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동동주로 돈도 참 많이 벌었제.” 담양군 대덕면 사는 김옥희(81) 어르신을 만났다. 손맛으로 소문난 어르신에게 음식 솜씨를 친정어머니에게 물려받았느냐고 물었다. “몰라. 갓난쟁이 때만 빼고 먹고살라고 안 해본 것이 없어. 심심산골이라 안 죽을라면 나무껍질, 풀뿌리, 열매를 가져다가 가족들 먹을 것을 만들었어.”
광산구 임곡에서 태어나 창평 수곡으로 옮겨 살았다는 어르신은 아버지가 군대에 간 뒤부터 닥치는 대로 일했다고 했다. “고상 고상 그런 고상은 없었당게.”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내게는 그 세월을 다 살아냈다는 안도처럼 읽혔다.
“눈뜨자마자 물 한 그릇 마시고 산에 올라가 도토리 한 가마니를 주워 머리에 이고 왔지.” 저녁내 삶아 말리고 도구통에 찧어 알맹이를 골랐다. 삶았다 담갔다 세 차례쯤 우려 떫은맛을 빼고 보리쌀을 조금 넣어 밥을 지었다. “그렇게 맛이 있어.” 도토리밥을 떠올리는 얼굴에 행복이 스쳤다. 나도 꼭 한번 지어 먹고 싶어졌다.
묵을 쑬 것은 생으로 말려 달랑달랑 소리가 나면 찧고, 껍질을 벗겨 우린 뒤 가루를 냈다. 그 탱글탱글하고 구수한 맛에는 양념장이 방해가 된다. 전통간장에 참깨와 참기름 몇 방울이면 족하다. 봄에는 쑥으로 보리죽과 개떡을 만들었다. 사계절 놀아본 적이 없다는 어르신.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일꾼이 된 여자아이의 손맛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노동 속에서 익었다.
남평으로 시집갔다가 남편과 대덕면 옥천의 친정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돼지장사로 번 돈을 도박으로 잃자, 친정아버지가 마련해 준 허름한 집 한 칸에서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에 이어 남편까지 군대를 피해 삶터를 옮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굴곡을 어르신 개인의 운명으로만 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장사하던 집이 고속도로 건설로 수용된 뒤 창평에서 대덕으로 옮겨 음식 장사를 이어갔다. 식육점을 하던 5·18 당시에는 막힌 광주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전쟁의 공포가 되살아났다고 했다. 이후 국밥이 맛있다는 소문에 창평 사람들까지 찾아왔고, 갈비탕과 약오리, 비빔밥도 팔았다.
동동주는 집에 두었던 한약에서 시작됐다. 한약 달인 진한 물로 술밥을 지어 빚었더니 빛깔이 황금빛으로 맛이 좋았다. 소문은 삽시간에 나고 담양읍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하얀 밥태기가 술맛을 끌어댕기거든.” 보는 맛까지 갖춘 동동주는 막걸리보다 많이 팔렸다고 했다. 음식과 술을 팔아 자녀 다섯을 가르쳤지만 집 지은 빚과 높은 이자가 남았다. “은행 문턱은 사대문 문턱보다 높았당게.” 계에 네 몫을 넣어 빚을 갚았다는 말에 그 손의 힘을 새삼 헤아렸다.
술 빚는 법을 묻자 먼저 방이 따뜻해야 한다고 했다. 누룩과 어르신이 ‘누룩약’이라 부르는 재료를 넣고 5~7일, 술이 끓어올랐다 내려갈 때 물을 붓는다. 하루 이틀 더 숙성한 뒤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뜨고 밥알을 넣었다고 했다. 찹쌀로 해야 밥알이 잘 뜬다는 것이 어르신의 설명이다.
비법은 주방문보다 손과 눈에 있었다. 날씨와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발효를 살피는 감각. 어떤 주방문이 그 오랜 경험을 온전히 담을 수 있을까.
이야기는 2006년 송명섭 명인을 찾아 술을 배우던 기억으로 이어졌다. 고두밥과 우리밀 누룩으로 빚은 술은 슴슴하면서도 사람을 끌어안는 품위가 있었다. 나는 주로 이양주를 빚었다. 술독 옆에서 잠들던 시절, 독 안에 그렁그렁 차오른 향이 코끝을 간질이던 황홀함을 잊지 못한다.
“술약이 없으면 소주라도 줘 봐.” 김옥희 어르신의 다음 술이 기다려진다. 그 동동주에는 가족을 먹이고 삶을 일으켜 세운 세월도 함께 익어 있을 것이다. 어르신에게 술을 빚는 일은 고단한 삶을 견디는 생업이면서 가족을 지키는 힘이었다. 이제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삶의 의미와 위안을 되찾는 시간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곽경자. 2026. 담양 슬로푸드 공동체의 ‘정조지’ 연화초 재현과 치유.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10.8).
곽경자. 2026. 술도 생명이라던 사람, 창평 석탄주 명인을 만나다.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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