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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의 등대 장인환, 전명운 의사 목포보훈지청 보훈과 박래선 2009-03-16
김승룡
경제가 어렵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가 어렵다.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IMF를 극복한 저력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문제라 할 수 있었던 IMF 때와 달리 세계 전체의 문제라 극복이 녹록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위기에 더욱 강한 대한민국의 저력으로 어느 나라보다 빨리 어려운 경제현실을 극복하리라 믿는다. 그 극복의 첩경이 무엇일까. 참된 국민통합 정신, 나라사랑 정신으로 똘똘 뭉쳐야만 그 해답이 있다할 것이다.

그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영혼의 등대가 될 수 있는 것이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일 것이다.
지금부터 100여년 전 오늘 대한민국 영혼의 등대가 되기에 충분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장인환, 전명운 의거다.

지금부터 100여년 전 1908년 3월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 정거장에서는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삼천만 민족의 울분을 가슴에 안은 젊은 애국청년 장인환과 전명운이 쏘아올린 총성이었다. 그 세 발의 총성에 쓰러진 이는 한국 정부의 외교 고문이던 스티븐즈였다.

친일파로서 일본의 을사보호조약체결 등을 위해서 일해온 그는 1908년 3월 21일 워싱턴으로 가던 중 샌프란시스코에 들러 현지 신문에 일본의 한국침략정책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한인공립협회 등 샌프란시스코 거주 한인들은 합동으로 대책모임을 갖고 스티븐즈의 망언을 규탄하고 정정을 요구했지만 스티븐즈는 반성의 빛도 없이 정정에도 반대를 하는 등 삼천만 우리 민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스티븐즈가 우리 민족의 가슴에 박은 대못은 젊은 애국청년 장인환과 전명운에 의해 총탄이 되어 그의 가슴에 박혀 3일 후 사망하기에 이른다.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의열 투쟁은 미주 내에서 일어난 첫 무력항일투쟁이었고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의 한국 합병의 부당성을 전 세계에 알린 뜻 깊은 의열 투쟁이었다.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의열 투쟁이 있은 지 10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애국청년 장인환과 전명운의 나라사랑 정신을 마음에 새겨 영혼의 등대로 삼아 한마음으로 노력할 때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위기를 벗어나 바다를 향해, 선진일류국가를 향해 순항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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