭게’에 주어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토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풀어 논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하였던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뒷사람에게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말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를 하라”는 당부 말씀은 진실로 부담을 지우지 않으시려는 결연한 의지가 보여 지기도 합니다.

문득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저 자신의 말빚도 계속하여 쌓여만 간다는 생각이 미치자 참으로 난감해지면서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조차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치의 티끌도 없이 자연 그대로의 숲에서 평생을 수행자의 삶으로 살아가신 고승께서 참회를 하고 그동안의 말빚을 염려하신 것을 지켜보면서 새삼스레 우리 중생들의 말과 몸으로 지은 업보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요사이 신문 지상을 오르내리는 스님들을 향하는 질타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를 하는 것도 모자라 마치 저에게 쏟아지는 질책으로 느껴지며 급기야는 감당하기 어려워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스님이나 목사, 신부 등 모든 성직자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의 모든 영역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은 평생 동안 쌓아온 노력에 의하여 대중들의 존경과 환영을 받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굴레를 함께 지고 가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바람과 이슬을 먹고 구름과 같은 배설을 하는 신선이 되기를 바랐던 이태백은 주옥같은 시를 후세에 남겼지만, 명예와 출세에 대한 애욕을 가슴에 묻은 채 끝내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온갖 이세상의 깨끗한 것을 취식하고, 아름답고 화려한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육체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남은 폐기물을 배출하는 순간은 인간의 품위에 손상이 오고 스스로의 자존심이 무참하게 무너지는 느낌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신과 동물의 가운데 지점에서 끝없이 번민하는 중간자의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한한 대자연의 한가운데 오로지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스스로의 품위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중압감은 성직자들로 하여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유혹을 느끼게도 할 것입니다.

평생 동안 마음을 갈고 닦아 평범한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서 참다운 자유를 얻으려 하는 수행자의 삶속에도 결과적으로 세상을 떠나가는 순간에는 약간의 후회 한 조각이라도 남게 되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서양의 위대한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황제도 모두가 잘사는 로마제국을 건설해 놓고서도 인간적인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는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참회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철학에 있어 반대파의 공격에 의하여 정신적인 어려움으로 고통을 받던 루소는 운둔 생활을 통하여 1769년경 스스로의 참회록을 완성하게 됩니다.

세계적인 대문호로 불후의 명저를 남긴 톨스토이마저 자신이 섭렵하였던 철학, 신학, 과학, 문학의 범주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을 추구하면서 정신적, 도덕적으로 겪어야 했던 고통으로 자살까지도 생각하는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고 만년에 신에 봉사하는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내용의 참회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승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물질적인 어떠한 것도 소유할 수 없다는 불변의 사실이 만고의 진리이자 자연의 이법이요 인간사의 상정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생을 유지해가는 동안 어느 정도의 물질적인 공급을 받지 않으면 더 이상 생명을 이어 갈수 없다는 안타까운 딜레마가 있는데, 하늘이 내려준 삶을 위한 최소한의 물질적인 욕망마저 버리면 결국에는 소멸이 있을 뿐입니다.

생존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근원적인 에너지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면 건전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어질 것입니다.

생명을 유지해가는 존재에게 최소한의 물질에 대한 욕망은 생의 원동력이 될 것이며, 이를 의도적으로 버리려 애쓴다면 또 다른 욕망의 극적인 표현으로 비추어질 것입니다.

명예를 바라는 인간의 본성 또한 삶의 근본적인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품위를 지키려 하는 성향이 또한 명예를 중요시 하는 기본적인 인격을 형성하게 되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한 와중에서 본의 아니게 도를 넘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집착에 의하여 때로는 죄악의 구렁텅이에 들기도 하고 존재의 의미를 퇴색시켜 나락에 떨어지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이름의 굴레로 보여 집니다.

소유하거나 소유 하지 아니하거나 모두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논리일 뿐, 알고 보면 진실로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내 것인 것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이생을 영위하는 동안 잠시 맡아두고만 있을 뿐이기에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이를 지켜내려는 노력이 따라야 하는 것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질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맑은 업보를 쌓아간다는 야심에 차 있던 시절이 문득 지나버리고, 마치 사면초가로 까지 느껴지는 주변 사람들의 애환으로 어디에서부터 누구를 어떠한 정도로 도와주거나, 축하를 해주거나 최소한의 인연에 대한 기본적인 도리를 다하여야 하는 부담은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게도 만듭니다.

결국에는 이러한 모든 요인들이 인생의 말빚도 되고 삶의 빚도 되어, 마음을 아프게 하여 풀어가기 어려운 업보로 쌓여가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망망한 바닷가에 널려진 모든 물질들의 잔해로 비추어지는 내 인생의 편린들 앞에 미완의 참회와 함께 어차피 원죄를 지고 태어난 인간으로서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져 죄를 논하게 될 것인지 한없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냉정하게 등을 돌려 떠나온 바닷가에 아쉽고도 고독한 미련을 남겨둔 채 표표히 떠가는 낡고 헐거워진 목선 한척이 어디에 고단한 노를 접어 정박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염화시중의 미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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