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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왕골돗자리의 솜씨가 스민 함평 육회비빔밥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5-12-06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전남 함평군 월야면에는 5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는 왕골돗자리 제조 기술이 전승돼왔다. 왕골을 고르고 결을 맞추고, 색을 조율하며 문양을 짜는 과정은 단순한 생업을 넘어 한층 고도화된 ‘손의 예술’로 평가된다. 특히 함평의 왕골돗자리는 종류만 해도 10여 가지가 넘는다. 완초를 탈색해 맑고 고운 흰빛을 내는 인피석, 살짝 푸르스름한 색감을 지닌 간석, 길이가 짧고 폭이 좁아 실용적이었던 석자다듬이, 그리고 화려한 꽃무늬나 용틀임 문양을 더해 ‘꽃석’ 또는 화문석이라 불린 작품형 돗자리까지, 종류와 쓰임새가 다양하다.

 

함평 화문석이 전국적 명성을 얻은 이유는 바로 이같은 섬세한 손기술과 장인정신이 수백 년 동안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손의 문화’, 즉 재료를 다루고 조화를 읽어내는 감각의 전통은 생활 공예를 넘어 지역 음식문화에도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특히 함평 사람들이 오래도록 즐겨 온 비빔밥 문화 속에는 왕골돗자리를 짜던 손끝의 미학,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감각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함평 전통시장 비빔밥 테마거리에 자리한 육회비빔밥은 단순한 향토음식이 아니다. 그 한 그릇에는 지역의 손기술, 조화 감각, 그리고 오래된 미식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38년 10월 4일 자 『동아일보』의 "箕山頴水(기산영수)의香氣(향기)탄 咸平燒酒(함평소주)에 비빔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이미 1930년대에 함평에는 ‘맛집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고, 비빔밥이 지역 미식의 상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기사에는 "잠깐 함평에 와서 일을 보고 오후에 가는 이가 혹 점심을 먹게 되면 대개는 많이 있는 비빔밥집이니 그곳에 들어가 십오전자리 비빔밥 한 그릇에 보통 주량을 가진이면 소주 두 잔만 마시면 바로 목에 넘겨버리기도 아까울만한 싼듯하고 깊은 맛있는 비빔밥 그 구수하고 향기 난 소주, 이러기에 함평 시장 날이면 외촌에 사는 분들이나 근읍에 계신 이들은 시장에 와서 비빔밥에 소주만 먹고 가는 예도 적지안하며"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오늘날 함평 육회비빔밥이 특별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요소에서 비롯된다. 첫째는 신선한 생고기다. 1900년대 초 개장한 함평우시장은 전남에서 가장 오래된 우시장으로, 이곳으로 모여든 장꾼과 거간꾼들은 자연스럽게 싱싱한 생고기를 즐기게 되었고, 이를 비빔밥에 얹어 먹는 문화가 발전했다. 지금도 당일 도축한 한우의 허벅지·엉덩이살 등 지방이 적고 단단한 부위를 썰어 사용한다. 이 깔끔한 육향이 함평 육회비빔밥의 근간을 형성한다.

 

둘째는 삶은 돼지비계다. 전해지기로는 과거에 부족한 고기양을 보충하기 위한 용도로 넣기 시작했으나, 지금은 독특한 풍미와 식감 때문에 오히려 ‘필수 재료’가 되었다. 기름기를 빼 삶아낸 비계는 입안에 들어가면 고기와 섞여 중립적인 식감을 남기고, 고소함을 더하며 맛의 구조를 완성한다. 이 비계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별도로 나오지만 비빔밥에 넣을 경우 화문석에서 밝고 어두운 색실이 부드러운 대비를 이루듯, 비계는 육회와 조화되며 맛의 질감을 부드럽게 완충해 준다.

 

셋째는 비빔밥과 함께 나오는 선짓국이다. 소뼈를 밤새 우려낸 육수에 싱싱한 선지를 넣어 초벌로 강불에 끓여 잡내를 제거한 뒤 은근히 고아낸 국물은 깊으면서도 개운하다. 순두부처럼 부드러운 선지와 맑은 육수는 비빔밥의 기름기와 고소함을 조절해주는 ‘미각의 반음계’ 역할을 한다. 선짓국이 있어야 비빔밥이 진정한 균형을 갖추고, 장인이 마지막에 문양을 닫아 조화를 맞추듯 음식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요소만으로는 함평 육회비빔밥의 본질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그 근저에는 왕골돗자리 문화가 길러낸 섬세함과 조화미, 즉 ‘손의 기억’이 있다. 왕골을 고르고, 결을 세우고, 색을 배열해 문양을 짜는 일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미학적 행위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랜 세월 생활 속에서 세밀한 손기술과 감각을 체화해 왔다. 그 감각이 자연스럽게 음식에서도 발현되는 것이다.

 

왕골돗자리에 관한 문헌 기록도 풍부하다. 『동아일보』 1938년 기사에는 나산·월야·해보 일대가 완초제품의 특산지로 소개되어 있고, 1981년 3월 12일 자 『동아일보』 「새벽 성시 문장 돗자리 시장」 기사에서는 문장시장 새벽 4시 반이면 이미 돗자리 거래가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왕골을 정성껏 손질해 문양을 넣어 엮는 화문석은 생활용품을 넘어 색과 결을 직조해내는 예술품으로 평가되었다.

 

이 ‘문양의 미학’은 함평 육회비빔밥의 구조와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비빔밥의 채소, 육회, 고명, 돼지비계, 고추장 양념은 각기 다른 색과 질감을 지닌 재료들이 한 그릇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마치 왕골돗자리에 문양이 짜이듯 ‘맛의 문양’을 만들어낸다. 재료를 넣고 비비는 동작조차 왕골을 꼬아 문양을 완성하는 장인의 손길을 연상시킨다. 섞일수록 조화가 생기고, 조화 속에서 더 깊은 맛과 의미가 생성된다.

 

함평 육회비빔밥은 그래서 단순한 향토음식을 넘어선다. 그것은 지역의 역사, 손기술, 삶의 철학이 응축된 ‘문화 예술품’이다. 한 숟가락을 뜨는 순간, 수백 년 모여온 왕골문화의 감각과 손맛이 입안에서 되살아난다. 음식은 사람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문화라는 사실을, 함평 육회비빔밥은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대한민국 격동기 기록사진가 이경모와 광양 재첩요리.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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