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세상
- 나무의 나이테처럼 이른 아침,무안 회산백련지 연꽃을 본다 빨간 파라솔 아래에서 시집을 읽는다 산들바람이 불고 개구리가 뛰고왜가리가 천천히 걷는다 연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지긋하게 새겨지는 나무의 나이테처럼일상이 소소하게 스며든다 연꽃을 들여다보며시가 천천히 내게 오기를 기다린다 2023-04-24 김승룡
- 미련 세월을 뛰어넘는 아쉬움과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는그냥 미련으로 남겨 두자 옷깃에 스며든 정직한 땀 냄새어디에 있든남새는 보이지 않지만보이는 것보다 더욱 선명하지 않던가 잊어야 할 것과잊지 말이야 할 것, 모두평생 보듬고 살아야 할 미련은지난 세월이 남겨준달콤한 슬픔 2023-04-17 김승룡
- 삼학도의 밤은 몇 차례 사리와 조금을 건너야으스름달 표정에 무심할 수 있을까 챠르챠르 찰랑이던 파랑도내 곁에 묵묵히 입 다문 바다 닻별과 붙박이별은눈빛을 아는 체 깜빡깜빡 내 맘 따라 돌던 별도네 맘을 따라 간다 2023-04-04 김승룡
- 또 다른 자화상 앞도 못 보고뒤도 안 보고 조금씩 파버린내 안의 검고 깊은 늪 그 속에서 까치발 들어내다보는 오늘 또 내일 그래도일기 속에 순한 말로 살고 있는또 다른 자화상 하나 한번은나였다가도 한번은너였다는 듯엉킨 실타래 풀고 있다 2023-03-27 김승룡
- 남풍이 데리고 온 봄날 유달산 둘레길을 돌아대반동 바닷가 길로 돌아선다혹독하게 몰아쳐등판을 밀고 가던 차가운 바람이어느덧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늦춘다옷깃을 여미지 않아도매섭지 않은 바람이 가슴에 안긴다햇살도 아지랑이처럼 흐릿하게 걸린 오후추위에 움츠렸던 가지들이살며시 눈을 뜨고흩어져 있는 햇빛들을 불러 모은다어느새 다가와 포근히 안... 2023-03-20 김승룡
- 겨울나무 한겨울 죽은 듯이 숨죽여칼바람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언젠가는 찾아올 봄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한풀이를 하듯바람은 어둠 속에서도나무들을 마구 흔들었다 바늘구멍만 한 틈새만 보여도헤집고 들어가 덩치를 키우는 황소바람과맞서 싸운다는 것은 무모한 일 살아남기 위해서는더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뻗어야 한다며힘내자고 힘내라고 ... 2023-03-13 김승룡
- 어느 고백의 묘원 늦가을만 되면 울긋불긋 단풍에 미친다이 또한 쓸쓸한지고 병동이 나무인지라잎 돋으면 저절로 낫는 병이라고 하지만 병명도 모른 채 길어지면 뭐꼬 실존과 무관한이 유구함이여 삶의 궤적 은유는 “가을만 되면 단풍을 미치게 한다” 이 요 허리 병을 치료받고직유가 되는 날 언뜻언뜻 잎 사이로 다른 하늘을 드러내는, 참혹해질까 ... 2023-02-28 김승룡
- 인생은 그런 거더라 이 세상 살다보면어려운 일 참 많더라하지만 알고 보면어려운 것 아니더라울고 왔던 두 주먹을빈손으로 펴고 가는가위 바위 보 게임이더라 인생은 어느 누가대신할 수 없는 거더라내가홀로 가야할 길인연의 강 흘러가는알 수 없는 시간이더라쉽지만 알 수 없는인생은 그런 거더라 2023-02-22 김승룡
- 거래 구석진 곳반으로 접힌노인이 꾸는 꿈속에자주 등장하는 저승이라는 곳이 있다고 했다내일을 기약할 수 없어 장롱 속을 가지런히 정리하고가스렌지 기름때도말끔하게 닦는 게 습관이 되었다며보플보플 일어나는 저승꽃 만발한 온 몸 구석을말간 물 흐르도록 닦고 또 닦는다손이 닿지 않는 곳이야 눈에 보이지 않으니끊어진 회로처럼 방치... 2023-02-01 김승룡
- 인생 소묘 순간이다 배냇저고리와 수의 사이의 짧은 시간이다 첫 이와 틀니 사이 공간의 거리 달리기다 탯줄과 분향소의 향 사이생을 채색할 그림은 내 손의 붓에 달렸다 삶,언젠가 우리가 닿아야 할 결승선을 향한사랑의 경주다 머루 빛 삶의 잔디 위에서행복의 홀컵을 향해 구르는 공이다 2023-01-25 김승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