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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기사등록 2011-12-01 16: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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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 이세상의 모든 생명체에게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는 자양분의 공급이 이루어져야 함과 동시에, 무의식중에 스스로의 개체를 현 상태로 유지시키려는 본능이 잠재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지켜내려는 의지가 한순간이라도 소홀하게 되면 나름대로의 생존과 개성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생체에 해로운 니코틴이나 알코올을 섭취하고, 마약류를 투여하여 순간의 향락에 빠져들다 보면 스스로의 건강이 점진적으로 무너져 내리며 결국에는 파멸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30대의 여인이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마약에 찌들다보니 마침내 자신의 장기가 손상되어 가면서 80세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형상으로 변해 버리자, 그때서야 자신의 참혹한 몰골을 느끼고 인생의 시침을 되돌리려 하였음에도 현실은 이미 그녀로 부터 고개 돌려 외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전 세계의 인터넷을 통하여 전달된 한 여성의 비극적인 삶의 끝은 너무나도 비참하여 정상적인 영혼들에게 소름이 끼쳐지는 전율을 안겨 주었던 것입니다.

이따금 종합병원이 있는 도시의 근처를 거닐다 보면 부근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로 소주잔을 기울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납득이 가지 않는 갈등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고향 동네의 후배가 선천적으로 키도 크고 건강한 신체를 타고 났는데도 과다한 음주로 몸을 상하게 되어 병원에 입원을 하고서도, 음주를 계속하다 결국에는 그토록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리는 것을 목격하였는데,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의 미약으로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무릇 생명을 가지고 지상에 생성된 개체들은 모두가 행복한 인생을 구상하면서 나름대로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정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비단 지렁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달팽이나 모기 파리 등의 미물들과, 식물에 있어서도 건드리면 냄새를 발산하는 등 자신을 지켜내려는 본능으로 하여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것입니다.

자손을 번식시키려 하는 모기에게 있어서는 사람을 비롯한 짐승들의 피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이를 얻으려는 개체는 생명을 거는 모험을 거쳐야 만이 후대를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올 여름철에는 수시로 찾아오는 태풍의 영향으로 모기로부터 비교적 자유스러운 순간을 보냈을 것임에도, 뒤늦게 찾아온 손님은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여 겨울을 바라보는 계절의 깊은 밤에 예고도 없이 찾아와 이따금 고단한 나그네의 단잠을 깨우기도 합니다.

모기와 인간에게 있어서는 모두가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의 충돌로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결국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도 없지만, 이러한 투쟁의 순간을 숙명적으로 가슴에 안고 반대방향의 아픔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며칠 전 모두가 잘살아 보자는 의미의 한미자유무역협정의 비준을 놓고 여야와 찬반으로 갈려진 국민들이 일대 격론을 벌여, 결국에는 합의가 아닌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하여 비준절차가 국회를 통과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아니면 모두가 잘살아가는 지름길이 된다 할지라도, 순간의 불편함과 상대방에 대한 설득의 번잡을 참아내지 못하는 일방적인 의사의 결정은 무리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야흐로 한 단계 향상된 삶을 추구하기 위하여 새집을 짓거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가족 또는 구성원간의 의사가 합쳐지지 못하고 서로간의 갈등과 알력에 의하여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면, 불편하더라도 차라리 원래의 집이나 사업체에서 생활하는 것만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합의에 이르지 못한 사업의 추진은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이익에서 반대의사 만큼이나 그 효용에 있어 반감이 되는 아쉬운 점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절차상의 무리가 있었다 하드라도 실정법에 어김이 없었다면 서로간의 아쉬움을 접고, 대의를 위하여 서로가 양보하는 자세로 이제라도 소외된 지역에 대한 배려를 서두르고, 다음 단계의 대응에 단결된 국민의 힘으로 국력을 결집시켜야 할 것으로 보여 집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기르던 암탉이 알을 낳아 품고 있다가 갑자기 놀란 소리를 질러 황급히 뛰어 가보면, 벼슬이 벌겋게 변하여 놀란 암탉이 둥지에서 벗어나 있고 둥지에 있던 달걀이 아무리 보아도 숫자가 부족한 것을 확인하고는 그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생각하며 아마도 쥐가 훔쳐 갔을 것이라는 막연한 결론을 내리지만, 어떠한 방법으로 둥그런 계란을 운반하였는지에 대하여는 한없는 의문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간 어느 날 이러한 의문점에 대하여 현장을 목격한 직장동료의 제보에 의하여 그 실상을 속 시원하게 파악하였던 것입니다.

한 마리의 작은 쥐가 계란을 가슴에 안고 뒤로 벌렁 눕고, 다른 또 한 마리의 커다란 쥐가 계란을 안고 있던 쥐의 꼬리를 입으로 물고 쥐구멍으로 끌고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박장대소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미물도 스스로 협력하여 귀하고 귀한 음식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 지혜를 발휘하고 후손들에게 그와 같은 방법을 유전시켜 주었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독수리도 단단한 갑옷을 걸친 거북이를 포획하여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를 취식할 수 없음을 깨닫고 높은 공중으로 올라가 바위에 떨어뜨려 단단하던 껍질이 부서지면 거북이의 속살을 맛있게 먹는다고 합니다.

그에 반하여 아프리카의 원숭이는 손이 겨우 들어가는 좁은 입구의 단지를 땅에 묻어 놓고, 그 안에 사과를 한 개 넣어두면 이를 쥐고 끝내 포기하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붙잡혀 자유를 잃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솝 우화에는 입에 커다란 고기 점을 물고 징검다리를 건너던 개가 물속에 더 큰 고기를 물고 있는 다른 개를 발견하고 망설임도 없이 상대방의 것을 빼앗으려 뛰어들어 물고 있던 고기마저 잃어버린다는 장면을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미물이나 그보다 진전된 동물이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지능지수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알고 있는 개나 원숭이가 의외의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은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순간적인 착오로 보여 집니다.

물론 인간에 있어서도 논리적으로는 누구보다도 정돈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집착이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것임은 별론으로 치더라도, 순간의 집착에 눈이 어두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를 망치는 우를 범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개체의 즐거움에 빠져드는 집착과 이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온전하게 지키려는 집착의 줄다리기를 거쳐 내리는 판단에 의하여 길흉화복의 갈림길이 달라지기도 할 것입니다.

월드컵 축구로 전국이 요동을 치던 2002년도가 지나가고 그 다음해 초 전국이 추위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음에도 몇 주가 지나는 동안 로또 복권의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당첨금이 약 천억 원 이상 적립이 되어 숨 막히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인생역전의 대박에 대한 꿈을 안고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떠나 월드컵 축구만큼이나 열광하면서, 너도 나도 로또복권을 구입하여 보도매체를 통하여 중계되는 공의 향방에 관심을 기울이던 광란적인 분위기 속에서 당첨자가 결정되고 그로인하여 수많은 일화를 남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간 뒤 로또 복권 당첨자들의 생활상을 언론보도를 통해서 들은 바에 의하면, 하나 같이 행복과는 거리가 먼 불행의 늪을 헤매었던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된 것입니다.

결국에는 재물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요소가 될지언정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밝혀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태백의 탄광촌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생겨난 허가 받은 도박장에 우연한 기회로 재미삼아 발을 들여 놓은 것이 화근이 되어, 가지고 있던 재산과 인간관계를 모두 잃고 처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안타까운 애증의 그림자가 스치는 것입니다.

모두가 한때는 건전한 사고방식으로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아가려고 애써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들의 형제와 친구들인 것입니다.

전국에서 몇 곳 안 되는 경마장이나 이를 모방하여 생겨난 사설 경마장에서도 인생의 황금기를 부질없이 태워버리는 청춘의 절규와 포효 뒤에 따르는 괴로운 신음소리는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도 합니다.

우량한 기업에 자신의 정당한 자금을 투자하여 그 이익을 배당 받는다는 취지의 주식시장은 이미 큰손들과 기관, 또는 외국인을 포함한 변칙적인 투자자들에 의하여 배신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죄 없는 개인 투자자의 95퍼센트 이상이 실패하는 시장에 달려들었던 개미투자자들은 이제 대출금으로 충당하던 가계자금의 한계에 이르러 보이지 않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채근담에 “진공(眞空)은 공(空)이 아니니 형상에 집착함도 진실이 아니고, 형상을 깨뜨림도 진실이 아니다. 묻노니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 하셨는가, 속세에 있으면서 속세를 벗어나라 하셨나니 욕정에 따름도 괴로움이요. 욕정을 끊음도 괴로움이라, 우리는 스스로 잘 닦아 야 한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산수가 빼어난 곳에 도량을 꾸려 놓고 무소유를 표방하는 불자들이 재물에 대한 집착을 접었다 하지만, 사철 푸르러 빼어난 자태로 봄이면 가냘프고 청초한 꽃잎을 아슬아슬하게 펼쳐내는 한국의 춘란에 매료되어 그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약간의 관심을 보이거나, 조석으로 코끝을 스치는 다향에 취하여 몰입을 하는 것 또한 새로운 집착에 이르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도 인간인지라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순간이나마 고개를 돌려 마음의 중심이 흐트러 지려다 화급하게 자신의 혼 불을 찾아 부추기고 번뇌 망상을 버리려 애쓰는 것 또한 새로운 번뇌의 망상이 아닌지 의문이 가는 것입니다.

내일을 향하여 삶의 손길을 내미는 존재들은 모두가 생존의 논리와 맞물려 최소한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은연 중 삶의 의지를 조금이라도 강하게 표출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재물과 명예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으로 자가당착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생을 아름답게 살려는 최소한의 욕망만은 우리 살아가는 생명체에 대한 존재의 근본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느 정도의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의 해답은 우주의 이치를 밝히는 것만큼이나 난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오리무중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속절없이 공전하는 인간사에 있어 매사를 투명한 관심으로 되돌아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집착에 빠져 순간적으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전락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부질없는 번뇌 망상이 끓어오르지 못하도록 초연해 지는 인생수업을 거듭하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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