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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은둔의 수행자
  • 기사등록 2011-09-30 1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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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 세상의 모든 물체들은 존재의 원인과 결과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엮여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깊은 산골에 올라 처음에는 나와 인연이 전혀 없었던 옹달샘의 물을 취한 듯 마시고 나면, 어느새 그는 나의 몸의 일부가 되어 산산이 흩어져 몸속의 깊고 낮은 곳을 가리지 않고 마음껏 돌아다니다, 슬며시 배출구를 열어 놓으면 다른 노폐물을 몸에 지고 땅바닥에 곤두박질을 치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 나와의 맺었던 인연을 뒤로 하고 다른 물체와의 접목을 시도하는 성스런 작용인 것입니다.

그때는 제가 원래 있던 산골이 아니라 도시의 한복판이기도 하여 그는 또다시 우여곡절의 여행을 하다 결국에는 한 점에 불과하던 자신의 몸을 강이나 바다에서 무한대로 확장시켜 도도한 강물과 바다의 일부가 되어 있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몇 날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강렬한 태양빛에 의하여 또다시 증기로 변하여 높고도 높은 하늘을 구름으로 맴돌다, 결국에는 지상으로 떨어지는 공전을 거듭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 방울의 물이었지만 때로는 단단한 고체의 일부로 맞물려 이름 모를 산곡에 지체하기도 하고, 아니면 능선에 피는 풀잎의 줄기 속에 머물기도 하고, 나뭇잎에 맺히는 이슬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는 한때 나와 인연을 맺었던 나의 일부였지만 일정시간이 경과하면 나와의 인연을 청산하고, 나와 전혀 인연이 없었던 것들은 새로이 나와의 인연을 맺어 원초적으로는 ‘나’이지만 부분적으로는 매일 같이 다른 나를 일구어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 인연을 맺어갈 물질들이 천지에 가득하고, 전에 나와 인연을 맺었던 물질들이 천지에 흩어져 있으니 결국에는 대자연이 나와 무관한 것이 하나도 없어 나와 만물이 하나인 것입니다.

문득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말이 생각나는데 선조들은 어찌하여 우연인 듯 우주의 현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였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연과 내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은 것처럼 모든 물질들이 서로 보이지 않는 인연을 맺고서 공생해가는 이면에는 쉽게 이어지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끝없는 노력을 기울여야만이 이루어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생존의 논리 밑바닥에는 끝없는 에너지의 공급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따르는 것이고 이들의 노력은 어찌 보면 고행으로 비추어 질수도 있습니다.

옛날 시골 어머님들은 식구들의 한 끼 밥상을 차리려면 필수적으로 절구통과 공이를 가지고 쌀과 고추 등 음식물을 짓찧는 고달픈 동작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절구통은 아무리 두드려도 미동도 하지 않고 공이로 내려치는 데도 음식물을 가슴에 안아 사람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순간까지 인내하고 견디는 것입니다.

절굿공이로 절구통을 두드리는 동작을 한마디로 ‘절구질’이라 표현하였는데 우리 어머님들의 힘겨운 어깨 짓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집집마다 울려야 식단이 완성 되었던 것입니다.

절구통과 절굿공이, 이를 두드리는 사람이 삼위일체가 되어서 울려오는 경음악은 부딪히고 합하여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 필요도 없어진 물건들을 왜 이제야 언급을 하는지 의아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잠시 동안 그 양상이 변형되었을지라도 수천 년에 걸쳐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었던 원색적인 모습이었기에, 생산적인 활동으로만 국한된 것이 아닌 스스로의 의미가 우리 생활에 녹아들어 삶의 구석구석에 보이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불교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효봉 스님께서는 산사에서 수행을 하시는 동안에 한번 자리를 잡으면 천지가 요동을 쳐도 꼼짝을 하지 않기로 소문나신 분입니다.

특이한 선사님께 주변의 스님들은 수도승과는 잘 맞지 않는 절구통 스님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셨는데, 한없이 두드려도 요지부동인 절구통의 의미가 그대로 표현이 된 좋은 선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엄청난 농기계의 발전으로 찾아 볼 수도 없게 되었는데, 예전에 대장간에서는 시뻘건 불길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공기를 공급해주어 화력을 돋우는 풀무가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단단하던 쇠붙이를 벌겋게 달구어내는 엄청난 변화에 놀라곤 하였는데 쉬지 않고 이어지는 ‘풀무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풀무질도 절구질 만큼이나 힘들고 고된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대장간에는 아침 일찍부터 주먹탄 밑에 나무를 깔고 정말로 오랜 동안 쉬지 않고 풀무를 밀었다 당겼다 하여 산소를 공급해주는 고단한 순간이 지나야 비로소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이 붙게 되었습니다.

덥고 먼지 나고 불똥이 튀어 다니는 와중에서 풀무질로 달구어진 쇠붙이를 두 사람이 무거운 쇠망치를 들어 번갈아 가며 때려 낫이나 칼등의 형태를 잡아가는 동작을 보면 그저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따금 두드리던 쇠붙이를 물속에 약간 담갔다가 꺼내어 또다시 두드리는 대장장이의 ‘담금질’ 또한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힘들고 외롭고 고독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여름철에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힐 정도의 더위에 포항제철 용광로를 관리하는 사람에게는 고역이 될 것이고, 겨울철에 두꺼운 옷으로 무장을 하여도 살이 떨리는 순간인데도 냉동 창고에서 근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련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이나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 또한 일반인이 느끼는 고행 이상의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염전에서 수많은 날들의 땀방울을 쏟아 피 같은 염수를 만들어 날씨가 좋은 순간에 소금으로 결정 지우는 염부에게도 말로 다 못하는 힘든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

마늘과 양파, 감자와 고구마뿐 아니라 각종 농산물을 가꾸어 수확하는 농부들의 노고 또한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도심의 혼잡한 교통상황을 뚫고 제 시간에 물건을 배달하기 위하여 목숨을 건 위험한 곡예를 펼치는 퀵서비스 또한 우리들 간담을 서늘하게도 합니다.

달동네의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힘들게 오르내리는 사람들과 도시의 어두운 곳을 배회하는 노숙자, 폐지 몇 장을 두고 서로 밀고 당기는 연로한 어르신들은 모두 고단한 삶의 대명사로 비추어 집니다.

메콩 강을 하염없이 건너는 캄보디아 난민과, 태평양을 방황하던 베트남의 보트 피풀 행렬,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과 태국과 라오스의 국경을 넘나드는 탈북자의 애처러운 한숨들이 강을 건너고, 바다에 표류하고, 산야에 흩어져 부질없이 깔려가고 있습니다.

임금 체불로 고향에도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급기야는 불법체류 노동자로 낙인이 찍히고, 이국의 하늘에서 산업재해로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슬픈 사연이 늘어만 가기도 합니다.

바다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들의 휘 바람 소리에는 애달픈 삶의 애환이 서려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거리를 입에 담배를 물고 우산을 쓴 불안한 자세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의 인생살이 또한 고단하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영혼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몇 년씩이나 오체투지를 하여 성전을 향하는 피나는 발걸음의 고행 현장은 정말로 우리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처절한 소망을 가슴에 안아 끊임없이 두드리는 절구질과 기약 없는 인생의 풀무질을 그치지 않고, 쉬지 않는 날개 짓으로 담금질을 멈추지 않는 고단하고 힘들은 모든 존재들은 하나 같이 천국의 문을 소리 없이 두드리는 은둔의 수행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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