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고 국제무대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 박진순(朴鎭淳·1898~1938) 선생의 삶을 재조명한다.
15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공동 추진하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서른세 번째 인물로 박진순 선생을 선정했다.
박 선생은 1898년 러시아 연해주 니콜라예프카에서 태어나 한학과 러시아식 교육을 받았다. 1916년 한인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이듬해 러시아 2월혁명을 계기로 항일민족운동에 뛰어들었다.
1918년 하바롭스크에서 창립된 한인사회당에 참여해 중앙위원 겸 제2비서로 선출됐으며, 이듬해 코민테른 파견 대표로 모스크바에 건너가 한국 독립운동의 국제적 연대 기반을 넓혔다.
특히 1920년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 한인사회당 대표로 참석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 문제를 알리고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소 외교활동을 지원하며 러시아 정부가 약속한 독립운동 자금 가운데 금화 40만 루블을 확보해 상하이로 운송하는 데 기여했다.
1921년에는 이동휘·김립 등과 함께 상하이파 고려공산당 창립을 주도하고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11월 28일에는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레닌과 직접 회견하며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국제적 지원과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이후 학문과 저술활동에도 힘썼다. 1927년부터 1928년까지 아카데미철학연구소에서 수학한 뒤 모스크바의 여러 고등교육기관에서 철학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강의했다. 1929년에는 간도에서 조선공산당재건준비위원회 기관지 ‘볼세비키’ 편집에 참여했으며, 1936년에는 모스크바 외국인노동자출판사 조선과에서 교정·편집자로 활동했다.
또한 코민테른 기관지에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 등을 발표하고 국내 잡지 ‘개벽’에 춘우(春宇)라는 필명으로 일본의 식민지 경제정책과 국제 농민운동을 다룬 논설을 기고하며 민족해방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넓혔다.
그러나 그의 삶은 소련의 정치탄압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1937년 12월 15일 테러단체 가담 혐의로 체포된 그는 이듬해 소련 최고재판소 군사협의회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3월 19일 총살됐다.
이후 1956년 7월 18일 소련 최고재판소 군사협의회 결정으로 복권됐으며, 희생자들의 매장지인 모스크바 인근 코무나르카에 묻힌 것으로 기록돼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항일독립운동 공훈을 인정해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박 선생의 생애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국제적 연대를 모색했던 고려인 독립운동의 역사와 함께 소련의 정치탄압으로 희생된 한인 혁명가들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박진순 선생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지만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며 "후손을 찾아 선생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잊혀가는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후세에 전하겠다"고 말했다.
고려방송: 이부형(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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