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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통의 전남 고로쇠 수액, 일본의 ‘숲의 물방울’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6-03-13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전남에서는 지리산을 비롯해 광양, 구례 등지에서는 오래전부터 고로쇠 수액을 마시는 전통이 이어져 왔다. 봄이 시작되는 시기에 산에 올라 단풍나무에 관을 꽂아 수액을 받고 그것을 마시며 봄을 맞이하는 풍습이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산이 깨어나는 시기, 나무에서 떨어지는 투명한 물방울은 봄이 왔음을 알리는 자연의 신호와도 같다.

 

예전에는 고로쇠 수액을 말통으로 사다 놓고 짭짤한 오징어나 마른안주를 곁들여 마시는 문화가 있었다. 수액을 한두 잔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한 통을 두고 여러 사람이 함께 마시는 방식이었다. 산속에서 고로쇠 수액을 나누어 마시는 풍경은 봄철 산촌 문화의 한 장면이기도 했다.

 

지금도 이 전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말통 대신 조금 작은 플라스틱 통에 담아 판매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방식은 여전히 ‘많이 마시는 물’이라는 인식에 가깝다. 고로쇠 수액은 봄철이 되면 산지에서 일정기간 동안 대량으로 채취되고, 소비자 역시 한두 병이 아니라 일정량을 구입해 며칠 동안 마시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소비 방식의 배경에는 고로쇠 수액의 약리적 효능에 대한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고로쇠 수액에는 칼슘과 칼륨 등 무기질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예로부터 “뼈에 이로운 물”이라는 뜻에서 골리수(骨利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많이 마시면 몸에 좋다는 인식도 널리 퍼져 있다. 그래서 고로쇠 수액은 한 잔의 음료라기보다 일정 기간 동안 일정량을 마셔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여겨지는 건강 음용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고뢰쇠수액이 몸에 좋다는 인식은 자연스럽게 판매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가 일정량을 확보해 마시는 것을 전제로 하다 보니 판매 역시 말통이나 대용량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가격 전략도 상대적으로 낮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고로쇠 수액은 ‘많이 마시는 건강 수액’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지면서 고급 브랜드 음료로 발전하기에는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한편 일본 홋카이도 일부 지역에서는 자작나무를 이용해 수액을 채취하는 문화가 있다. 일본의 한 칼럼에는 홋카이도 아바시리 근처 마슈호 전망대 아래 매점에서 작은 병에 담긴 투명한 음료를 발견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음료의 이름은 ‘숲의 물방울(森の雫)’이었다.

 

그 칼럼에 따르면 병은 우유병을 작게 만든 듯한 유리병이었고, 라벨에는 “자작나무 수액 100%”라고 적혀 있었다. 마셔 보면 물과 거의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른 느낌이 있으며 혀끝에 아주 약한 단맛이 남는다고 했다. 자작나무 수액에는 과당과 포도당, 아미노산, 미네랄 등이 들어 있어 은은한 단맛이 난다는 것이다.

 

홋카이도에서는 이 수액을 눈이 아직 남아 있는 4월 무렵에 채취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수액이 탁해지기 때문에 채취 시기도 매우 짧다. 그래서 자작나무 수액은 희귀한 자연 음료로 여겨진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이 이 수액을 단순한 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숲의 물방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작은 유리병에 담아 관광 상품으로 판매한다. 자연에서 얻은 물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든 것이다. 관광지 매점에서는 몇 백 엔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되는데, 작은 병 하나가 기념품처럼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수액을 많이 마시는 건강 음료로 설명하기보다 숲이 보내는 한 방울의 선물처럼 표현한다. ‘숲의 물방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작은 병에 담아 판매하면서 수액의 양보다는 자연의 이미지와 계절의 감성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양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파는 방식이다.

 

같은 숲에서 나온 물이지만 어떤 것은 말통에 담겨 판매되고, 어떤 것은 ‘숲의 물방울’이라는 이름을 얻어 작은 병에 담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상품의 가치와 가격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지리산의 고로쇠 수액 역시 단순한 물이 아니다. 겨울을 지나 봄을 알리는 숲의 신호이며, 산이 깨어나는 계절의 첫 맛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건강 효능 중심의 음용물로만 바라본다면 상품의 가능성은 그 범위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지역 자원을 브랜드로 만든다는 것은 자연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일이다. 고로쇠 수액도 지리산의 숲과 봄의 이야기를 담는다면 전혀 다른 가치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봄 숲에서는 지금도 투명한 물방울이 흐르고 있다. 그 물방울이 말통 속의 수액으로 남을지, 아니면 또 하나의 ‘숲의 물방울’이 될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0. 수액 음용 문화와 광양 고로쇠나무 수액. 광양뉴스(2020.3.16).

허북구. 2022. 광양 관광산업과 농식품 자원. 광양뉴스(202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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