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전국 배 생산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전남 나주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기후변화의 충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여름철 고온에 따른 일소(日燒) 피해와 봄철 개화기 이후 발생한 늦서리 피해는 과수 재배가 더 이상 ‘경험과 감각’만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예외적 재해로 인식되던 현상이 이제는 매년 반복되는 구조적 위험으로 변하고 있다.
과수는 지구 온난화에 특히 취약한 작목이다. 여름 기온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면 사과·배·포도 등에서 착색 불량이 나타나고, 직사광선에 노출된 과실 표면은 조직이 손상돼 상품성을 잃는다. 반대로 이른 봄 기온이 빠르게 상승하면 발아와 개화 시기가 앞당겨지고, 이후 찾아오는 저온은 꽃과 어린 열매에 치명적인 피해를 남긴다. 문제는 이러한 피해가 해마다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상재해의 불확실성은 생산자의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일본은 과수 기상재해를 ‘사후 보상’이 아닌 ‘사전 예측과 선택적 대응’의 영역으로 전환하고 있다. 일본 농업·식품산업기술종합연구기구(NARO)는 기상청의 중·장기 예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1km 격자 단위의 메시 농업기상 데이터를 구축했다. 여기에 과수 종류와 생육 단계 정보를 결합해, 언제 어디서 착색 불량·일소·늦서리 피해가 발생할지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기상 정보만을 단순히 제공하는 데 있지 않다. 같은 기온 조건에서도 과수의 품종과 생육 단계에 따라 피해 민감도는 크게 달라진다. 일본의 예측 시스템은 생산자가 입력한 과원 위치와 생육 상태를 바탕으로, 피해 발생 가능 시점을 며칠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 앞서 제시한다. 이를 통해 생산자는 차광망 설치, 반사 멀칭, 환상박피, 연소법 등 비용과 노동력이 많이 드는 조치를 ‘필요한 해에, 필요한 시점에만’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기후변화 시대 농업 대응의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모든 해에 모든 대응을 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피해가 예상되지 않는 해에는 과도한 조치를 피하고, 위험이 높은 해에는 선제적으로 집중 대응하는 것이 비용과 노동력을 동시에 줄이는 길이다. 일본이 이 시스템을 생산자 개인이 아닌 생산자 단체와 지방정부 중심으로 보급하고 있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상재해 대응을 개인의 판단이 아닌 공적 정보 체계로 끌어올린 것이다.
전남 농업도 변화의 출발점에 서 있다. 최근 경상북도를 비롯한 국내 여러 지역에서는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기상청의 동네예보를 농촌진흥청이 재분석해 농장 단위로 세분화하고, 작목별·생육 단계별 재해 정보를 문자로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일본의 방향과 분명히 맞닿아 있다.
이제 전남 농업이 고민해야 할 지점은 다음 단계다. 첫째, 단순 기상 경보를 넘어 과수 생육 단계와 품종 특성을 반영한 예측 체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둘째, 개별 농가의 경험에 맡겨진 대응 판단을 지역 단위의 공공 의사결정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상재해 예측 정보가 보험, 재해 보상, 기술 보급 정책과 연동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농업에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더 많은 대비가 아니라, 더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일본의 과수 기상재해 예측 시스템은 기술 자체보다도 ‘선택의 구조’를 바꾼 사례다. 피해가 발생한 이후 책임 주체와 보상 규모를 둘러싼 공방을 반복하는 방식은 농업 현장의 불확실성을 줄이지 못한다. 피해가 없는 해에는 준비가 과도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피해가 발생한 해에는 뒤늦은 대응과 보상 논쟁이 되풀이된다.
전남 농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이러한 사후 대응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일본처럼 길게는 한 달 이전부터 재해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고, 위험이 높은 해와 시기에만 선택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정착되어야 한다. 기후에 맞서 싸우는 농업이 아니라, 기후를 읽고 준비하는 농업으로의 전환이 지금 전남 농업에 요구되는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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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북구. 2025. 폭염 대응 농업, 과거의 교훈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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