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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지와(井中之蛙) 남가일몽(南柯一夢)
  • 기사등록 2011-01-24 17:32:33
  • 수정 2014-11-25 00: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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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박영동]“장자”의 “추수편”에 황하의 신 하백(河伯)이 물을 따라 처음으로 바다에까지 내려와 보니 끝없이 펼쳐진 동쪽바다가 얼마나 크고 넓은지 너무나 놀라 북해의 신인 약(若)에게 “나는 이제까지 이 세상에서 황하가 가장 넓은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바다를 보고 나니 넓은 것 위에, 보다 넓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속담에 ‘겨우 백 개 정도의 도를 듣고서는 자기만한 자가 천하에 없는 줄로 안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동안 공자의 견문도 보잘 것 없다느니 백이의 의리라는 것도 대단한 것이 아니라느니 하는 말을 들었으나 여태까지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끝없는 모습을 목격한 지금은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여기를 와 보지 않았던 들 영영 식자들의 웃음거리가 될 뻔 했습니다“라 고백을 하자 북해의 신이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사는 곳에만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오.

여름 벌레에게 얼음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배운 상식에만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강에서 나와 큰 바다를 구경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으니 함
께 진리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 하였답니다.

평소에 스스로 누구보다 자신의 경지가 넓다고 자부를 하였을 하백이 새로운 세상을 보는 괄목상대의 순간이 얼마나 놀라웠는지는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문제는 강이나 바다가 모두 수평적 시각에 의하여 세상을 바라보았다면 하늘이 얼마나 높으며 또한 넓은지, 나아가 한없이 펼쳐진 원대한 우주의 실체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우물 안 개구리가 자신의 자세대로 세상을 바라보았다면 하늘이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떠가는 구름 또한 보이지 않을 것은 당연하겠지만, 아예 자신의 자세를 뒤집어 보았다면 높고 넓은 하늘의 이치를 일부라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작가가 그린 단편집에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나가겠다는 아들을 설득하는 아버지가 아들의 머리를 가랑이 밑으로 하여 고향산천을 바라보도록 하고 평상시 보아왔던 산천보다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강조하는 대목이 보이는데 이는 모두가 통상적인 자신의 의식을 뒤집어 달리 세상을 바라보면서 얻은 새로운 느낌들일 것입니다.

비록 우물 안 개구리 일지라도 의식의 발상을 전환하면 높고 넓은 하늘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숙명에 매달려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그 한계를 벗어나려는 처절한 존재의 아픔이 있은 뒤에 따르는 환희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이 공좌의 남가기(南柯記)에,

당나라 제9대 임금인 덕종 때 양자강 하류 강소성의 큰 느티나무가 있어 항상 그늘을 만들어주는 집에 순우분이라는 사나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지방 장군의 부관으로 근무한 적도 있었으나 술과 사람을 좋아하고 조그만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낙천적인 성격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어느 날 친구들과 그늘에서 술을 마시던 중 도가 지나쳐 만취가 된 상태로 잠에 빠져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꿈속에 자주 빛 옷을 입은 관원 두 사람이 “괴안국” 왕의 어명을 받아 모시러 왔다고 하여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 오르자 쏜살 같이 달려서 느티나무 뿌리 쪽에 구멍으로 들어가 “괴안국”이라는 금색현판이 걸려있는 성문을 지나 도성에 들어 국왕 앞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왕이 기뻐하며 자신의 아버지와 의논을 거쳐 부마로 삼기로 하였다는 통보를 받고, 공주와 결혼한 후 현세의 친구들의 보좌를 받아 남가군의 태수로 부임을 하여 이후 20년간 다섯 아들과 두 딸을 얻어 태평성대를 누리며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잘 살았습니다.

갑자기 “단라국” 군대가 쳐들어와 3만의 군대로 이를 막으려 하였지만 실패하고 친구인 “주변”과 아내를 잃고 수도로 돌아왔는데, 그의 명성을 듣고 사모하여 찾아오는 귀족과 호걸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어 세력이 커지자 누군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모략을 하였습니다.

급기야 왕이 근신을 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3년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는 약속을 하고 처음에 왔던 곳으로 되돌아 와보니 세상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고 시간마저 크게 지나지 않은 채 하인들은 마당을 쓸고 친구들은 그대로 발을 닦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신기한 나머지 순우분은 친구들과 느티나무 구멍으로 들어가 보니 성 모양을 한 개미집이 있고 머리가 붉은 개미를 다른 큰개미들이 지키고 있어 구멍을 더듬어 안으로 들어가 남쪽으로 뻗은 가지를 네 길쯤 올라가자 그가 있었던 남가군이 있어 감개가 무량하여 구멍들을 원래대로 막아두었습니다.

그날 밤 폭풍우가 몰아쳐 개미집은 흔적도 없어지고 꿈속 남가군에서 같이 선정을 베풀었던 두 친구는 열흘 만에 죽어버리자, 남가의 일몽으로 인하여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 나머지, 술과 여자를 멀리하여 도술에 전념하다가 3년이 지난 후 실제로 세상을 떠났다는 줄거리의 꿈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오래된 시대의 다소간의 논리가 정연하지 못한 줄거리이지만 인간의 삶에 대한 단편적인 풍자로 정곡을 찌르고 있으며, 인간 의식 저변에 깔린 무언가 확정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연관되어지는 알지 못하는 인과관계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물질이 좌우하고 오로지 물질에 의해서만 가능한 현세와 이를 넘어 한 단계 성숙한 에너지로 승화한 의식의 세계가 반드시 넓게만 펼쳐지거나 적게만 줄어드는 것이 아닌 양방향의 논리라는 것을 은연중 시사 하였던 것이 아닌 가 쉽습니다.

찰나와 촌음 아니면 영원한 시공과 넋이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 하나로 우리의 가까운 주변에서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갈 뿐입니다.

거대한 자연적인 사물들과 미물과의 사이에는 제 각각 어떠한 형태의 정령들이 자리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고 나름대로는 우리들 현실의 세상에서 어느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지긴 합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넓은 세상에 존재하는 제 각각의 의미들은 무언가 새기는 뜻이 있으며, 상대방에 대하여는 서로 존중하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물 안 개구리”와 “남가군의 일장춘몽”이라는 논리의 수렁에 스스로 빠지지 않고 그로부터 훨씬 진전된 참뜻을 새길 수가 있을 것으로 보여 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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