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최근 전북 군산의 한 농가를 방문했을 때 ‘인디언 감자’라며 내놓은 작물을 맛보는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돼지감자(Helianthus tuberosus)를 인디언 감자로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 농가에서 재배한 것은 진짜 인디언 감자인 아피오스(Apios americana)였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두 작물은 전혀 다른 식물이다. 돼지감자가 국화과 식물이라면, 아피오스는 콩과 식물로, 땅속에 마디마디로 연결된 덩이줄기를 형성하는 독특한 생태적 특징을 지닌다.
아피오스의 원산지는 북미이며, 북미 원주민들이 오랫동안 주식처럼 먹어온 덩이뿌리 식물이다. 영어로는 인디언 퍼테이토(Indian potato) 또는 어메리컨 그라운드넛(American groundnut)라고 불리는데, ‘인디언 감자’라는 명칭 역시 한국에서 새로 만든 이름이 아니라 이 영어명을 직역한 것이다. 즉, 인디언 감자는 마케팅 용어가 아니라, 북미 식문화에서 이미 자리 잡은 식물의 정체성을 반영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맛은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한다. 밤고구마와 감자를 섞은 맛이라고 하기도 하고, 은은한 인삼 향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가 군산 농가에서 직접 맛본 아피오스는 삶은 밤과 매우 비슷한 풍미를 지니고 있었다. 일반 감자보다 조직이 단단하면서도 포슬포슬하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에 남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아피오스를 단순한 뿌리채소가 아니라, ‘맛과 건강을 동시에 갖춘 기능성 식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식품영양학적 측면에서 아피오스는 매우 흥미로운 작물이다. 일반 감자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2~3배 높고, 콩과 식물답게 이소플라본과 사포닌이 풍부하다. 당지수(GI)도 낮아 혈당 관리에 유리한 식재료로 평가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아피오스는 세계적으로 ‘땅에서 나는 식물성 단백질 자원’이라는 별칭까지 얻고 있다.
일본은 아피오스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일본에서는 아피오스를 일반 채소라기보다 기능성 건강식품 소재로 분류한다. 혈당 조절, 항산화, 단백질 공급, 여성 호르몬 균형에 도움이 되는 이소플라본 성분에 주목해 분말, 아피오스 차, 건강보조식품 캡슐, 고령자용 기능성 식품 등으로 가공·활용하고 있다. 일본식 표현으로 하면 아피오스는 ‘생활습관병 예방형 식재료’에 가깝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서의 6차 산업형 활용이다. 아오모리현, 나가노현, 홋카이도 일부 지역에서는 아피오스를 지역 특산물로 재배하면서, 이를 다양한 가공 디저트로 상품화하고 있다. 아피오스 센베이, 아피오스 만주, 아피오스 파운드케이크, 아피오스 소바, 아피오스 아이스크림 등은 단순한 식품을 넘어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이자 지역 브랜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 소량 생산 + 가공 디저트화 + 관광상품화’라는 일본 특유의 6차 산업 전략이 아피오스에서도 그대로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대만에서는 일본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아피오스를 활용한다. 대만은 전통적으로 ‘약식동원(藥食同源)’, 즉 음식과 약을 동일한 개념으로 보는 문화가 강하다. 이 때문에 아피오스는 약선탕, 보양죽, 한방차, 건강 스무디 원료 등으로 활용되며, 체질 개선과 면역 증진을 목표로 한 웰니스 식재료로 인식된다. 일본이 아피오스를 관광 상품과 디저트로 소비한다면, 대만은 체질과 건강을 관리하는 보양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아피오스를 ‘미래 식물성 단백질 자원’으로 본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아피오스 분말, 단백질 파우더, 에너지바, 글루텐프리 베이킹 믹스 등으로 가공되어 비건 식품 시장과 스포츠 영양식 시장에 활용되고 있다. 유럽 역시 탄소 저감과 지속가능 농업이라는 흐름 속에서 대두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단백질 작물로 아피오스를 주목하고 있다. 콩과 식물이라는 점에서 질소고정 능력이 있어 토양 개선에도 도움이 되고, 덩이뿌리 작물이라 탄소 저장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활용 방식을 종합해 보면 공통점은 아피오스를 ‘그냥 감자처럼’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 분말화, 기능성 스토리 부여, 건강·웰니스 프레임을 결합해 고부가가치 가공식품으로 접근한다. 즉 아피오스는 식량 작물이 아니라, 건강 콘텐츠로 유통되는 작물에 가깝다.
군산 농가에서 만난 아피오스는 아직 국내에서는 낯선 작물이다. 하지만 세계적 흐름을 보면, 아피오스는 단순한 특이 작물이 아니라, 기능성 식품, 지역 6차 산업을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플랫폼형 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재배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가공 스토리와 건강 서사, 그리고 소비자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하느냐이다. 인디언 감자 아피오스는 앞으로 한국 농업에서도 충분히 ‘미래형 기능성 작물’로 성장할 가능성을 지닌 식물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0. 전남 돼지감자, 소득 작물로 육성하려면.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0.10.09.).
허북구. 2026. 일본에서 6차산업의 성과와 한계, 전남 농업의 선택.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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