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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천문시계「혼개통헌의」보물 지정 조선 후기 이인문의 역작「강산무진도」등 9건도 보물 지정 2019-06-26
김재천 jck0767@daum.net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18세기 조선에서 제작된 천체 관측 기구인 ‘혼개통헌의’를 비롯하여,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등 고려~조선 시대 회화와 불교문화재, 전적, 초기 철기 시대 거푸집과 청동거울, 통일신라 시대 도기(陶器) 등 총 10건을 보물로 지정하였다.

 

보물 제2025호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龜尾 大芚寺 三藏菩薩圖)」는 1740년(영조 16년)에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제석도(帝釋圖), 현왕도(現王圖), 아미타불도(阿彌陀佛圖)와 함께 조성되어 대둔사에 봉안(奉安)되었던 작품으로, 이 중 삼장보살도만 유일하게 전해오고 있다.

 

* 삼장보살(三藏菩薩): 천상과 지상, 지하의 교주로 신앙되는 세 보살인 천장보살(天藏菩薩)·지지보살(持地菩薩)‧지장보살(地藏菩薩)을 일컬음

*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불화

* 제석도(帝釋圖): 불교의 신 가운데 최고신인 제석천(帝釋天)을 그린 불화

* 현왕도(現王圖): 명부회(冥府會)의 주관자인 현왕(現王)이 여러 무리를 거느리고 망자(亡者)를 심판하는 모습을 그린 불화

 

세로 238cm, 가로 279cm의 대규모 화면에 천장보살(天藏菩薩)과 지지보살(持地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 등 세 보살의 모임을 묘사한 그림으로서, 월륜(月輪), 치흠(致欽), 우평(雨平) 등 18세기 경상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畵僧)들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천장보살을 중심으로 높은 수미단(須彌壇) 위에 앉은 세 보살과 각각의 인물들이 질서 정연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배치한 것으로 보아 이들 화승의 수준 높은 기량을 가늠할 수 있다.

 

* 수미단(須彌壇): 사찰의 법당 등에 설치하는 단(壇)으로 불교의 우주관인 수미산을 상징. 나무나 금석 또는 돌로 수미산 형태의 단을 만들고 그 위에 불상을 안치한 대좌를 말함

 

이 삼장보살도의 도상은 1661년에 간행된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이라는 경전에 근거한 것으로, 천장보살이 중생들을 구제하는 부처인 약사여래(藥師如來)처럼 약호(藥壺, 약병)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약호를 든 천장보살의 모습은 같은 시기 다른 지역 불화에서는 좀처럼 확인되지 않고 경상북도 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그려졌으므로 18세기 삼장보살도의 새로운 도상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인 가치가 크다.

 

현재 16세기 이전에 제작된 삼장보살도의 대부분은 일본 등 해외에 전해지고 있고, 17~18세기 초에 제작된 ‘안동 석탑사 삼장보살도’(1699년)나 ‘대구 파계사 삼장보살도’(1707년) 조차 도난으로 그 소재가 불분명하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18세기 전반 연대를 가진 삼장보살도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또한, 유려하면서도 세련된 필치와 안정된 구도, 적색과 녹색이 중심이 된 조화로운 색감 등에서 조선 후기 불화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1년 후에 조성된 ‘상주 남장사 삼장보살도’(1741년)와 함께 18세기 전반 경상북도 지역 삼장보살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보물 제2026호 「김천 직지사 괘불도(金泉 直指寺 掛佛圖)」는 1803년(순조 3년)에 제작된 괘불로, 현재까지 알려진 19세기 괘불 중 시기가 가장 빠르고 규모도 가장 크다.

 

머리에 보관(寶冠)을 쓴 보살형(菩薩形) 본존이 양손으로 연꽃을 받쳐 들고 정면을 향해 당당하게 서 있는 독존(獨尊) 형식의 괘불도이다.

 

괘불 하단에 쓰인 화기(畵記)를 통해 직지사를 중심으로 경북 권역에서 활동한 제한(濟閑)을 비롯하여 위전(偉傳), 탄잠(綻岑), 부첨(富添), 신화(信和) 등 총 13명의 화승이 제작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 괘불도(掛佛圖): 야외에서 거행되는 영산재(靈山齎), 천도재(遷度齋) 등 대규모 불교의식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불화로, 보통 10m가 넘는 웅장한 크기와 화려한 색채, 장엄한 종교의식이 어우러져 세계적으로 유례를 보기 힘든 유무형의 독창적인 예술세계임

 

단독의 보살형 본존을 중심으로 화면 위에는 10위의 시방제불(十方諸佛, 네 방향과 네 모퉁이, 상하의 모든 부처)과 5위의 보살상을 배치한 간단한 구성이다.

 

앞 시기 괘불에서 보인 중량감 넘치는 형태에서 가늘고 날씬한 형상으로 변모한 점, 섬세하고 유려한 형태미의 구사보다는 굵고 대담한 선묘(線描)가 돋보여 시대적 전환기에 제작된 불화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약간 어두운 적색과 녹색의 대비로 18세기보다는 시각적으로 다소 엄숙한 느낌을 주며, 일부 권속에 국한되어 쓰이던 입체적인 음영법(陰影法)이 본존까지 확대되는 등 시대에 따라 달라진 표현기법도 확인된다.

 

높이 12m 이상 되는 대형 불화임에도 불구하고 도상의 배치, 상‧하축의 조형성, 입체감 있는 표현 등 여러 면에서 19세기 불화를 대표할 만큼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참고로,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와 「김천 직지사 괘불도」는 문화재청이 전국 사찰 소장 불교문화재의 현황파악과 정밀기록화를 위해 진행 중인 '불교문화재 일제조사'와 ‘대형불화(괘불) 정밀조사’ 사업을 통해 가치가 새롭게 발굴된 작품들이다.

 

보물 제2027호 「도은선생시집 권1~2(陶隱先生詩集 卷一~二)」는 고려 말 문인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의 문집 5권 가운데 권1~2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금속활자로 간행한 것이다.

 

1406년(태종 6년) 태종(太宗)은 이숭인에게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린 후 그의 문집을 간행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에 변계량(卞季良, 1369∼1430)이 편집하고 권근(權近, 1352∼1409, 고려 말 조선 초 문신)이 서문을 지어 간행한 것이 ‘도은선생시집’이다.

 

* 이숭인(李崇仁, 1347∼1392): 고려말기의 학자이자 중국에까지 이름을 알린 고려의 대표적 문인. 나라에 대한 충절(忠節)이 강해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으로 일컬어짐

* 추증(追贈): 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

 

권근이 서문을 쓴 연도가 1406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조선 개국 이래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가 주조된 1403년에서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인출(印出)된 것으로 보이며, 계미자본 인출 시 주로 주석의 글자로 사용된 계미자 중자(癸未字 中字)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 계미자 중자(癸未字 中字): 활자의 크기에 따라 대자(大字), 중자(中字), 소자(小字)로 나뉨

 

책의 맨 앞은 없어져 권근이 쓴 서문의 말미 4행만 남아있고, 본문 역시 주석 없이 원문만 있는 권1~2만 수록되어 있어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현존본이 극히 적은 귀중한 사례라는 점, 조선 개국 이래 가장 먼저 인출된 계미자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고려와 조선 전환기의 금속활자 인쇄술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하여 연구하고 보존할 가치가 높다.

 

보물 제2028호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陶器 鉛釉印花文 壺 一括)」은 통일신라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대호(大壺)와 소호(小壺) 총 2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호와 소호는 제작 당시 외호(外壺)와 내호(內壺)의 용도를 염두에 두고 제작했는지는 불분명하나 유사한 형태와 문양, 제작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같은 공방과 장인(匠人)에 의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입자가 미세한 점토를 활용해 구워냈고 유약은 산화납과 산화동을 섞어 녹색을 띠도록 만든 녹유계(綠釉系) 연유(鉛釉, 납이 든 잿물)다. 구연부와 몸체 전반에 걸쳐 종류가 다른 인화문(印花文, 찍은 무늬)을 찍었으며 문양대를 분할해서 시각적인 다양함을 추구하였다.

 

뼈항아리(골호, 骨壺) 계열의 통일신라 연유도기(鉛釉陶器) 항아리 중 가장 크고 문양소재가 화려하며, 통일신라 시대 연유도기의 제작과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비록 구연부와 바닥굽 등 일부 파손으로 인해 후대에 보수를 거쳤으나 동시기 도기와 비교할 때 조형적‧기술적 측면에서 독보적이며, 예술적 가치와 희소성 측면에서도 8세기 통일신라 도기(陶器)를 대표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보물 제2029호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李寅文 筆 江山無盡圖)」는 18세기 후반~19세기 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이 그린 것으로 총 길이 8.5m에 달하는 긴 두루마리 형식이다.

 

* 이인문(1745~1821): 자는 문욱(文郁), 호는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중인 집안 출신으로 38년 동안 도화서(圖畵署) 화원을 역임. 세 차례 북경 연행(燕行)을 다녀오며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역대 화법(畵法)을 절충해 산수‧인물‧화조 등 다양한 소재에 재능을 발휘. 김홍도(金弘道), 김응환(金應煥) 등 당대 유수의 화가들과 교유하며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김

 

이 그림은 이인문의 그림 중 처음 보물 지정이 예고된 작품으로, 조선 말기 학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소장했던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전통적 화제(畵題)인 ‘강산무진(江山無盡)’을 주제로 끝없이 이어지는 대자연의 경관을 형상화하였다.

 

웅장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것으로, 광활하고 넓은 구도에서 시작하다가 우뚝 솟아오른 절벽이 나타난 전반부와 험준한 산세가 중첩되어 광활하게 그려진 중반부, 그리고 다시 잔잔한 풍경으로 연결되는 3단계 구성은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촉잔도(蜀棧圖)>(1768년, 보물 제1986호)와 많은 유사성을 보여준다.

 

‘강산무진도’는 산수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촉잔도> 보다 풍속적 요소를 현실감 있게 결합시켰고 표현에 있어서도 붉은색과 연두색을 많이 사용해 화사한 분위기를 극대화한 점, 산의 생김새를 더욱더 또렷하게 묘사해 박진감을 더해준다는 점에서 이인문의 개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한국회화사에서 보기 드문 장권(長卷)의 산수화로서 전문 직업 화가로서 그의 높은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광활한 산수 표현과 정교하고 뛰어난 세부 묘사가 일관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 회화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보물 제2030호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 31~39(新編類聚大東詩林 卷九~十一, 三十一~三十九)」는 총 70권 중 권9~11 및 권31~30에 해당하는 책으로, 1542년(중종 37년) 경에 쓰인 금속활자인 ‘병자자(丙子字)’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판본이다. 이 판본은 16세기 우리나라 시문집 간행의 과정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서책이다.

 

「신편유취대동시림」은 조선 중종 연간의 문신인 유희령(柳希齡, 1480~1552)이 고대로부터 당시까지의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를 모은 70권의 시선집(詩選集)이다. 기존에 간행된 시문집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기적으로는 고대로부터 당대까지 왕실, 여성, 승려, 귀화인 등의 작품을 망라하였다.

 

현재까지 동일 판본이 확인되지 않은 유일본이자 1516년(종종 11년, 병자년)에 중국 명나라 때 간행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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