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전남의 겨울은 유자의 계절이다. 남해안을 따라 이어진 유자 과수원에는 늦가을부터 노란빛이 차오르고, 특유의 향은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가장 먼저 알린다. 가공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에도 유자는 귀한 과일이었다. 신맛과 향을 동시에 지닌 과일이 흔치 않았던 시절, 유자는 제사상에 오를 만큼 상징성과 위상이 분명했다. 유자는 많이 먹기 위한 과일이 아니라, 계절과 정성을 드러내는 과실이었다.
오늘날에는 유자청으로 대표되는 가공품이 개발되면서 유자는 고흥이나 완도의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전남 전체 농업 구조 속에서 유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재배 면적이나 생산량만 놓고 보면 주력 품목으로 보기 어렵다는 인식도 여전하며, 전남 농업이나 지역 산업을 견인하는 작물로까지 평가받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서양의 식문화를 떠올려 보면 이 인식은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서양의 감귤류 가운데 유자처럼 신맛이 강해 생과로 거의 식용되지 않는 과일로는 레몬과 라임이 있다. 그럼에도 레몬과 라임은 서양 식문화 전반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다. 2024~2025년 기준 레몬과 라임의 세계 생산량은 약 1,021만 톤에 이르며, 라임 시장만 보더라도 약 445~46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레몬과 라임 문화가 발달한 서양에서는 이들 과일이 해산물, 육류, 샐러드, 디저트, 음료, 주류는 물론 커피와도 자연스럽게 결합된다. 레몬을 곁들인 아이스 커피, 에스프레소에 레몬 껍질 향을 더하는 방식, 레몬 토닉과 커피를 결합한 음료까지 활용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커피에서 레몬은 쓴맛을 가리기보다, 산미를 통해 구조를 정리하고 풍미를 또렷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레몬과 라임은 생산량이 많아서 중요한 과일이 아니다. 쓰임새가 많기 때문에 중요한 과일이다. 서양에서 레몬과 라임은 ‘맛을 더하는 재료’가 아니라, ‘맛을 조율하는 기본 언어’로 기능해 왔다. 항해와 무역의 역사 속에서 비타민 C의 공급원으로 주목받았고, 그 과정에서 요리·음료·향료·보존 기술과 결합하며 세계화되었다.
서양의 레몬과 라임은 모두 생과보다는 향과 산미를 활용하는 감귤류로, 동양의 유자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이들 과일은 음식의 중심에 서기보다는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 왔다. 기름진 음식의 무게를 낮추고, 입안을 정리하며, 다음 맛으로 넘어가게 만드는 기능이다. 레몬과 라임은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용도 중심’으로 발전해 왔지만, 유자는 오랫동안 ‘원물 중심’에 머물러 왔다.
이 간극을 먼저 좁힌 곳이 일본이다. 일본은 유자를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조미의 재료로 재해석했다. 유자 껍질과 고추, 소금을 결합한 발효 조미료인 유자 코쇼(Yuzu Kosho)는 이미 서양 미식 시장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유자 마멀레이드, 유자 소스, 유자 향료 등도 꾸준히 개발되어 유럽과 북미로 수출되고 있다. 일본 유자의 경쟁력은 생산량이 아니라, 유자를 무엇과 어떻게 결합했는가에 있다.
전남 유자는 또 다른 가능성을 지닌다. 향이 강하고 껍질이 두꺼워 가공에 유리하며, 무엇보다 전통 발효 식문화와 맞닿아 있다. 유자청처럼 유자 자체만으로 끝나는 상품을 넘어, 유자의 향과 기능성을 전통 식품과 연계한 활용 가능성은 충분하다. 예컨대 레몬이 서양 해산물 요리에서 해온 역할처럼, 과메기를 숙성시키는 마지막 단계에서 유자를 활용해 비린 향을 정리하고 지방의 무게를 낮추는 방식은 상징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유자는 강하게 자신을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식품의 맛과 흐름을 정리하는 재료다. 이 점에서 유자는 레몬·라임과 같은 기능을 지니면서도, 한국의 전통 발효 문화라는 독자적인 자산과 결합해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유자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세계 식문화 속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는 레몬과 라임처럼 활용되는 시장을 만들어 간다면 유자는 전남 농업의 새로운 효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장흥 된장 물회와 고흥 유자 세비체.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5.7.21.)
허북구. 2024. 고흥 유자 소금과 숯불 생선구이.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4.1.5.)
허북구. 2022. 고흥 유자와 태국의 인기 유자 커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2.12.1.)
허북구. 2020. 에스프레소 로마노와 고흥 유자 커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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