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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여러 면에서 위기다!
  • 기사등록 2012-06-10 14: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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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위기다. 민주통합당으로 ‘야권통합’ 하던 1월 말 즈음, 민주당의 정당지지율은 40%대를 육박하는 욱일승천적 기세였다.

이때 새누리당은 20%대 후반(예컨대 1월 25일 한겨레 등 여론조사는 민주당:새누리당=39.7%:29.1%)이었다. 그래서 선거(4.11총선)를 치르면 민주당이 제1당이 될 거고, 잘 하면 150석을 넘길수도 있다는 전망들이 우세했었다.

그러나 4.11총선 때 제1당과 150석은 민주당이 아니라 새누리당이 차지했다. 4.11총선 때 민주당은 36.5%, 새누리당은 42.8%였다. 두어 달 사이에 대역전이 일어났던 거다.

지금은 어떤가? 5월 말, 6월 초의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은 새누리당보다 최저 10%에서 많게는 20%까지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5월 28일 한국갤럽 24%:36%, 5월 29일 리얼미터 33.4%:43.4%, 5월 30일 밀워드브라운 미디어리서치 31.7%:40.2%, 6월 2일 모노리서치 25.8%:46.5%, 그리고 6월 4일 뷰스&뉴스 32.5%:45.0%, 같은 날 국제신문 35%:25%).

며칠 전(6월 4일) 의원연찬회에서 김호기 교수는 대선 전의 정당지지율에서 ±10%가 그 당 대선후보의 득표율이라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지금 단계에서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이 최대 43.4%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된다.(물론 모든 건 현재시점에서의 얘기들이다. 미래는 얼마든지 더 크게 가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언저리에 대선 득표율이 형성된다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통계적으로 그리 크게 틀리지 않다는 말이다.)

크게 보아서, 총선 2, 3개월 전에 새누리당을 크게 앞섰던 민주당 지지율이 점점 그리고 그것도 지속적으로, 하락에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위의 통계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비단 통계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정당지지율도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지금 민주당은 위기다.

그런데 내게 더 큰 위기감을 준 것은 민주당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지휘부에게서 이같은 위기감과 위기의식을 별로 느끼거나 감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기가 진정한 위기가 되는 것은 구성원들이 위기인 것을 모르거나 외면할 때이다. 지금 민주당이 위기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위기극복에 우리 모두가 발 벗고 나설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이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 제법 여유작작할 수 있다.

지금의 민주당 지휘부에서 가장 자주 듣는 소리는 18대 81석에서 19대 127석으로 늘어나 얼마나 든든하고 좋은지 모르겠다는 스스로 벅차하는 감회다. 비단 그같은 언사만이 아니다. 민주당 지휘부에서 내놓는 당선자 연찬회라던가 의원연찬회라던가 의원총회 등등을 가 보면 대여 강경전략만 즐비해 있지 지금의 위기 탈출을 위한 뼈아픈 반성과 백척간두적 비장함은 발견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내 나름의 평가랄까 분석은 이렇다. 지방자치단체장(군수)을 두세 번 경험한 뒤에 국회라는 곳에 처음 진출한 사람으로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시장군수들이 엄청(대부분의 경우, 쩨쩨할 정도로) 준법, 준법하는데 반해서 국회의원들은 실정법 같은 것은 대수롭지 않게, 특히 ‘당론’과 배치되는 경우 법령 정도는 간단히 초월할 수 있다는, 초법적 위법적 탈법적 불법적 범법적 사고와 행태를 하는 것 같다.

(일례로, 법률이 6월 5일 국회를 개원하도록 규정(강제)하고 있건만, 여야는 지금 이 법률의 위에서 정치게임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이같은 국회(또는 국회의원)의 ‘대범함’이 국민 여론이랄까,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실까에 대한 시시각각적 섬세함을 상실하며 국회 활동하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또 하나는, 민주당의 경우, 야당(野黨)이라는 패러다임 또는 프레임이 국민 일반의 다수의사를 상당히 종종, 무시하고 아랑곳하지 않게 하는 ‘배짱’을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엄혹했던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야당은 조작된 ‘다수’ 국민 여론을 역류하면서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쟁취해 냈었다. 그같은 전통 야당의 당당한 ‘영웅주의’가 소소한 국민 여론의 추이에 섬세하게 일희일비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대범함으로 오늘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요컨대, 지금의 민주당 지휘부는 국민 여론의 동향에 대해서 둔감하거나 무시하거나 무지하다. 그런데 이런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지닌 정당의 말로는 빤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시시콜콜하게 보이는 국민 여론 하나하나가 표가 되고, 대선 결정력을 갖기 때문이다. 두말 할 필요도 없는 얘기이지만, 정치에 있어서 유일한 척도는 국민이다. 유일한 척도일 뿐만 아니라 유일무이한 척도가 국민이다. 알베르 까뮈의 말(“어머니는 비록 틀렸을지라도 옳다”)에서 패러디해 본 건데, 민심은 비록 틀렸을지라도 옳다.

총선 때 민주당은 다양한 악재들을 만났고, 그 다양한 악재들을 무능하고 둔감하게 관리함으로써 참패는 아닐지 몰라도 완패하고 말았었다.

사법처리 과정에 있는 후보들을 다량 공천했던 일, 당시 지도부와 같은 라인에 있었던 유력 후보들의 대거 단수공천, 진보당의 관악을 여론조사 조작시비와 진보당 쪽 야권단일후보의 버티기,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에 대한 지휘부의 우유부단함과 묵묵부답 행태 등등이었다. 4.11 총선이 끝난 뒤에도 민주당 지휘부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 대표가 총선 결과에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한 정당의 자세라고 볼 수 없는 일들만 즐비했다.

127명의 당선자들끼리 모여 단 한 번도 총선 패배의 원인과 앞으로의 결의를 다지는 시간과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면 어느 국민이 이해하실 수 있을까.(그렇다. 정말 우리는 단 한 번도 총선 부진에 대한 우리들만의 대화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다. 기이하다면 기이한 현상이다.)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한 민주당이 어떤 비상대책을 논의하고 내놓고 있었는지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생각해 보자. 우리의 ‘비상(非常)’상황이 외부로부터 온 것인가 아니면 내부로부터 온 것인가. MB정권이 핍박을 해서 지금 우리가 비대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비대위를 구성한 것은, 우리가 총선 민의를 제대로 부응하지 못해 총선에서 부진했고 이 자기부진에 대한 반성적 표현으로, 더욱 분발하겠다는 자기다짐의 한 표현으로 비대위를 만들었던 거 아닌가. 그렇다면 비대위의 활동과 전략은 우리 내부를 겨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 민주당 비대위는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가. 거의 80~90%의 비대위 활동은 여당과 청와대를 ‘저격’하는데 할애되고 있지 않은가. (확실히 이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다.

비대위는 외부 ‘적’을 겨냥하기 보다는 우리 내부의 결함과 약점들을 겨냥하고 수습해야 한다.) 내가 머리가 나빠서인지 모르겠지만, 민주당의 개원 전략이 어떤 건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6월 5일 국회 개원했었어야 한다고 본다. 법률이 그걸 강제하고 있고, 80~90% 국민들이 국회를 법대로 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더 이상 그 어떤 명분과 전략이 민주당의 ‘개원협상’을 정당화할 수 있단 말인가.(정말, 국민여론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 국민여론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

민주당 지휘부의 지도자들은 법률도 우습게 보고, 국민도 우습게 보는 것 같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제한하고 포기해야 한다고 들고 나온 정당이 어디였던가. 국회의원 연금법을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한 쪽이 어느 당이던가.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먼저 주장했어야 할 것들을 왜 요새 새누리당이 먼저 치고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한다.

상임위원회를 더 쪼개서 증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 어느 당인가. 왜 민주당이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지지자들의 불만이 상당하다는 걸 지휘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최근의 ‘진보당 사태’로 야권연대에 대한 회의적 여론이 비등할 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행보로 주류 여론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민주당의 모습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가슴아파하고 있다.

결론삼아, 몇 가지 제언 또는 제안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민주당 지휘부와 우리 127인의 의원들께서는 「국민 관점」으로 정치해 보자고 말씀드린다. 국민여론에 일희일비하는 ‘도덕적 예민함’으로 민주당의 정체성을 확립해 보았으면 한다.

아무리 사소한 민심이라도 그것이 다수 민심이라면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라 하지 않았던가.(민심을 측정하고 계량화해 놓고 있어서 지금만큼 민심 정치하기가 죽먹기보다 쉬운 시절도 없었다. 여론조사를 말한다. 그때그때 사안별로 여론조사 해보면 된다. 우리가 하지 않아도 그때그때 다양한 언론기관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여론을 조사하고 발표한다. 그걸 그대로 따르는 거다.)

거듭 말씀드리는 거지만, 민심은 비록 틀렸을지라도 옳다. 아니, ‘민주’라는 어휘는 정의상(by definition) 민심의 무류 또는 상대적 정당성(또는 진실성)을 전제하고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한, 국민 기준이야말로 민주당의 전부다.

둘째, 나는 가끔 우리 당이 민주당(democracy)이 아니라 과두제정당(oligarchy)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이리 공론의 장이 이다지도 협소하고 이다지도 드문드문할 수 있는 건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민주당 국회의원 당선 되어 두 달이 되었지만 제대로 내 생각 한 번 얘기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다.

불행한 일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서 불길한 일이다. 말이 곧 정치고, 말이 곧 사람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로고스가 스피치(speech)다. 인간이성이 곧 언어고, 그 언어에 의해서 인간과 짐승이 갈린다. 언어는 곧 사람이다. 언어의 소통이 없으면 밀실이지 공동체일 수 없다.

민주당에서 말이 사라지고, 말이 간소화되고, 당론과 지시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민주당은 민주공당으로서의 자격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시간을 아끼고 일사불란한 결속력의 과시를 위해 하향적으로 일정이 짜여지고 논의가 구축된다면 문제다.

전체 의원들의 이름으로 낭독되고 발표되는 모든 「결의문」이 몇몇 과두들에 의해 작성된 뒤 단 한 자의 자구수정도 없이 박수 속에 채택되고 공표되는 걸 말없이 지켜보아 왔다.

의원연찬회에 참석할 때 흰색 와이셔츠와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나오라는 ‘당론’이 상층부 과두들에 의해 결정되어 하달되면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간편복으로 참석했다.(왜 흰 와이셔츠에 간편복 차림으로 나와야 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TV에 그렇게 비쳐야 효과적이고 정당 지지에 도움이 된다는 발상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 시민사회가 얼마나 다종다양해졌는지 모르시는 것 같다. 모더니티가 해체되고 가치 해체의 포스트 모더니티가 일상생활이 되었음에도 정치 세계에선 이리도 둔감한 것 같다. 모두 흰색으로 입고 나오는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옷차림까지 굳이 ‘당론’으로 채택하고 지시를 내려야 한다고 믿고 있는 지휘부의 의식구조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민주라는 이름값을 하려면 총의(總意)를 모으려는 새 생각을 해야 한다. 원래 민주주의는 비싸다.

권위주의가 저비용이라면, 민주주의는 고비용이다. 번거롭고 까탈스럽지만 상향적으로 총의를 수렴하는 것이 결국 장기적으로 민주당에 이롭다는 생각, 대선승리의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새 생각이 필요하다.

셋째, 제도적으로 「초선 의원 총회」를 제안하고 싶다. 민주당의 전체 의원총회가 있는 것처럼, 56명에 이르는 초선 의원들의 회의체가 절실하다. 말하자면 초선의원 협의회 같은 거다. 초선 의원 총회를 상설화하여 정례화하면 거기서 백론이 다채롭게 분출할 것이다. 가끔 1박2일, 2박3일의 집중 토론도 될 것이다.

거기에서 지금의 민주당을 강화하고 지지기반의 외연을 확대하며 지지층을 공고히 하는 진지한 검색이 이루어질 것이다. 초선의원들은 민심의 시장을 생생하게 몸소 겪으며 선거의 터널을 통과해 온 신규 진입자들이다.

기성적 관행과 지속적 고정관념으로부터 비교적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고 있기에 당론보다는 국민여론(국론,國論)에 더 민감하고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초선의원들은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정치적 순수함을 상대적으로 더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성질서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당내엔 그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이 미확보되어 있고, 당론의 서슬이 두려워 멈칫멈칫하며 침묵하거나 동조하며 한 그물에 잡힌 고만고만한 물고기들로 ‘성장’해 갈 운명들일 수밖에 없다.

이제 초선 의원 총회를 통해 ‘잠수함의 토끼’처럼 산소의 부족함을 가장 먼저 몸으로 입증하거나, 미래의 불운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는 카산드라나, 혹은 조국 아테네 도시국가의 등에 달라붙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등에(gadfly)의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지금의 민주당에 절실히 필요한 기능이고 목소리다.

넷째, 여기서 이념타령을 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 민주당이 진보당의 구당권파와 신당권파가 감당해야 할 몫을 침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만약 진보당 구당권파가 주사 종북쪽이고 신당권파가 PD쪽이라면 그런 ‘색채’는 그들의 색채일 수 있도록 허용했으면 한다.

이제 민주당은 진보당 구당권파와 좀 더 많이 다르고, 신당권파와 조금 다른, 그런 안정감 있는 진보주의의 옷을 입었으면 한다. 각 정당과 정파에는 그 나름의 정책, 아이덴티티가 있게 마련이다.

이제 글을 마치려 한다. 엊그제 의원연찬회는 실망스러웠다. 1박2일로 한다더니 단 하루 두 나절로 줄여 버리는 것도 실망스러웠고, 모든 일정들이 촘촘하게 잘 짜여져 있어서 127명의 참석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 연찬회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와 대상으로 역할 규정되어있는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각종 스케줄과 일정들이 모두 다 정상적이고 평상적인 정당의 의원연찬회와 하등 다를 바 없어서 씁쓸했고, 약간은 슬프기조차 했다.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할 수 없도록 촘촘하게 설치해 놓은 연찬회의 메뉴들 때문에 지휘부의 리더들만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웠다.

특히 저녁 먹고 레크레이션 타임이 1시간 40분이나 예고되어 있는 일정표를 보며 온갖 상념으로 마음이 무척 심란해졌다. 저녁 먹고 레크레이션 장으로 내려가 보니 이미 절반 이상의 의원들은 자리를 뜬 상태였다.

우리 테이블에 함께 앉아 계시던 두어 분 의원들이 지금 노래부르고 이럴 때인가, 이런 걸 기자들이 한 줄이라도 쓰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염려하는 소리를 했다. (그래서, 실제로 한 다선 의원이 헤드테이블의 지휘부 쪽에 다가가서 약간의 ‘자제’가 필요할 것 같다는 뜻을 전달했었다.)

어떤 다선 의원은 임기 시작 후 첫 번째 의원연찬회에서 분임토의를 생략한 채 레크레이션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조심스럽게 안타까운 소회를 털어놓기도 하였다.

레크레이션 강사의 숙련된 안내에 따라 옆 의원들의 어깨와 등을 맛사지해 주는 등의 여흥을 즐기던 나는 조용히 상의를 들고 의원연찬회장을 쓸쓸히 빠져나왔다.

그 자리에 계속 눌러앉아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노래하고 손뼉치며 깔깔대는 것으로 내 첫 임기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은 마지막 자존심 때문이었다. 연찬회장을 뒤로 하며 걸어 나오는 내 귀에 지역 주민들의 한결같은 소망사항이 소리없이 귓전을 잡더니 어느새 거대한 함성으로 나를 채찍질하는 것이었다.

“제발 정권교체를 이루어다오. (그 좋았던 4.11총선 압승의 기회를 놓쳐놓고) 이번 대선도 실패한다면 당신들 민주당은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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