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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명을 움직인 곡식의 패권 다툼과 쌀 대책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5-12-08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영어의 코드(code)는 프로그래밍 문장, 암호, 법전 등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문명을 규정하는 코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단연 ‘음식’이다. 인간은 어디에서 살든 먹어야 생존할 수 있지만, 무엇을 먹는가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문명을 지탱해 온 곡물을 기준으로 보면, 세계는 밀·쌀·옥수수라는 세 문화권으로 나뉜다. 서유럽은 밀의 문명, 동아시아는 쌀의 문명, 아메리카는 옥수수의 문명이다.

 

이 구도에 비추어 보면 세계사의 흐름 또한 다르게 읽힌다. 다소 과감한 해석을 허용한다면, 세계사는 밀 문화권이 팽창하며 다른 문명에 영향을 미치고, 그에 맞서 각 지역의 곡물 문화권이 대응·저항해 온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대항해시대 이후 ‘빵을 먹는 식문화’는 문명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고, 밀 문화권은 빵·파스타·과자류 등 고부가가치 가공식품을 앞세워 자신의 표준을 세계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렇다면 쌀과 옥수수 문명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우선 동아시아의 쌀 문화권은 오랜 벼농사 전통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상 식탁에서는 밀 제품이 이미 강력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보더라도, 최근 식량수급 자료에서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약 56kg, 밀은 41kg 수준이다.

 

한국 또한 쌀 소비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밀·가공식품 소비는 증가하는 흐름에 놓여 있다. 외식·중식 산업이 확대될수록 아시아 전역에서 밀 제품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아메리카의 옥수수 문화권은 다른 전략을 택했다. 옥수수의 원산지인 멕시코에서는 지금도 국민 음식인 토르티야(tortilla)가 식생활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1인당 연간 80~90kg을 섭취한다는 보고도 있다. 식품용만 연간 2,000만 톤에 이르는 소비는 옥수수 문화가 여전히 강고함을 보여준다.

 

여기에 미국이 대규모 곡물 생산·수출국으로 부상하면서 옥수수는 식품, 사료, 산업용 바이오 연료에 이르기까지 활용 범위를 극대화했고, 이는 세계 최대 곡물 상품군으로 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옥수수는 원산지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 시장에서 생존한, 드문 성공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밀·쌀·옥수수 문화권의 변화를 살펴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드러난다.

 

밀은 가공성·맛·편의성이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거의 모든 문화권을 잠식하고 있으며, 옥수수는 다기능성·산업적 활용도로 새로운 패권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쌀은 어떠한가. 쌀은 역사·문화·의례·정체성과 깊이 연결된 곡물이지만, 산업적 확장성이나 가공 다변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여 왔다. 즉, 쌀 문화권은 문명적 정체성은 강하나 산업적 확장 전략은 충분히 마련되지 못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쌀 문화권, 특히 한국과 일본처럼 쌀이 문화적 핵심인 지역은 앞으로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첫째, 쌀을 단순한 주식 곡물로만 바라보던 관점을 바꿔야 한다. 옥수수처럼 식품·가공식품·기능성 식품·바이오 소재 등 다층적 산업 가치로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지역 고유의 음식문화와 결합한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한 끼 식사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부각시키는 방식은 소비 저하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셋째, 쌀 기반의 식품 혁신이 필수적이다.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간편식(HMR), 디저트, 음료 등에서 쌀의 비중을 실질적으로 높여야 쌀 산업은 미래를 확보할 수 있다. 밀과 옥수수는 이미 세계 문명을 움직이는 ‘글로벌 코드’가 되었다. 그러나 쌀은 여전히 아시아의 문화와 정신을 지탱하는 핵심이다.

 

이제 쌀 문화권이 선택해야 할 것은 전통의 유지에 머물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산업적·문화적 확장으로 문명의 코드를 재설계할 것이냐는 근본적 질문이다. 쌀의 미래는 단순한 식량 문제가 아니라, 쌀 문명인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를 어떤 방향으로 이을 것인가에 관한 더 큰 과제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三石誠司. 2025. 小麦・コメ・トウモロコシの覇権争い.日本農業協同組合新聞(2025.11.14.).

허북구. 2025. 전남도 쌀 소비 촉진 지원 조례와 쌀 소비문화.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허북구(2022.9.30.).

허북구. 2025. 강진군 쌀 수출과 케데헌 김밥.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허북구(2022.9.25.).

허북구. 2022. 전남도 가루쌀, 재배면적 확대의 함정.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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