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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고라니 시인 학생
  • 기사등록 2014-09-29 21: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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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내외분이 세 자녀랑 문덕으로 귀농을 하셨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겨우 두 집이 있는 산골을 선택하신 걸 보면 용기와 신념이 대단하신 분들이었다.

자녀들은 1학년 아들과 유치원생 두 딸을 두었다. 나는 어른으로서 그분들을 격려하고, 교장으로서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를 드리려고 노력했다.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큰 따님은 아토피가 거의 나았다.

1학년 짜리 아드님도 잘 적응했다. 도시에서 자라 피부가 하햫고, 낯설고 수줍어서 눈을 안 맞추는 아이에게 나는 소소한 말이나 장난을 걸었다. 차츰 정이 들었고, 정답게 대화를 하게 되었다. 아이의 부모님은 교육에 관심이 많으셔서 학교 행사에 내외분이 동반하여 꼭 오셨다.

“시골 학교 교육이 이렇게 훌륭한지 몰랐어요. 체험 학습도 많이 다니고!”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교육을 더욱 잘 해서 기쁘게 해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3월 중순 경에 환경정리를 할 때 아이의 동시가 눈에 띄었다.

고라니

고라니야, 숲 속에서 뭐해?/ 난 마을에서 산단다.
고라니야, 넌 누구랑 놀아?/ 난 동생들이랑 논단다.
고라니야, 넌 달리기를 잘 하니?/ 너랑 달리기 경주를 하고 싶다.

“와우, 동시를 참 잘 썼네. 근데 혹시 노루가 아니었을까?”
“아녀요, 고라니가 맞아요.”
“그래....... 고라니가 식구들이랑 있든?”
“아기 고라니 혼자였어요.”

똑똑하게 대답하는 아이에게 훌륭한 시인 되겠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그 뒤로 가끔씩 “고라니 시인님!”하고 불러 주었다. 담임 선생님과 상의해서 작은 액자에다 고라니 시 액자를 예쁘게 만들어 주었다. 시의 재능도 칭찬하고, 부모님께 기쁨을 드려서 격려할 뜻도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에 용기와 희망을 얻는 학생들을 많이 보았다. 이 아이도 여러 선생님들의 격려로 점점 야무지게 자라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도서실에서 책도 잘 읽었다.

1학기 때 장소를 기꺼이 내어 주신 김영훈 교장 선생님 덕분에 복내초등학교에서 보성의 북부 4개면-문덕, 복내, 율어, 겸백-초등학교 98명이 백일장을 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글 잘 쓰기’를 강의했다. 제목과 첫줄의 중요성 그리고 독특한 문장 등 어려운 내용인데도 집중해서 들어주어서 아주 고마웠다. 글제 출제와 심사는 전남문인협회의 명성 있는 문인들이 하셨다. 그런데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아이가 1학년인데 운문부 장원을 한 것이다.

꿈을 보는 텃밭

우리 학교 텃밭에/토란을 심었어요.
우산처럼 펼쳐지는/초록 토란잎 //
우리 학교 텃밭에/상추를 심었어요.
파릇파릇 상추 잎/쌈 싸서 한입 쏙//
우리 학교 텃밭에 청겨자, 고추, 수수
감자, 열무도 심었어요./잘 자랐으면 좋겠어요.//

이 아이가 세계적인 훌륭한 시인이 될 것 같아 가슴이 설랬다. 부모님들도 아이 덕분에 덩달아서 가슴 속에 희망의 등불이 크게 켜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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