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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길 백리, 희망의 나라로
  • 기사등록 2012-10-23 1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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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소리 없이 미끄러지면서 살그머니 외달도의 선착장에 발판을 내리더니 이내 섬과 하나로 결합을 하게 됩니다.

내리는 사람과 오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전 울림 선생님의 음향기기를 서둘러 차에 싣고 이제는 배에서 내려야 합니다.

뒤늦게 뱃전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외달도에서 볼일을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중 한사람은 나에게 형이라 하고 또 한사람은 동생이라 하면서 배로 올라서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형, 아니면 동생들처럼 정겨운 사람들이지만 평소에 정을 나누던 두 사람을 이곳에서 만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건만 또다시 따르는 이별이 아쉽기만 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이 빠르고 허전하지만, 오늘 우리들의 인연을 한층 더 의미 있는 것으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목적지를 향하여 열심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언제나 변함이 없던 백사장과 송림 사이를 지나 언덕배기 돌아드는 골목길을 쉬엄쉬엄 넘어갑니다.

이곳에 올 때 마다 들러 몇 병정도의 입맛을 보았던 고구마 막걸리 집을 잠간사이 반대편 길로 접어들어 지나쳐 버렸지만 연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전의 꼬불꼬불하고 좁던 골목길은 이제는 제법 단장을 하고 넓고 깨끗한 모습으로 변모 하여 도시의 향내를 약간 풍기기도 합니다.

언덕을 넘어서니 수영장과 하얀 천을 뒤집어 쓴 야외 공연장이 눈에 들어오고, 길가의 감나무 등은 여름 태풍으로 얼마나 혹독한 풍파를 견디었는지 빈약한 열매만 외로이 매달고 잎사귀는 떨어지고 거의 없는데 그나마 갈색으로 말라 있습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의 청초한 꽃잎과 함께 완연한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한적한 섬에 우리는 다 같이 복잡한 일상을 탈피한 기쁨으로 앞에 차려진 풍성한 상을 맞이하여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그동안 나누지 못한 정리를 풀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잔에 술을 따라 높이 들었는데 백연회 이사장이신 김 환 선생님께서 “뱃길 백리 선상시 낭송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건배사가 있었으며, 한잔의 추억을 진하게 들이킨 모든 사람들은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습니다.

몇 순배의 술잔이 오고 가는 동안에 누군가 접어진 핑크색 쪽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는데 깜짝 놀랄 소식을 기대하며 조심스레 펼쳐본 편지에는 아무런 내용도 없는 그야말로 허공입니다.

침묵을 깨고 여기저기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라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취산 조 용백 선생님께서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선물로 내놓으셨는데 당첨자는 ‘행운이 바람처럼 그대 깊은 가슴에’라고 쓰여 있다고 하자 옆자리에 있던 박 행자 시인이 환호성을 지르며 성난 독수리처럼 달려 나가 재빨리 수상을 하였습니다.

몇 해 전에도 선생님께서는 ‘꽃잎에 길을 묻다’라는 제하의 명작을 표구까지 깔끔하게 해서 행사 참석자에게 선물하신 적이 있었는데, 제가 자리를 정하여 옆자리에 앉도록 하였음에도 딱 두 칸 차이로 행운이 박 행자 시인에게로 날아 간 것입니다.

발표에 이어 너무나 쉽게 무너져 버린 기대감에 참석자들은 허전하여 쪽지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제가 조 용백 선생님께 하나의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중에서 한분을 더 추첨하여 내년에 부채 1점을 선물로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하자 여기저기에서 환호가 터져 나오고 선생님은 흔쾌히 승낙을 해주셨습니다.

빈 쪽지에 자신들의 이름을 정성스레 작성하여 반으로 접은 것을 모자에 모두 수집하여 깨끗한 접시에 담아 취산 선생님께 다시 가져다 드렸습니다.

이윽고 긴장되는 순간 마른침을 삼키며 제 각각의 기대를 모아 자신의 이름이 불려 지기를 고대하는데, 결과 발표와 함께 오 승희 시인이 환호성을 울리고 주변의 축하하는 박수소리로 한차례 요동이 일었습니다.

제1부에서 정 인태 시인이 오늘 행사 책자 중에서 폐이지를 뛰어넘는 편안한 진행으로 나머지 참여자와 순서를 정리하는데 약간 혼선이 있었습니다.

작품을 제출하고서 낭송을 하지 않으신 분, 책자에는 작품이 없어도 참석하신 분들을 망라하여 서운함이 없도록 진행을 하려면 상당한 조율이 필요하여 둘이는 고개를 맞대고 한참동안 회의를 하였습니다.

전남시인협회장이신 윤 영훈 선생님께서는 ‘어느 주막집 풍경’, 나주문인협회장 김 홍식 시인께서는 ‘안개바다’, 강 성희 목포해양경찰서장님께서는 시조 시 ‘목포구 1’, 이 종숙 시인은 ‘순천만 푸른 갈대’, 박 경서 소설가께서는 ‘어머니, 그리고 바다’라는 시와, 김 혜숙 시인은 ‘난타’, 목포문인협회 박 승자 시인께서는 ‘밤바다’, 농부시인 김종구 선생님은 ‘인생은 그런 거더라’, 윤 경관 시인은 ‘게 고동’, 시향문학회장이신 최 현규 시인께서는 ‘산행(야생화)’, 영광문화원장이신 정 형택 시인께서는 ‘간양록을 읽으며’, 목포문인협 이 순애 시인은 ‘가을은 날 사랑했다’, 전남시인협회 최 정웅 선생님께서는 ‘목포항 갈매기’, 전남시인협회 문 정권 선생님께서는 “풀잎에 떨어진 눈물‘, 현 진도 읍장이신 오 판주 시인께서는 ’그렇게 산다네(시애틀의 밤)‘, 목포 엠비씨의 국장으로 유헌 시인께서는 ’길목에서‘, 임 용운 시인께서는 ’밤 항구‘, 전 시향문학회장을 지내신 이 태웅 시인께서는 ’가을이 가기 전에‘, 선 익수 시인께서는 ’만추‘, 이태건 시인께서는 ’베드로 고기‘, 정 선 시인께서는 ’갈대‘, 목포시의회 의원이고 시문학회원이신 김영수 선생님께서는 ’태양‘이라는 작품을 제출하였음에도 바쁜 일상 때문에 참석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목포시문학 회원이신 강 해자 선생님은 ‘가을은 그리움이다’라는 제목의 작품을 제출하고 참석을 하였지만 급한 사정 때문에 선상에서의 1부 행사를 마치고 오던 길을 되돌아 가야 했습니다.

몇 순배의 음식과 술잔이 돌아간 다음 분위기가 저절로 올라 제2부의 막을 올려야 할 때가 되었는데 축하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웠습니다.

첫 발표자로 지명하여 목포문인협회의 김 혜숙 시인을 힘차게 불렀는데 어디를 둘러보아도 보이지를 않아 알고 보니 참석을 못하셨는데도 파악을 잘못하여 오늘의 명사회를 자처하는 우리들의 유일한 실수가 맨 처음부터 시원하게 터진 것입니다.

머쓱한 정적이 지난 뒤 제가 처음부터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더니 장내에는 폭소가 쏟아졌습니다.

이어서 청년 시절 영산포의 사거리에 있던 추억의 집 ‘남영 통닭’ 호프집에서 이따금 뵈었던 고향의 어르신 정 무웅 시인을 소개하였습니다.

배가 출발하기 전 터미널 2층에서 만나 반갑게 맞이하는 동안 저에게 ‘흰머리 소년’이라는 제하의 시집을 선물로 주셨는데, 제2의 흰머리 소년이 저라고 하면서 빨간 모자를 벗어 들었더니 장내에 또다시 폭소가 터졌습니다.

마이크를 잡고서 시인께서는 무상한 세월의 건너편 까마득한 과거의 기억을 설파하셨는데 6. 25동란 중, 당신께서 10살 무렵쯤 북쪽에서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다 무작정 영산포역에서 내린 뒤로 어언 60여년 세월이 거침없이 흘러갔다고 토로 하였습니다.

인생의 노년에 우여곡절을 딛고 자신 속 또 하나 ‘흰머리 소년’을 발견하고 시집을 내게 되었는데 초판에 1,000부를 발행하고 또다시 1,000부를 추가로 발행하여 약간의 여유분을 가져왔다고 하셨습니다.

서문에 ‘내 안에 있는 노인과 소년이 더불어 흰머리 소년이 되었다. 흰머리 소년은 하늘, 땅, 바람을 벗 삼아 살아온 나의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유년에게로 구김 없이 돌아가 살고 싶은 것이다. 다 늙어서도 여전히 철없이 친구들과 놀다가 엄마를 찾는다. 그러다가 문득 인생에 선문답을 한다.’고 술회 하였습니다.

‘낙서’라는 제목으로 ‘그 사람이 떠난 곳/ 따라가고 싶다/ 완행열차는/ 떠나고/ 철길 닿는 곳/ 하늘/ 땅/ 꽃 피듯/ 얼룩덜룩한/ 우리의 낙서가 있는 곳/ 그곳에 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애잔한 가슴에 잔잔하게 퍼지는 무언가 목이 매이는 숙명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슬픔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다음으로 전남시인협회 이사 이신 양 치중 선생님을 모셨는데 ‘목포, 첫정의 만남’ 이라는 제목으로 ‘섬 천사가 바닷물을 떠서 춤추는/ 꿈과 낭만의 항구/ 젊은 날 첫정을 불태워 동경했던 목포./ 중략/ 모두 자라 익은 봄빛이 산딸나무 꽃잎에 포개어/ 하얀 덧샘은 계속 도는데/ 지친 삶 붉게 영그는 긴 여정의 외로운 길목에서/ 그대 품에 안기어 지그시 눈 감으면/ 콧속에 스미는 강렬한 임의 채취’를 낭송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전남시인협회 부회장이신 이 이행 선생님께서 ‘피아골에서’라는 제목으로 ‘한 시대를 뜨겁게 달군/ 이념 하나로/ 서로를 겨누던/ 치욕의 총부리를 거두고/ 살벌하게 회오리치던 / 피바람도 재우고/ 산하엔 씻은 듯이 / 평온이 깃들어/ 다시 목가가 울려 퍼진다./ 중략/ 오롯한 태고의 정적/ 그 정밀한 숨결이/ 갈기갈기 찢겨가 버린/ 얼빠진 골짜기마다/ 다시 숨결이 돌아/ 새들은 노래하고/ 선혈이 씻길 계곡물은/ 청옥처럼 푸르른데/ 처절하게 죽어간/ 꽃다운 목숨들이/ 뻐꾸기 되어/ 해 종일/ 피를 토해 울어 앤다’고 동족상쟁의 아픔을 애절하게 표현하셨습니다.

김 혜자 시인은 ‘동백’이라는 제목으로 ‘조잘대는 개울물 소리에 아침을 여는 산사/ 한겨울 눈보라도 이겨낸 빨간 정열이/ 봄을 맞이하는 화려한 길목에서/ 눈물처럼 뚝 뚝 떨어지는 연유를 누가 알까요./ 은은하게 들려 우는 목탁소리/ 회자정리야 어길 수 없는 섭리 이지만/ 피안의 약속을 어찌 믿을꼬/ 중략 (시인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하면서)/ 보내야지 보내야지 다짐하면서도/ 차마 손을 놓지 못하고/ 가야지 가야지 다짐하면서도/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 이 안타까움을 누가 알까요/ 사랑한 세월만큼 더 아파야/ 그때 가서 겨우 잊혀 지려나/ 겨울가고 봄이 가고 또 여름이 가면/ 그 때 가서 겨우 겨우 잊혀 지려나/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지/ 오늘도 피고 지는 핏빛 동백.’으로 마무리를 짓는데 눈물은 폭포가 되어 흩어지며 온통 얼굴에 범벅으로 애달픈 연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역시 이세상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곳곳에 있기에 위험스런 자세를 고쳐 잡아 새로운 날들의 희망을 꿈꾸는 가 봅니다.

다음으로 나주 문인협회 사무국장을 맡아 보시는 김 승환 선생님께서 올해 93세인 어머님께서 나주 향교에서 선정한 장한 어머니 상을 수상하셨으며, 둘째 아들이 전남 글로벌 인재장학생에 선발이 되었으며, 생애 첫 선상 시 낭송회에 참석하여 멋진 가을여자와의 데이트를 갖게 되는 인생 3락을 얻었다면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인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 하였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위에 당신의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를 힘차고 정감 있게 낭송 하셨습니다.

뒤늦게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머리를 흩날리며 성큼성큼 걸어와 일행에 합류한 김 경애 시인께서 ‘낯선 저물녘 노을빛 같은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고아처럼 외로워진다/ 태풍 지나간 자리/ 지붕은 폐허처럼 뚫리고/ 가리고 싶던 남루한 살림살이/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싶은 밤/ 엄마는 늘 그랬을 것이다/ 차가운 살덩어리 한 웅큼 떼어/ 중략/ 울부짓는 여자 목소리’로 마감하면서 사무치도록 그리운 ‘엄마 목소리’를 소회 하였습니다.

시향문학회 사무국장인 박 춘임 시인은 ‘소리 내지 않아도 /손금처럼 흐르는/ 이 나라의 영혼이 있는 / 그래서 독도는 저토록 은근한 것이다.’고 ‘독도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민족혼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국악인 고 완심 선생의 순서는 자신의 전공이 아닌 대중가요 ‘날개’를 불렀습니다.

그의 언니 고 복록 시인은 자작시를 구성지게 낭송 하였습니다.

오 승희 시인의 부군 정 희남 선생님께서는 ‘뿐이고‘를 불렀는데 아마 자신의 사랑스런 그 분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박 행자 사회자가 ‘시인은 시로 그림을 그리고, 화가는 그림으로 시를 쓴다’면서 동양화가이신 청남 이원조 선생님을 소개 하였습니다.

언제 들어도 감칠맛 나게 부르는 가곡으로 열화와 같은 팬들의 앙코르를 받았는데 이후 몇 곡조 더 부르셨습니다.

서석문학 작가회장을 역임하고 계시는 김 석권 선생님은 시 낭송과 노래를 하셨습니다.

김 환 이사장님께서는 이순희 선생님의 시 ‘깨꽃의 지조’를 낭송 하시고는 최 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부르셨는데 ‘첫사랑 그 여인은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라는 대목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나의 친구 윤 금국이는 뒤늦게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처음으로 참석하여 찬조금도 내고 무대에 올라 온몸으로 부르는 노래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를 열창 하였습니다.

뒤이어 흥이 많으신 취산 조 용백 선생께서 가곡을 부르시고, 무안 문인협회장을 맡으신 손 수진 시인께서 연이어 자작시 낭송을 하여 주셨습니다.

전 울림 선생의 친구인 박경수 선생님께서도 노래 한곡 불러 주셨습니다.

행사 도중에 배를 타려고 나가는 사람들로 인하여 약간의 동요가 있었으나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되었든
오늘의 행사는 어느 사이 박수와 환호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소개를 하였던 정 인태 시인이 제출한 ‘바다의 속내’는 작자가 1부를 마치고 급하게 자리를 비운사이 미아가 되었으며, 인쇄 과정에서 소절의 띄어쓰기가 되지 않아 우여곡절을 거쳐 온통 짜깁기를 하였던 나의 푸념 ‘흔적’은 바로 잡아야 할 기회조차 놓치고 본모습을 잃어 방랑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좌충우돌의 고단한 내 모습을 순식간에 비춘 흑백 사진 같기도 하고 빛바랜 초상화에 흡사하다고 느껴져 만면에 퍼진 웃음 뒤에 알지도 못하는 허전함이 쌓여 갑니다.

왁자지껄하며 선착장으로 향하여 가보니 그사이 돌고 돌아가는 배는 이미 떠나고 없습니다.

또다시 백사장에 모여 예정에도 없던 3부 쇼가 벌어졌습니다.

국악인 고 완심 선생께서 먼저 시동을 걸었는데 춘양가의 한 대목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익어가는 가을의 즐거운 한 때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취산 선생님이 가곡 ‘보리밭’을 부르시고 앙코르를 받아 몇 차례의 외달도 페스티발에서 그야말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서툰 진도아리랑을 각색하여 부르고 모두가 후렴을 따라 하였는데 이후로 계속하여 가사가 이어지고 후렴은 합창으로 이어졌습니다.

몇 년 전에도 바로 이 자리에서 ‘노오세 노오세 젊어서 노오세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놀다나 가세, 후렴이 이어지면 ’저 산에 딱따구리는 생나무도 잘 뚫는디 우리 집에 멍충이는 뚫린 것도 못 뚫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지느냐 가는 세월 잡지 못해 그저 지고 있노라‘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나았네-에에,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에‘ 갈수록 흥이 납니다.

김 혜경 선생의 가곡이 몇 차례 이어지는 동안에 시간은 무심하게 바다에 흐르고 기다라던 신진페리호가 드디어 우리를 데리러 온 엄마처럼 포근한 가슴으로 따뜻하게 안아 줍니다.

한껏 부풀은 기분으로 우리가 포효를 하였던 배의 3층 행사장에서 소주와 막걸리 한 사발씩을 진하게 꺾고 전 울림 선생의 기타와 색소폰의 연주에 번갈아 맞추어 즉석 노래자랑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7080세대에 유행하였으며 대학가요제에 등장하기도 하였던 가곡들이 등장하다가 또 다시 ‘오빠 생각’과 ‘섬 집 아이’로 번져가곤 합니다.

누가 먼저 흥을 돋우면 득달 같이 모두가 달려들어 본능적으로 가락을 이어 가는데 정말 이런 좋은 노래판이 따로 없습니다.

결국에는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 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산천경개 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목포대교의 불 켜진 야경이 장관을 이루고 우리는 그 밑을 지나 정녕 희망의 나라로 가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뱃길 백리가 끝나갈 요량인지 어느 사이 목포항이 눈앞에 들어옵니다. 누군가 조용히 목포의 눈물을 선창합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 젓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이 끝나는 순간에 맞추어 배가 육지에 접안을 합니다.

하루 동안의 향연이 끝나고 서둘러 배에서 내려 대밭으로 날아들어 밤의 안락을 쫒는 비둘기처럼 하나 둘씩 도시의 불빛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아마 오늘은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즐거웠던 추억을 가슴속 깊이 간직한 채 고단한 몸을 눕혀 꿈같은 잠에 빠져들 것입니다.

그곳이 우리들 모두가 간절하게 희구하는 행복이 넘치는 나라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광주에서 이른 오후부터 내려와 기다리던 나의 친구 차동준이는 선창에서 차를 멈추어 놓고 도착한 우리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여 주고 같이 있던 금국이와 셋이 아직도 못다 한 회포를 풀기 위하여 길을 재촉합니다.

언젠가 펼쳐질지도 모르는 희망의 나라를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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