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환 jnnews@jnnews.co.kr

[전남인터넷신문]해마다 추석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고향에 간다.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하고 차례를 지낸다. 이번 추석도 예외는 아니다. 매년 추석 남원의 만인의총에서는 421년 전 장렬히 산화해 가신 만인의 조상들을 기리는 제사가 거행된다. 만인의총에는 남원성을 지키다 산화해간 의승군도 있다.
의승군이 지켜낸 조선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승려들은 처음으로 조선의 도성인 한양에 출입이 허가된다. 그전에는 승려는 천민에 속했다. 천민은 도성 출입이 금지된 것이다. 조선이 개국하고 숭유억불 정책이 진행된 결과이다. 그러나 임진년에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여 한양이 적의 손에 떨어지고 선조는 의주까지 쫓겨간다. 선조는 곳곳에서 임금의 권위에 도전하는 조선민중의 험악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임금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다. 선조는 다급해진다.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주상의 보위를 지키기 위해 벌떼처럼 일어날 걸로 기대했던 백성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선조가 천대하던 승려들이 모여들었다. 나라를 지키겠다고 산에서 내려온 것이다. 이 얼마나 기특한 백성인가? 선조는 승려들의 면천을 약속하고 한양 출입을 허가하고 승과를 부활시키고 휴정과 유정 등 승려들에게 장군을 하사한다. 의승군은 치열하게 싸운다. 평양성을 그렇게 탈환하고 한양을 수복하고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두고 영규스님은 조헌의병장과 같이 순국하고 진주성을 지키고 명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의승군이 조선을 구한 것이다.
남원성을 지켜낸 처영 의승군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사명과 처영은 호남의 요충인 남원을 지키기 위해 남원에 온다. 선조는 처영에게 교룡산성승장동인을 하사하고 장군으로 삼는다. 사명과 처영은 교룡산성을 증축하고 의승군 훈련소를 교룡산성으로 옮겨 왜군의 침략에 대비한다. 또한 남원 내성도 급히 보수하여 한 장 이상 높이 쌓아 올린다. 정유년 드디어 왜군 주력 6만이 남원성으로 진격하고 처영이 이끄는 의승군은 남원 내성과 호응하여 교룡산성을 수성하는 한편 남원성을 공격하고 있는 왜군을 교란하여 큰 승리를 이끌어낸다. 의승군은 잘 훈련되었으며 백병전에 능했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남원성을 지키던 민관군 일만은 왜군에게 함락되고 무참히 살육당하게 된다. 그 코가 베어져 이역만리 일본땅에서 구천으로 떠돌고 있다.
남원성 전투, 의병과 의승군의 빛나는 승리
나라를 지키는 것은 무엇인가? 선조를 지키는 것인가? 양반세상을 지키는 것인가? 역사소설 남원성은 이런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선조가 버리고 명군이 외면하고 양반들이 산으로 도망갈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선 의병과 의승군이 지키려고 한 나라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 이들이 목숨을 걸고라도 왜군과 싸우게 했을까? 공맹의 도리인가? 소설에서 양반들은 처영을 ‘석씨지도를 따르는 상것‘이라고 조롱한다. 그렇다 광대 백정 기생 승려 역관 도공 의원 머슴 노비 농사꾼 이들이 지키려던 것은 무엇일까? ’양반도 상놈도 없는 세상에서 하루 살아봤으니 죽어도 좋네’ 라는 독백은 어떤 의미일까? 최근에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가 공전에 히트를 치고 종영했다. 그 드라마에서 의병들이 거병할 때 ost가 흘러나오는데 그 곳이 남원의 교룡산성이다, 421년전 추석에 남원성에는 그 의병과 의승군이 있었다. 역사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남원성”
1597년 (421년 전 정유재란 당시) 추석 전후 전라도 남원성에서 6만 왜군에 맞서 무려 5일 동안 싸워 빛나는 승리를 이루어낸 조선 민중들의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전쟁 이야기
“남원성 전투는 진 싸움이 아니다“
이번 추석 영화계에는 여러 편의 한국 영화가 각축을 벌였지만 한 주가 지난 성적표는 안시성의 근소한 승리로 귀결되는 듯하다. 안시성의 흥행 요소는 조인성을 비롯한 역대급 캐스팅과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무장한 전투신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러나 허약한 스토리 전개 등은 감점 요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기본적으로 끌어갈 수 있는 동력은 안시성 전투가 이긴 싸움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긴 싸움만 기억한다.
우리는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메달을 따고도 금메달이 아니라는 이유로 활짝 웃지 못하는 심지어는 분한 눈물을 훔치는 선수들을 자주 본 적이 있다. 마지막 한 번의 승부에서 이기지 못한 것이다. 여러 번을 한판으로 이긴 유도선수가 결승에서 누르기 한판으로 지면 그 선수가 예선에서 보여준 숱한 빛나는 승부는 전부 잊어버린다. 혹자는 이런 것을 한국민의 국민성이라고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가 그러한 싸움이다. 철저하게 잊히고 망각되었다. 6만 명의 왜군에 맞서 4000명의 병력으로 이긴 싸움이었지만 잊혔다. 결국 졌기 때문이다. 성안에서 항쟁했던 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홀로코스트의 현장은 일본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고 묻혔다. 한국민의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왜 인가? 그 싸움이 진 싸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 싸움은 결코 기억하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다. 우리들은 임순례 감독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기억한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덴마크와의 결승전. 전반전 동점, 후반전 동점, 연장전 동점 끝에 승부던지기에서 결국 패한다. 그러나 국민 누구도 이 경기를 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소 무거운 주제로 돌아가 보자. 1980년 5월 광주 결국은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은 졌다. 헬기와 탱크로 무장한 계엄군에게 무너졌다. 그러나 그 누가 광주를 진 싸움이라 하는가? 5월 광주는 광주시민의 승리이며 전 국민의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닌가?
남원성은 진 싸움이 아니다.
남원성 전투 이후 살아남아 그 전투의 진실을 보고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성안에 있었던 모든 사람 군인, 노인, 아이, 여인이 전부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일본은 철저하게 남원성 전투를 역사에서 지우고자 했다. 남원 성곽을 허물고 남원의 원혼이 묻혀있던 자리에 남원역을 지어 뭉개버리려 했다. 그것은 남원성 전투가 그만큼 일본에는 치욕적인 패전이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을 함락시켰기 때문에 이긴 싸움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엄청남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정유재란을 통틀어 일본의 결정적인 패전은 명량해전과 남원성 전투라 할 것이다. 일본은 공식적인 사료에서 ‘바람 한번 훅 부니 남원성이 넘어갔다’고 한다. 조선의 공식적인 사료도 마찬가지로 남원성 전투를 형편없는 패전으로 평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는 의외의 곳에서 균열이 생긴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의 승려로 남원성 전투를 직접 겪었던 경념의 일기에서 남원성 전투의 진실이 드러난다. 피상적이기는 하지만 남원성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으며 왜군이 얼마나 심대한 타격을 받았는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남원성 전투의 특이한 점은 왜군 부상자가 엄청나게 많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부상자는 왜군의 진군을 더디게 하고 군량을 축내게 된다. 왜군은 결국 전주를 무혈입성하고도 더 이상 한양으로 진군하지 못한다. 왜 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남원성 전투는 이긴 싸움이다. 이제는 작가의 영역에 맡겨 볼 일이다.
저자 : 고형권
1964년 장흥 출생
목포 행남사 도자기 공장 해고자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활동하다 투옥
안산에서 공장 노동자 생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20년 밥벌이
30년 만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2018년 임업후계자 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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