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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놀이문화와 치유농업의 접점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6-01-11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눈이 펑펑 내리는 아침이다. 창밖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지만, 동네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들 웃음소리와 함께 골목마다 눈사람이 하나둘씩 서 있었을 풍경이다. 집에서 숯을 가져와 눈을 만들고, 당근이나 나뭇잎으로 코를 달며 제법 그럴듯한 얼굴을 완성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눈사람은 며칠 동안 자리를 지키며 서서히 녹아내렸고, 그 모습마저 아이들에겐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눈사람을 만드는 일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누가 눈을 굴릴지, 누가 얼굴을 만들지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뉘었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며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협력과 양보, 기다림과 책임을 배웠다. 공동체 의식은 그렇게 놀이 속에서 자라났다.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몸으로 익히는 사회 수업이었다. 눈사람 놀이는 자연과 계절, 그리고 사람의 관계가 어우러진 놀이문화였다.

 

그러나 요즘은 눈이 많이 내려도 눈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놀이의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함께 모여 무엇인가를 만드는 놀이보다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디지털 놀이가 일상이 되었다. 빠르고 편리하며 개인의 취향에 맞춘 놀이가 늘어났지만, 그만큼 함께 어울리는 경험은 줄어들었다.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것을 놀이를 통해 배우던 시절과는 다른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해진 사회에서 ‘함께 노는 경험’은 점점 낯선 것이 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세대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 경험의 축소는 관계의 약화, 정서적 고립과도 맞닿아 있다. 그래서 최근 주목받는 개념이 치유농업이다. 치유농업은 농업 활동과 농촌 환경을 매개로 사람의 몸과 마음, 그리고 관계의 회복을 돕는 접근이다. 흙을 만지고, 작물을 기르고,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맞추는 과정 속에서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회복이 함께 일어난다.

 

눈사람 놀이문화와 치유농업은 의외로 많은 접점을 갖는다. 눈사람 놀이에는 첫째, 역할 분담과 협력을 통한 사회적 학습이 담겨 있었다. 둘째, 눈과 추위, 손의 감각을 온전히 사용하는 자연 기반의 감각 경험이 있었다. 셋째, 결과보다 함께하는 과정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시간의 가치가 있었다. 이는 치유농업이 강조하는 공동 참여, 자연 환경을 활용한 치유, 그리고 성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구조와 정확히 겹친다.

 

농업은 본래 공동체의 삶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모내기와 수확, 농한기의 놀이와 잔치는 늘 이웃과 함께였다. 공동체 놀이문화의 뿌리는 대부분 농업과 연결되어 있다. 눈사람 놀이는 농촌 마당이나 동네 공터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계절 놀이였고, 작은 공동 작업이었다. 이러한 놀이문화는 경쟁보다는 협력, 효율보다 관계를 중시했다. 오늘날 치유농업이 회복하려는 가치 또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공동체 놀이문화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라진 놀이를 단순한 추억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치유농업과 연계해 다시 자원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농촌 체험과 치유 프로그램 속에 공동체 놀이 요소를 복원하고, 세대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협력과 사회성을 배우고, 어른들은 관계의 온기를 회복하며, 노년층은 기억과 신체 감각을 자연스럽게 되살릴 수 있다.

 

치유농업은 작물을 기르는 기술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심는 일이다. 눈사람 놀이문화와 치유농업의 접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라진 놀이를 다시 만들고, 그 놀이가 지닌 공동체적 의미를 치유농업의 언어로 재해석할 때, 농업은 생산을 넘어 관계를 돌보는 사회적 기반이 될 수 있다. 눈이 내리는 아침, 골목에 눈사람 하나쯤 다시 서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숲치유와 치유농업에서 재조명되는 농촌의 놀이자원.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1.10.).

허북구. 2025. 놀이의 심리적 구조와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1.1.).

허북구. 2025. 재미농업과 엔터테인먼트 농업, 농촌의 새로운 무대.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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