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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과 된장에 고추 씨앗 사용 문화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5-07-28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여수 교동시장 풍물거리 오일장을 찾으면 유독 눈길을 끄는 풍경이 있다. 바로 커다란 포대에 담긴 고추씨앗을 판매하는 모습이다. 흔히 고추씨앗은 파종용으로 여길 수 있지만, 이곳에서 씨앗을 구입하는 이들의 목적은 다르다. 고추장이나 된장에 넣기 위한 용도이거나, 씨앗에서 기름을 짜내 조리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고추장과 된장은 한국 전통 발효식품의 대표 주자이다. 이 두 장(醬)에 고추씨앗을 넣느냐 마느냐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맛과 색, 풍미, 심지어 지역의 식문화까지 반영하는 중요한 차이로 이어진다.

 

일단 색깔과 질감부터 다르다. 고추씨를 제거한 뒤 빻은 고춧가루는 입자가 곱고 선명한 색을 띠어 음식에 깔끔함을 더한다. 반면, 고추씨를 그대로 두고 빻을 경우 고운 빛깔은 덜하지만 보다 투박하고 강한 맛을 자아낸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후자의 방식을 주로 택하고, 충청 이북 지역에서는 전자의 방식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이 차이는 고춧가루를 둘러싼 지역 색채를 넘어, 때로는 고부간 갈등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친정집은 고추씨를 넣는데 시댁은 빼고 만드는 등 제조방식의 차이가 조리 과정에서 충돌을 빚는 경우도 있다.

 

맛에 있어 고추씨는 일종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고추씨를 그대로 사용할 경우 매운맛이 더 강해진다는 주장이 있지만, 사실 매운맛의 주범인 캡사이신은 고추의 씨앗 자체보다는 씨앗이 붙은 태좌 부위에 더 많이 존재한다. 따라서 고추씨만으로 매운맛이 결정된다고 보긴 어렵고, 사용된 고추 품종에 따라 캡사이신 함량이 크게 좌우된다.

 

고추장을 만들 때 고추씨앗을 넣는 이유는 다양하다. 매운맛과 향미를 더해주고, 장의 보존성을 높이며, 깊은 맛을 유도한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된장 가르기’ 과정에서 고추씨앗을 넣는 전통이 존재하며, 그 이유로는 군둥내 제거, 된장맛 향상, 색감 보정, 영양 성분 보강, 항암 및 항산화 효과 증대, 체질 구분 없이 누구나 섭취 가능하게 한다는 다양한 효능이 전해진다. 실제로 일부 된장 제조자들은 된장 한 말에 종이컵 한 컵 분량의 고추씨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전통적 믿음을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도 일부 존재한다. 구경형 외(2008)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고추 품종 20종과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재배된 4종의 고추씨를 분석한 결과, 회분 함량은 3.11-3.77%의 범위로 시료 간 큰 차이가 없었고, 단백질 함량은 13.25-16.53%의 범위를 보였다. 반면에 지방 함량은 18%에서 30%까지의 조지방 분포도를 보였고, 총 식이섬유 함량은 품종에 따라 크게 40-65%의 범위로 비교적 넓은 분포도를 나타내었다.

 

이는 고추씨가 영양적으로도 꽤 유익한 식자재임을 시사한다. 또한 캡사이신과 디히드로캡사이신 함량은 품종별로 차이를 보였고, 총 폴리페놀 함량 역시 물 추출물 기준 10-26mg/g, 에탄올 추출물은 최대 34mg/g에 달했다. 아질산염 소거능과 전자공여능, 즉 항산화력도 고추씨 추출물에서 일정 수준 이상 확인되었다.

 

다만 생리활성 측면에서 고추씨가 다른 항산화성 식물에 비해 매우 뛰어나다고 말하긴 어렵다. 특히 고추씨의 캡사이시노이드 성분은 발효 7일간 90% 이상 감소한다는 결과도 있다. 반면 총 폴리페놀 함량은 발효 기간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증가하여, 발효 7일차에 최대치에 이르렀다(지예빈·김희경, 2022). 이러한 변화는 고추씨가 단순히 재료로서의 역할을 넘어 발효 과정에 따라 성분이 변하는 ‘살아 있는 소재’임을 보여준다.

 

고추씨앗은 오래전부터 기름용으로도 쓰여 왔다. 고추씨 기름은 육개장이나 순두부찌개에 넣어 감칠맛을 살리는 데 활용되며, 향과 풍미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오늘날에는 고추씨유의 활용이 일부 식당이나 요리연구가 사이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전통은 과학과 조화를 이룰 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고추씨앗을 장에 넣는 전통 역시 그 문화적·영양학적 맥락 속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지역별 차이와 가족 간 조리방식의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고추씨앗의 첨가에 따른 객관적인 맛의 평가, 고추씨앗의 생리활성과 효능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더욱 축적된다면, 고추 씨앗과 고추씨앗을 식문화에 사용해온 전통의 비중은 더 높아질 것이다.

 

참고문헌

구경형, 최은정, 박재복. 2008. 품종별 고추씨의 화학적 성분 분석.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37(8):1084-1089.

구경형, 최은정, 박완수. 2008. 고추씨의 물과 에탄올 추출물의 생리활성.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37(10):1357-1362.

지예빈, 김희경. 2022. 고추씨의 발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및 발효에 따른 고추씨의 성분 변화.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51(7):727-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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