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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相思花)의 가르침
  • 기사등록 2014-09-29 22: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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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국]학교 교정에 여름이 끝날 쯤에 상사화 몇 포기와 줄지어선 꽃무릇이 활짝 피었다. 초여름까지 무성했던 잎들이 시나브로 지고나면 빈 땅에서 꽃대가 힘차게 솟아오른다. 신비스러운 꽃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생명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느끼게 된다.

재작년에 교실 동편의 화단 경사면이 잔디가 반들반들 닳아져 있었다. 학생들이 바로 옆에 있는 층층대(계단)로 다니지 않고, 배롱나무 밑으로 보르르 달려서 운동장으로 내려다녔던 것이다.

돌로 쌓은 층층대가 초등학생들이 다니기에는 높이가 조금 버거울 높이였다. 층층대가 돌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고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즐겨 다니는 길은 경사가 급해서 자칫 구르거나 넘어질 염려가 있었다.

나는 이 길로 다니지 말라는 뜻으로 헌 의자를 놓아두었다. 그런데 며칠 동안 관찰해 보니 더 위험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노루처럼 의자 위를 훌쩍훌쩍 뛰어 넘어 다녔다.

그 때 마침 넛지 효과(nudge effect)가 생각났다. 굳이 말로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고 다니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도하여 개선하는 방법이다. 남자 공중화장실 소변기에 파리 그림 스티커를 붙여두고 그곳에다 소변을 보도록 하는 것이 바로 넷지 효과이다.

청소원 아주머니께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한 상사화를 의자가 있는 곳에 옮겨 심자고 하였다.

“아유, 교장 선생님, 부잡스런 아이들이 가만둔답니까? 괜한 헛수고여요!”

“아니요, 나는 우리 학생들을 믿어요. 두고 봅시다.”

의자를 치운 곳에 상사화가 씩씩하게 자랐다. 나는 날마다 상사화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이들이 의자처럼 폴짝폴짝 뛰어 넘으면 상사화 잎이 아이들 발에 닿아서 상처가 날 것이었다. 그런데 일주일째가 되어도 상사화는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아, 고마운 친구들!’

나는 속으로 감탄사를 불렀다. 아이들은 의자를 놓아둔 의미와 상사화를 심어둔 의미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넛지 효과를 제대로 본 셈이다.

“신 여사님, 우리 학생들이 대단하지요?”

“예, 교장 선생님이 말씀이 맞았어요. 우리 학생들 참 착하네요.”

그 뒤로 등산로처럼 반들반들하게 닳아졌던 자리에 잔디가 파랗게 자라났다. 잔디가 씩씩하게 자랄 때 쯤 상사화 잎이 시들자 신 여사가 베어내 버렸다. 나는 또 가슴을 통개통개 조리면서 상사화를 베어낸 자리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그 오솔길을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해에 상사화의 연분홍 꽃대가 힘차게 올라왔다. 며칠 있다가 커다란 꽃들이 활짝 피었다. 저학년 학생들이 신기하게 꽃을 들여다보다가 이름을 물었다.

“상사화란다. 너희들이 지켜준 상사화란다.”

상사화와 꽃무릇 이름표와 함께 다른 꽃과 나무들의 이름표를 꽂거나 매달았다. 상사화를 지키기 위해서 샛길을 다니지 않는 학생들의 고운 마음씨가 대견했다.

그 무렵에 식물을 좋아하는 학교 운전원 김 선생님은 학교 버스에서 학생들에게 교정에 있는 꽃과 나무의 이름을 물어 보아서 맞힌 학생들에게 상을 주었다. 그 덕분에 학생들이 교정의 꽃과 나무에 관심을 갖고 이름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며칠 전에 5학년 여학생들 몇 명이 교장실에 와서 교정의 벚나무에 까맣게 열려있는 버찌를 따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럼 되고말고! 대환영이다. 다치지 않도록 조심만 하거라.”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수채화처럼 떠오를 고운 추억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나도 아이들의 안전을 살펴보면서 같이 어울려서 버찌를 따먹었다. 신기하게도 나무에 따라 버찌 맛이 모두 달랐다. 더 달콤하거나, 더 새콤하거나 혹은 더 쌉싸름했다. 아이들은 버찌를 맛있게 따 먹었다. 손이며 혀와 입가에 까만 물이 들어서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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