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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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날 기다림은 여지없이 무너졌지만훈훈한 기별이라도 흘러들까귓볼 열어놓고 가슴 설렌다 돋보기 위에 확대경을 걸쳐도앞산이 아슴프레 아른거리는 아침,우편함 속에선 전날 늦게 배달된우편물의 잠꼬대가 한창이다 문패가 없어도택배기사의 구둣발소리투박스럽게 다가오는 날코로나와 백신의 숨바꼭질 얘기로시장끼 떼우긴 시기상조다 장... 2022-03-31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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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정표 출렁다리 건너면 동화 같은 그림이다일상의 이정표를 손에서 놔야 보이는서정이 울긋불긋한 시어들이 밀려온다 짓누르던 내 몫의 일손을 멈춰놓고다리를 지나오며 내려놓은 큰 시름이벌겋게 취한 단풍을 스스로 소진 한다 세상의 소음들을 삼켜버린 호숫가에밤새운 물보라가 그 소임 다하는 날가을 길 돌아본 개울, 겨울을 재촉한다 2022-03-24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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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장 돌아가신 지 마흔아홉 번째 봄날벽장 속 빛바랜 보자기를 꺼낸다아버지의 일기장이다 젊은 날의 참회가 기록된 닳고 닳은 일기장먼지 수북하고 안색이 노오랗다 마흔아홉 나이에 훌쩍 떠난손대면 푸석푸석 거리는 아버지 유품아버지가 계신 저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부뚜막에 태운다 “황성 옛 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 2022-03-17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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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에 서 있는 그리움 달은 저 넓은 하늘에 촘촘히 별을 심어 놓았다 갓바위 예술회관 앞데크에 우뚝 선 시 판화를 심연 속으로 삼킬 듯 밀물은 차오르고달빛은 내 뒤를 따라와쏟아지는 기억들이 내면을 적시고 삼학도 앞바다에 그리움들이 노를 젓고 있다 어쩌면 판화에 쓰인 시어처럼내 가슴속에 남아있는 아픔과 사랑그리고 어머니와 걷는 동안 詩속에서 나는... 2022-03-11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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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손을 놓지 못하시는가 잎이 지는 것도 순서가 있다 합니다 역설처럼,맨 먼저 피는 잎이 맨 나중에 지고맨 나중에 피는 잎이서둘러 지는 것도 있습니다 혼신으로 붙들고 있는 것도잎새가 아니라내내 붙들고 지내온 나뭇가지입니다 우리의 생애처럼삶은 애착이겠지요끝끝내 붙든 손을 놓지 않으려는 것이겠지요 함께 어울려 사는 내내제 몸뚱이를 목숨껏 껴안은저... 2022-03-03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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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아버지 동이 트기도 전신발 끈을 바짝 동여매고 나가는아버지의 등 뒤에는 어느새바람과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다녀올 게.안개에 젖은 듯 왠지 축축한 그 말에는 세상길 빗물 가득 고일지라도그럼에도 머뭇거리거나길 잃지 않고저녁이면 돌아오겠다는 비장한 약속이었다 무심했고, 근엄했고그래서 늘 퉁명스러웠던 사람 자식들 사랑은 다 아내... 2022-02-24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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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외로울 거라 생각지 마라늘 그만큼의 거리에 서서그대의 울타리가 되나니그 울타리 속 그대가곧 나이기도 하나니외로울 거라 생각지 마라서로의 영혼이 진정한 소리를 듣기 위해준비된 침묵의 거리당신과 나의 꼭 그만한 거리 2022-02-17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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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와 자리 산등성이 외딴 의자가로등이 애써 비추고누군가 지친 영혼 가슴으로 받아 내산어머니가 어렵사리 지켜내던 의자.구두굽이 어지러이 호령하며말굽보다 친절한 발굽이진실을 능멸하여 이겨대고 그 발 아래 부모와 형제들의 현흔이 쌓여가고갈 곳 없는 민초들의 등짝에는 피고름이 맺혀 가는데결국에는 나라마저 정지를 잃는다면천추의 한... 2022-02-14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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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을의 오후 베란다 쪽에서들어온 빛이 바닥의 먼지들을만지고 있다 빛에 닿지 못한응달진 것들은 가벼이 날아올라고인 침묵을 건너간다 그늘을 바깥으로꺼내가는 소리에창밖을 기웃거리는음지식물들이어둠속으로 고개를파묻고 있다 집안으로 들어 온풀 여치 한 마리가 따갑게 파고드는쓰린 노래로 고여 있던 기억을흔들어 댄다쓰르륵 쓰륵. 2022-02-10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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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사 미륵바위 난바다 떠난 걸음 인연인가 멈춰 서서아가미 닫은 채로 탐진치 꺾는 순간 한맛비 너덜겅 치니경쇠 소리가 법문이다 수많은 고기떼가 이 골 저 골 누워서적묵寂默 속에 한근심 풀어내니 다 부처라 상영산上靈山 젓대 가락에돌미륵 눈 살그미 떴다 2022-02-04 김동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