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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을 기억하며
  • 기사등록 2010-01-29 18: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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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경제불황으로 그 어느때보다 힘든 작년 한해를 보낸 많은 국민들이 희망찬 한해를 보낼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했던 2010년이 시작 된지도 어느새 2월이 되었다.

연초부터 세종시라는 민감한 정치사안속에 지역간, 계층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고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살리기는 정부의 여러 정책들 중에서도 올 한해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이러한 국민의 관심이 일방적으로 한쪽으로 쏠리면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닌지 안타깝다.

다가오는 2월 8일은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이, 그것도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재일유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지 91주년이 되는 날이다.

2.8독립선언은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의 간접영향을 받았다. 직접적으로는 재미 한국인들이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한 미국의 원조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미국 정부에 제출했다는 보도와, 파리강화회의 및 국제연맹에서 한국을 비롯한 약소민족 대표들의 발언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재일 유학생들 사이에서 독립운동의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이루어진 것이 바로 2.8독립선언이다.

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는 1919년 1월 동경기독교청년회관에서 웅변대회를 열어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운동을 시작해야한다고 결의하고, 실행위원으로 최팔용, 김도연 등 10명을 선출하였다. 실행위원들은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민족대회소집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송계백을 국내로 이광수를 상하이로 파견하였다.

2.8선언서와 청원서를 각국 대사관 및 일본 정부.국회 등에 발송한 다음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유학생 대회를 열어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으나 일본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10명의 실행위원을 포함한 27명의 유학생이 검거되는 등 온갖 핍박을 받게 된다.

2.8독립선언은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등 근대 학생운동과 맥을 같이 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2.8독립선언의 맥은 3.1운동으로, 또 임시정부수립으로 이어졌고, 그 장소가 다른 곳도 아닌 일본제국주의의 본토인 도쿄에서 ′일본이 만일 우리 민족의 정당한 요구에 불응할진대 우리 민족은 일본에 대하여 영원히 혈전을 선언하노라′라고 외쳤던 그들의 몸을 바친 나라사랑 정신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짐을 느낀다. 2월은 우리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이 있는 달이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일 또한 의미 있겠지만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준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그들의 뜨거운 가슴을 나누어 볼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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