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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전남 봄나물, 지켜야 할 우리의 밥상 유산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6-03-12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봄이 오면 전남의 전통 시장은 초록빛으로 먼저 계절을 맞는다. 이른 새벽, 시골 어르신들이 산과 들에서 직접 캐온 나물들이 좌판 위에 소복이 오른다. 냉이와 달래, 머위 같은 익숙한 것부터 이름조차 낯선 산나물까지, 봄은 그렇게 시장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풍경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의 눈에는 한 가지 분명한 변화가 보인다. 해마다 나물의 종류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오랜 기간 전남의 전통 시장을 찾아 나물류의 종류와 변화를 조사해 왔다. 예전에는 소쿠리마다 다채로운 산나물이 담겨 있었지만, 이제는 몇몇 익숙한 품목만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재배가 가능해 대량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지는 나물은 오히려 관심 밖이다. 시장의 생명력은 소량이지만 제철에만 만날 수 있는, 그곳에 가야만 살 수 있는 나물에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나물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품목 수의 감소가 아니다. 전통 시장에서만 구할 수 있는 산나물은 농협 하나로마트나 일반 식품점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형 유통망은 규격화, 일정 물량 확보, 가격 안정성, 위생 기준 등 여러 조건을 요구한다. 야생 채취물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그 결과 마트에서 장을 보는 소비자들은 전통 나물을 접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잃는다.

 

이것은 단순한 유통의 문제가 아니라 음식 문화의 단절 문제다. 나이가 많은 세대는 나물의 종류에 따라 데치는 시간, 무치는 양념, 국으로 끓이는 법을 몸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물의 구입과 조리할 기회가 없으면 그 지식은 사라진다. 맛을 보지 못하면 경험은 축적되지 않는다. 도심 가정에서는 물론, 전남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로컬푸드 매장에서도 산나물을 상시 판매하는 곳은 드물다. ‘지역 먹거리’라는 이름은 있지만, 정작 지역의 봄을 상징하는 산물은 자취를 감춘 셈이다.

 

조리를 해야 주변사람들에게 기술이 전해지고, 먹어야 기억이 남는다. 음식 문화는 기록보다 실천 속에서 이어진다. 전통 나물이 식탁에서 사라지면 조리법도 함께 사라진다. 이는 단지 한두 가지 식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계절 감수성과 미각 체계가 약화되는 일이다. 봄이 와도 봄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 문제도 있다. 야생 식물 채취에 따른 자원 고갈 우려, 위생과 안전 문제, 가격 형성의 어려움, 채취 인력의 고령화 등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 비중이 절대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배화하여 지역 노인의 소득 보전과 일자리 창출, 먹거리 전통문화의 전승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해법은 충분히 모색될 수 있다.

 

예컨대 지자체 차원의 소규모 산나물 채취 교육과 자원 관리, 재배화 체계를 마련하고, 일정 품목에 대해 공동 선별·공동 포장 시스템을 지원할 수 있다. 전통 시장과 로컬푸드 매장을 연계해 ‘제철 산나물 코너’를 운영하고, 조리법 안내 카드나 시식 행사를 통해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일 수도 있다. 단순히 판매 공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맛의 경험’을 연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남은 대한민국 최대의 농업 생산지다. 그러나 농산물의 양적 생산만으로는 지역의 정체성을 지킬 수 없다. 산과 들에서 나는 소량의 봄나물은 경제적 규모로 보면 미미할지 모르나, 문화적 가치로 보면 결코 작지 않다. 그것은 지역 어르신들의 삶의 방식이자, 세대를 잇는 미각의 언어다.

 

봄이 되면 시장에 나가 나물을 고르고, 집으로 돌아와 데치고 무치며 식탁에 올리던 풍경은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계절을 받아들이는 의식이자, 지역과 연결되는 행위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소박한 의식을 다시 살리는 일이다.

 

전통 시장의 좌판 위에서 사라져 가는 봄나물을 지키는 일은, 곧 우리의 음식 유산을 지키는 일이다. 양보다 기억을, 편의보다 전통을 한 번쯤 더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봄은 매년 오지만, 봄맛은 노력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는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사라지는 손맛, 잊혀지는 전남의 맛 언어.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6.1.15.)

허북구 외. 2005. 문헌에 나타난 식용 가능 자생식물과 재래시장에서 유통되는 산채류의 비교 연구. 인간식물환경학회지 8(4):30–45.

허북구 외. 2011. 산채류에 대한 20대들의 인식, 식별능 및 식용경험 유무. 인간식물환경학회지 14(6):399–408.

허북구 외. 2024. 전라남도 동부지역에서 채식 관광용 자원식물의 유통 실태. 한국농어촌관과학회지 27(1):6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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