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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징검다리
  • 기사등록 2012-07-05 17:07:45
  • 수정 2014-12-04 16: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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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 까마득한 유년의 시절, 작은 누나와 함께 연로하신 외할머니가 홀로 살아가시는 영암군 미암면 두억리를 찾아가는 길은 상당히 그 경로가 복잡하였습니다.

나주 영산포에서 완행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비포장이 태반이었고, 자갈이 어지러이 깔려진 길을 덜컹거리면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데, 그나마 자리가 없어 의자를 붙잡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까지 가는 길에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차량과 교행하는 순간 충돌사고가 있어 의자 높이와 비슷한 키에 머리를 부딪히고, 본의 아니게 튕겨 나오는 탄력으로 자리에 앉은 중년의 아줌마 가슴을 사정없이 들이 받은 일이 지금도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깜짝 놀란 시골 아주머니가 자신의 아픈 가슴을 만지다가 그래도 한편으로 내 머리가 걱정이 되었든지 이리저
리 살펴보던 표정이 재미있어 수십 년이 지나간 지금에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마주보이는 산이 어찌나 높고 가파르게 보였는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아주 정답게 보여 지면서 언덕위에는 대학이 들어서 학생들 배움의 요람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정류장에서 성전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무한정 기다렸다가 천신만고 끝에 노선버스를 타고 가는데 지금은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지만 운전사에게 ‘초안리‘에서 내려 달라 하였던 기억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버스에서 내려 왼편에는 초등학교가 있었으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들판으로 돌아가다 보면 맑은 물이 흐르는 징검다리가 나오는데 불규칙한 모양으로 돌들의 간격이 부담스럽기도 하였으며, 자칫 빠지지 않으려 애쓰다보면 어느 정도의 난코스로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몇 개의 돌 틈에 물풀이 붙어 자생하고 있었으며 송사리가 이러 저리 꼬리를 치고 다니다가 돌 틈 사이로 숨어버리기도 하고 돌아서 흘러내리는 물길들이 너무나도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우마차가 다녔음 직한 농로를 따라 돌고 돌아가면서 아름드리 소나무가 아무런 말도 없이 장승처럼 반기는 길을 지나다 보면, 그림과도 같이 작고 정겨운 초가지붕이 나타나는데 그제 서야 목표지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며칠 동안 지극한 보살핌을 받고 가슴속에 정이 소복하게 쌓여갈 무렵 새벽잠에서 깨어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날 아침, 콩기름으로 고기 맛을 내어 끓여주시던 김치찌개는 너무나도 좋았던 것입니다.

어스름 여명이 가시지 않은 길을 되돌아 또다시 그 징검다리를 어렵사리 건너왔는데 가슴속에서 두고두고 잊혀 지지 않는 추억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간 날 외갓집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곡식자루를 비우다 그 속에서 나온 금반지를 보시고는 눈물을 훔치시던 기억이 마치 엊그제 일만 같기도 합니다.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연로하신 외할머니가 징검다리를 힘들게 건너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하였던 금반지 하나가 맑은 물속에 앉아있는 것을 운수대통으로 주웠다고 하였습니다.

애써 간직하였던 보물을 돌아오는 어머님께 내놓으시면서 팔아서 아이들 학용품을 사주라는 것을 한사코 뿌리치자, 어머니가 한눈을 파는 사이 몰래 곡식자루에 넣어 보낸 것이었습니다.

외할머니의 지극한 정성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은혜에 보답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였지만, 못난 외손자가 첫 월급을 타 보기도 전에 풍상우로와도 같았던 백 번째 생일을 몇 해 남기고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나가신 것입니다.

이제와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머님이 딸을 연거푸 넷이나 낳고서 어렵사리 반신반의 하였던 남아로 태어나, 유아 시절 생사를 넘나들었던 외손자를 가까이 지켜보며 끔찍하게도 생각하셨던 지극한 정성에 비하면, 무심한 마음으로 부족하였던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무상한 세월이 흘러간 어느 날 또다시 징검다리를 찾았지만 이미 콘크리트의 튼튼한 교각으로 변모하여 어린 시절 추억은 이미 깡그리 사라진 뒤였습니다.

하지만 마을로 가는 길목의 돌다리는 맑은 물의 길을 어느 정도는 보장해주면서도, 사람의 길을 띄엄띄엄 연결시켜 마을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상생의 논리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희망과 조화의 공간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흘러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 아버지를 따라 영암 금정면의 작은 할아버지 감나무 농장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물고기가 떼를 지어 헤엄을 치는 징검다리를 건넜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아스라한 추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혈육을 찾아가는 길의 징검다리는 무언가 가슴을 설레이게 하면서 어린 시절의 몇 안 되는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강을 건너거나, 육지와 섬을 연결하거나, 섬과 섬을 연결하는 곳에 다리를 세우는 인간의 염원은 모든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서로 간에 막혀있는 것들이 시원하게 통하는 상황을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 실려 있었을 것입니다.

요사이 보도매체를 통하여 드러나는 각종 이익단체나 계층 간에 있어서의 불협화음이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삭막한 현실의 불통을 속 시원하게 이어주는 소통의 다리는 없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모두가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논리와 개념으로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한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제 각각 처지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에 부대끼는 마찰이 생길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서로 간의 알력으로 극도의 갈등이 표출되는 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징검다리의 상념을 일깨워, 물길과 사람의 길이 교차하였던 순간을 극복한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데 사람과 사람이 통하지 못하리라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대화와 타협은 우리 사는 세상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생각의 창을 보다 넓히다 보면 징검다리 바로 옆으로 세상의 묵은 때를 씻어내던 빨래터가 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동네 아낙들과 누나들은 세대 간의 격차를 떠나서 모양이 쓸만하였던 돌덩이를 골라 온가족의 먼지를 둘러쓴 옷가지에 비누칠을 하여 방망이로 온천지가 떠나가도록 두드리며 그동안 쌓였던 고뇌들을 남김없이 풀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해도 없고 달도 어두워 별빛만이 빛나던 암흑에서 일어난 애환들은 그 다음날 빨래터에서 낱낱이 밝혀져 입과 입을 건너 번지기도 하고, 오래된 갈등들이 의외의 변수에 따라 때로는 쉽게 봉합이 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징검다리가 사람의 길을 대신하였던 시절에 비하여 지금은 엄청난 경제적인 진전이 있었으며, 문명의 이기로 편리한 세상이 되었음에도 사람의 마음과 마음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들이 꼬여 착잡한 순간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 각계각층의 갈등이 난무하는 현실은 징검다리를 건너 다녔던 예전보다 훨씬 미치지 못하는 답답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국가와 국민,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 부부, 친지들 간에는 서로가 마음의 문이 열린 채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여야 함에도, 은연중 얽혀버려 보이지 않는 아픔들은 한시라도 빨리 풀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능히 풀 수 있는 매듭일 것이라고 속단하였던 사소한 문제들이 때로는 앞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사람들과의 맺어진 인연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순간이 닥치면 문득 수십 년 전의 까마득한 세월 건너편에서 마주하였던 추억의 징검다리가 생각나기도 할 것입니다.

듬성듬성 물이 지나가는 길을 남겨 두고 사람의 발길을 받아내는 공간을 만들어 발을 적시지 않고서도 편안하게 개울을 건널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던 황금의 다리는, 오가는 사람들의 아낌없는 사랑과 함께 영원한 추억 속의 꿈을 되살리는 가교가 되는 최고의 발명품 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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