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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종자명–음식명–지역문화의 결합과 전남 농업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6-01-13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전남도 농업기술원은 지난해 기능성 쑥부쟁이 신품종을 육성해 ‘루비채(Rubichae)’라는 이름으로 품종보호 출원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전남에서 이처럼 신품종 육성과 기능성 작물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루비채’라는 이름은 세련되고 감각적이지만, 그 이름만으로는 이 작물이 전남의 어느 환경에서 태어났고, 어떤 지역의 농업과 연결되는지는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이는 특정 품종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전남 농업 전반이 안고 있는 구조적 과제다. 품종은 늘어나지만, 지역 정체성을 담은 이름과 이야기는 충분히 축적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기능성 작물과 신품종 개발에 적극적인 일본에서는 종자명 자체가 지역의 이름과 이미지를 담는 출발점이 되고, 그 이름이 다시 음식명과 지역문화로 확장되는 구조가 작동하는 사례가 많다. 다시 말해, 일본 농업은 생산 이전에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먼저 설계해 온 셈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후지(Fuji) 사과다. 후지라는 이름은 자연스럽게 후지산의 이미지를 불러오며, ‘일본적인 완성도’와 ‘청정함’을 상징한다. 그래서 ‘후지사과(Fuji apple)’는 해외 시장에서도 번역되거나 변형되지 않는다. 종자명이 곧 음식명이 되고, 음식명이 다시 문화의 표지로 작동하게 된다. 일본 소비자 들 또한 후지 사과를 먹으면서 후지산과 계절, 지역의 기후를 함께 떠올리면서 농산물이 문화가 된다.

 

쌀에서도 같은 사례가 있다. 일본 아키타코마치(秋田小町)는 지명인 아키타와 고전적 미학을 상징하는 ‘코마치(小町)’를 결합한 이름이다. ‘코마치’는 작은 마을이라는 의미와 함께 일본 고전 문학에서 절세미인, 섬세한 감성, 우아한 여성성의 상징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리고 ‘코마치’라는 말 자체가 아름다운 여인, 윤기 있고 고운 상태, 정갈하고 품위 있는 이미지를 뜻하는 관용어로 굳어졌다.

 

그러므로 아키타코마치(秋田小町)라는 이름은 단순히 생산지를 표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설국의 정갈함, 밥의 윤기, 절제된 미감에 대한 기대를 미리 형성한다. 그래서 일본의 식당 메뉴판에는 ‘쌀’이 아니라 “아키타코마치로 지은 밥”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음식명은 재료를 넘어, 품종명이 곧 맛과 품질의 언어로 기능하는 사례이다.

 

채소 분야에서는 이러한 사례가 있다. 교토의 ‘교(京)’ 자가 붙은 채소, 이른바 교토 채소(京野菜)는 종자와 품종의 이름만으로도 도시의 전통과 격식을 보증한다. 교미즈나(京水菜) 같은 이름은 이 채소가 단순한 잎채소가 아니라, 궁중과 사찰, 가이세키 요리 문화와 연결된 식재료임을 말해 준다. 관광객은 교토에서 채소를 먹으며 도시의 미감과 계절성을 함께 소비한다. 종자명에서 시작해 음식명과 지역문화로 이어지는 연쇄를 산업화한 것이다.


이제 다시 전남 농업을 돌아보자. 전남에는 나주 배, 보성 차, 해남 고구마, 영광 굴비, 신안 천일염처럼 이미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농식품 자원이 많다. 그러나 상당수는 여전히 ‘산지명–상품명’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체 품종 육성한 것이 없거나 있어도 품종명 단계에서 지역성이 설계되지 않거나, 음식과 문화로 확장되는 구조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소비자는 ‘전남에서 생산됐다’라는 정보는 알지만, 그 작물이 어떤 기후와 환경, 어떤 농업 문화 속에서 태어났는지를 이름만으로 떠올리기는 어렵다. 따라서 품종 측면에서 전남 농업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토종·재래 자원과 신품종 개발 과정에서 ‘명명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품종의 기능성이나 외형뿐 아니라, 지역의 지형과 기후, 농업 환경이 이름에 어떻게 담길 수 있는지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름은 홍보 문구가 아니라, 생산·유통·관광을 잇는 공통 언어다.

 

둘째, 음식명이 품종명을 말하게 하는 식문화 설계가 필요하다. 전남의 로컬푸드 식당, 학교급식, 축제와 체험 프로그램에서 “어느 지역의 어떤 품종”을 메뉴 언어로 사용하는 연습이 축적되어야 한다. ‘쌀’이 아니라 ‘○○ 품종으로 지은 밥’이라고 말하는 순간, 농산물은 재료를 넘어 이야기가 된다.

 

셋째, 축제·관광·치유농업과 같은 지역문화의 무대에 종자 언어를 적극적으로 탑재해야 한다. 강과 발효, 갯벌과 염생식물, 해풍과 채소, 대숲과 죽순 같은 전남의 자원은 이미 훌륭한 스토리텔링 자본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종자 이름부터 일관되게 묶어내는 작업이다.

 

농업의 경쟁력은 생산비 절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엇을 먹느냐보다, 무엇을 먹는다고 말할 수 있느냐에 반응한다. 일본은 그 사실을 오래전에 이해했고, 종자명이라는 출발선에서 음식과 문화를 연결해 왔다. 전남 농업 역시 생산의 기술 위에 이름의 기술을 올릴 때, 산지를 넘어 브랜드로, 상품을 넘어 문화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전남 양파 산업의 ‘품종-소비 목적’ 연계 전략.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2.5.27.).

허북구. 2022. 기후변화 대비 배 품종과 지자체 독점 품종.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2.11.15.).

허북구. 2022. 지자체의 작물 품종 육성, 지역 농업 살린다.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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