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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의 인문학, 소비의 질을 키운다.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5-07-11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지난 6월 16일부터 7월 9일까지, 조선대학교 재난인문학연구사업단과 (사)나주학회가 공동 주관한 ‘나주시민을 위한 HK 인문학 강좌’는 향토문화와 식생활, 그리고 농업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조망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남도 발효음식 문화 깊이보기!’라는 주제 아래 열린 이번 강좌는 장류, 술, 어패류, 차, 빵 등 발효와 관련된 다양한 소재를 통해 시민들이 우리 식문화의 근원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도왔다. 특히 강사로 나선 발효 전문가들이 단순히 발효 기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와 철학, 공동체 삶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강좌는 한편으로, ‘기술 중심’의 농업 교육이 갖는 한계를 성찰하게 한다. 오늘날 전국 각지의 농업기술센터와 귀농·귀촌 교육기관들은 꾸준히 ‘된장 담그기’, ‘텃밭 가꾸기’, ‘스마트팜 운영’ 등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 대상은 농민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를 포함하고 있으나 단순 기술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술교육은 농가의 생산성과 실천 역량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농업과 음식, 그리고 소비자의 삶이 점점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화적 의미망 속에 얽히는 오늘, 단순한 기술교육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은 농업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는 열쇠가 된다. 예를 들어, 된장이나 고추장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다. 오랜 시간 항아리 속에서 자연과 사람이 함께 빚어낸 발효의 산물이자, 계절의 흐름과 여인들의 손끝이 담긴 생활문화 그 자체이다. 발효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과거의 삶을 현재의 식탁에 초대하는 행위이며, 지역 정체성과 정신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인문학은 이처럼 음식과 농업의 이면에 담긴 이야기와 철학을 되살려낸다.

 

이러한 인문학적 접근은 소비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단순히 ‘몸에 좋은’ 발효식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왜 좋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누가 만들었는가’에 주목하게 한다. 예컨대, 된장을 고를 때 원료의 출처나 발효 기간, 제조자의 철학 등을 고려하게 되면, 소비 행위는 정보에 근거한 가치 있는 선택이 된다. 이는 단순히 건강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철학을 담은 소비이자 문화적 연대의 표현이다.

 

실제로 이번 나주 인문학 강좌에 참여한 시민들 다수는 “발효음식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앞으로는 시장에서 제품을 고를 때도 더 꼼꼼히 보게 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인문학적 교육이 소비의 ‘양’이 아닌 ‘질’을 바꾸는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교육은 농산물 직거래나 로컬푸드 활성화, 슬로우푸드 운동 등 지역 중심의 농업소비문화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따라서 농업은 땅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세대 간 전승되고, 삶의 방식과 문화적 정체성 속에서 자리를 잡는다. 농업의 인문학은 이런 삶의 맥락을 해석하고, 농민과 소비자 모두가 그 의미를 재발견하게 한다. 이는 생산자에게는 자부심과 동기를, 소비자에게는 책임 있는 선택과 깊이 있는 삶의 경험을 제공한다.

 

농업교육도 이제 전환점에 서야 할 때다. 실습과 기술 중심의 프로그램에서 나아가, 농업을 철학적·문화적 차원에서 탐구하는 인문학 강좌가 더 많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역민과 생산자가 함께 배우고 소통하며, 농업을 통해 삶의 의미를 확장하는 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교육이 있을 때, 우리는 단순한 ‘생산자-소비자’ 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농업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농업의 인문학은 더 나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삶을 가꾸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삶은, 우리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선택하며,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전남 농업의 미래, 인문학에 달려 있다. 전남인터넷신문 농업칼럼(202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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