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광양은 제철과 광양항이라는 철과 항만도시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광양제철소가 생기기 전까지는 수산업이 크게 발달한 곳이다. 1910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수산지(朝鮮水産誌)』에는 광양(光陽)의 물산으로 쌀 · 면화 · 철기 · 소금 · 해태 등 다섯 가지를 들고 그중 해태가 가장 중요한 물산이며 국내 수위라 기록하고 있어 광양은 해태생산으로 유명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광양제철소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골약, 진월 및 태인도 등지에서는 집집마다 김을 건조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광양은 김양식의 시원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광양시 태인동에는 전라남도 기념물인 광양김시식지(光陽김始殖址)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김을 양식한 김여익(金汝瀷, 1606∼1660)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영암 태생인 김여익은 병자호란(1636) 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조정이 중국 청에 항복하자 태인도에 들어와 김 양식법을 고안했다. ‘김’의 원래 이름이 ‘해의’‘해태’였으나 ‘김’으로 고쳐 부른 것은 김 양식을 최초로 창안한 김여익의 성씨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에는 정병욱 가옥(국가등록문화재 제341호)이 있다. 이 가옥은 윤동주의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광양 출신의 정병욱은 조선일보에 산문‘뻐꾸기의 전설’을 게재했고, 이를 본 윤동주가 1940년 4월 정병욱을 찾았다.
중국 길림성(吉林省) 북간도(間島, 젠다오)의 용정(룽징)에서 1917년에 태어난 윤동주와 광양에서 1922년에 태어난 정병욱은 같은 연희전문학교 재학생이라는 점과 문학이라는 공통점으로 친해졌다. 윤동주는 생전에 시집 출간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28세에 후쿠오카 구 형무소에서 죽었다.
정병욱은 윤동주의 육필 원고를 보관하게 되었고, 징병에 끌려가기 전에 어머니께 이 원고 보관을 부탁했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광양에 있는 정병욱의 생가 마룻바닥에 원고를 숨겨 두었다. 이 원고는 1948년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발행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광양의 김은 광양제철소가 들어서면서 생산이 멈추게 되었고,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이 유산으로 남아 있는데 비해 광양 전어잡이와 전어음식은 현재 진행형이다. 전어는 겨울철에 남쪽에서 있다가, 봄에 산란을 하고, 난류를 타고 북상하면서 광양만을 벗어난다. 그리고 10월경이 되면 다시 광양만으로 돌아오는데, 이때가 광양만의 본격적인 전어잡이 철이다. 전어는 양력 10월이 성어기인데, 이때가 뼈가 연하고 맛이 좋다. 10월이 지나면 뼈가 억세지는데, 잔뼈가 많은 전어의 맛이 떨어진다.
광양에서 전어잡이는 섬진강 물길이 광양만과 합류하는 지점인 망덕포구 앞바다에서 특히 성행했는데, 광양 진월면 신답마을 사람들은 300년 전부터 전어잡이를 생업으로 삼았다. 전어잡이는 두 척의 배에 각각 6명의 어부가 타고 나가 전어 떼를 만나면 그물을 결합해 전어 떼를 둥그렇게 에워싸고, 두 배가 만나 그물을 당겨 올린다. 이 과정에서 어부들이 부르는 노래는 ‘전어잡이 노래’로 불린다.
그 가락은 매우 구성지고 애잔하면서도 흥겨운데, 1960년대 기계화와 광양제철소의 건설로 전어잡이 환경이 훼손되면서 중단되었다. 하지만 광양만 주민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기억하기 위해 전어잡이 소리 보존회를 결성하고 각종 문화행사에서 전해졌다. 이 전어잡이 소리는 2013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57호 ‘광양 진월 전어잡이 소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으며, 10월에 개최되는 광양전어축제 때 공연 모습을 보고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전어에 대해 “한자로는 전어(箭魚)라고 쓰고, 큰 것은 1척가량이고, 몸이 높고 좁다. 빛깔은 청홍색이다. 기름이 많고 맛이 좋다. 흑산도에 간혹 있는데, 육지에 가까운 곳에서 나는 것만 못하다.”라고 설명했다. 그 설명을 증명하듯 광양 진월면 망덕포구에서 건져 올린 전어는 육지를 가로지르는 섬진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의 빠른 물살 덕분에 탄탄한 육질과 깊은 풍미를 자랑한다.
광양전어는 전어라는 식재료 자체도 품질이 우수하지만 숯요리 문화가 발달한 광양에서는 광양숯불구이처럼 석쇠에 올려놓고 구운 다음 양념장을 고루 배게 발라서 먹거나 전어를 찐 다음 양념장을 발라서 먹은 식문화가 발달했다. 또 전어회나 삭은 막걸리 식초와 미나리를 이용한 전어회무침도 전통적으로 많이 해 먹었던 요리이다.
지금은 그러한 요리 전통이 상당히 상실되었으나 가을철이면 여전히 전어 회와 다양한 전어무침 그리고 전어구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와같이 광양의 전어잡이와 그에 관련된 소리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며, 지역 사람들의 삶과 역사와 함께 전해지고 있다. 동시에 전어의 요리법과 맛 또한 시대와 환경의 변화도 불구하고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16. 광양 전어의 참맛. 광양뉴스 칼럼(2016-10-14).
허북구. 2025. 순천 한정식 정원과 순천만국가정원.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2-07).
허북구. 2025. 500년 왕골돗자리의 솜씨가 스민 함평 육회비빔밥.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2-06).
허북구. 2025. 대한민국 격동기 기록사진가 이경모와 광양 재첩요리.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29).
〈기사의 무단 전제나 복제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