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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공모사업, 열심히가 아니라 증명해야 한다.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6-02-02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농업 관련 기관과 각 시·군 농업기술센터의 홈페이지 알림란을 들여다보면, 공모사업과 지원사업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가 있다. 치유농업, 농촌체험, 가공창업, 스마트농업, 청년농 육성, 농촌관광, 6차 산업, 웰니스 관광 등 사업 이름도 다양하고, 지원 규모도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이른다. 예산만 놓고 보면 농업은 여전히 ‘기회의 산업’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 수많은 공모사업이 실제 현장의 농민들은 “사업은 많은데, 막상 신청하려고 하면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 “교육 이수부터 실적 증빙까지 요구사항이 너무 많다”, “우리는 몇 년 동안 활동은 했는데,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대부분의 공모사업은 단순히 ‘아이디어’만 있으면 되는 구조가 아니다.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반드시 충족해야 할 조건들이 있다. 관련 교육 이수 여부, 자격증 보유 여부, 유사 사업 수행 실적, 협력기관과의 연계 경험, 안전관리 체계, 운영 인력 구성, 재무 구조 등 일종의 ‘참가 자격’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다시 말해 공모사업은 시작점이 아니라, 이미 일정 수준의 준비가 되어 있는 농가를 대상으로 하는 구조에 가깝다.

 

그러나 현장 농업의 현실은 다르다. 많은 농가들이 수년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가공품을 만들고, 방문객을 받고, 강의를 하고, 마을 행사에 참여해 왔다. 분명 활동은 있었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형태’로 남겨두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 몇 장, SNS 게시물 몇 개, 입소문 정도가 전부인 경우도 적지 않다. 교육 수료증은 어디에 있는지 기억나지 않고, 프로그램 운영 일지는 작성한 적이 없으며, 외부 강사 위촉장은 구두로만 받았다는 사례도 흔하다.

 

공모사업의 평가 구조는 냉정하다. 심사위원은 현장을 직접 방문하기보다, 제출된 서류와 증빙 자료를 통해 판단한다. 활동의 진정성이나 열정이 아니라, 문서로 남아 있는 이력과 숫자가 평가 기준이 된다. 아무리 오랫동안 농촌체험을 운영했더라도, 공식 교육 이수증이 없으면 ‘경력 없음’으로 분류되고, 아무리 많은 방문객이 다녀갔더라도, 운영 실적표가 없으면 ‘성과 없음’으로 처리된다.

 

이 때문에 많은 농가들이 좌절한다. “우리는 실제로 다 해왔는데 왜 인정이 안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 시스템에서 ‘해왔다’라는 사실은 기록으로 남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지금의 공모사업 구조는 농업을 더 이상 경험과 감각의 영역이 아니라, 기획과 문서, 데이터의 영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제 농업에서 중요한 역량은 단순히 ‘농사를 잘 짓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이 해온 활동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증명할 수 있는 능력, 즉 ‘농업 행정 역량’이 필수적인 시대가 되었다. 교육 이수는 단순한 형식 절차가 아니라, 향후 사업 참여를 위한 기본 자산이고, 사진 기록과 운영 일지는 농가의 경력 증명서이며, 사업 실적표는 다음 지원사업으로 가는 통행증이다.

 

현장에서 자주 보는 안타까운 사례는 이런 것이다. 같은 마을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한 두 농가가 있다. 한 농가는 매년 교육을 빠짐없이 이수하고, 체험 사진을 정리해두고, 방문객 명단과 프로그램 일지를 기록해 왔다. 다른 농가는 실제 활동은 더 많았지만,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몇 년 뒤 공모사업에 도전했을 때, 선정되는 쪽은 거의 예외 없이 전자다.

 

공모사업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간다. 준비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교육 이수증을 파일로 모아두고, 프로그램마다 사진과 간단한 기록을 남기고, 강의나 체험 운영 시 간단한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 이 기본적인 행정 습관이 농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이제 농업은 더 이상 땅에서만 경쟁하는 산업이 아니다. 서류와 기획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위에서도 경쟁하는 산업이 되었다. 농업기술센터 알림란의 공모사업들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고 있다. “농업도 이제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얻는 시대입니다.”

 

농촌의 많은 활동들이 ‘좋은 일’로만 남고 ‘기록되지 않은 일’로 사라지는 현실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농업은 성실함만으로는 부족하고, 증명이 가능한 성실함이 되어야 한다. 공모사업은 더 이상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알아주겠지’의 산업이 아니라, ‘지금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로 평가받는 산업이 되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1. 전남 농업, 농장 이름 갖고 성장 이끌어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1-10-18).

허북구. 2020. 허북구. 2021. 전남 농특산물의 상품화 제안, 허북구 농업칼럼. 세오와 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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