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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농촌 독거노인 고립화, 대책이 필요하다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6-03-24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지난 주말 산을 찾았다. 하산길에 외딴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대문 밖에 노란 복수초가 유난히 눈에 띄게 피어 있었다. 멀리서는 대문 앞에만 꽃이 핀 줄 알았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집 안쪽에는 더 많은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마침 집에는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노인이 계셨다. 조심스럽게 꽃을 구경해도 되겠느냐고 여쭈었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 꽃을 키우는 것이 큰 낙이라고 했다. 꽃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보람이고,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꽃을 보러 집에 들리게되므로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수 커피까지 내어 주셨다.

 

집 주변에는 농사에 필요한 기계와 농기구가 가득했고, 집과 이어진 밭도 꽤 넓어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바쁜 농사일 틈틈이 꽃을 가꾸며 삶의 즐거움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에게 꽃은 취미를 넘어 노후의 시간을 밝히고 사람과 이어주는 매개였다.

 

이날 만난 복수초 한 송이는 단순한 꽃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그 꽃을 가꾸는 삶에는 ‘일’과 ‘쉼’, 그리고 ‘관계’가 함께 들어 있었다. 농사라는 노동 속에서도 꽃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전남 농촌이 직면한 현실과 겹쳐 보인다. 고령 인구 증가와 1인 가구 확산으로 농촌의 많은 어르신들은 물리적으로는 넓은 공간에 살지만, 사회적으로는 점점 고립되고 있다. 실제로 상당수가 하루 대부분을 TV 시청에 의존하며 보내고, 외부와의 교류가 제한적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제 농촌의 문제는 더 이상 ‘먹고 사는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일정 수준의 생계가 유지되더라도 삶의 만족도와 정서적 안정, 관계의 회복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농촌 고령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아니라 ‘삶의 내용’을 채우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사례가 대만의 ‘그린케어 스테이션(Green Care Station)’이다. 마을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조성된 생활형 커뮤니티 공간으로, 어르신들이 모여 원예 활동, 간단한 요리, 차 만들기, 수공예 등을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낸다. 중요한 점은 이곳이 단순한 프로그램 공간이 아니라 ‘머무르고 싶은 생활 공간’으로 할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식물을 키우고,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누는 과정 자체가 일상이 된다. 참여자들은 결과보다 과정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반복적인 활동 속에서 정서적 안정과 삶의 리듬을 회복한다.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유지하게 된다.

  

전남 농촌에도 이러한 접근이 필요하다. 마을회관이나 빈집, 유휴시설을 활용해 ‘생활형 치유 공간’을 조성하고, 원예·음식·공예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규모나 시설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모이고 관계가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특히 원예 활동과 음식 경험을 결합하는 방식은 치유농업의 관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식물을 기르고 이를 활용해 차를 만들거나 음식을 나누는 과정은 단순한 활동을 넘어 삶의 흐름을 회복시키는 구조로 작용된다. 이는 ‘일 → 식물 → 음식 → 관계’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이며, 앞서 만난 노인의 삶에서도 이미 실천되고 있었다.

 

산속 외딴 집 앞에 피어 있던 복수초는 단순한 봄의 신호가 아니다. 농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농촌의 미래는 생산의 확대에 있지 않고, 삶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전남 농촌도 고령자의 고립을 줄이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생활형 치유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각자도생의 치유농장과 대만 그린케어 스테이션.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7.31.).

허북구. 2025. 농촌 고령자를 위한 대만의 그린케어.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7.28.).

허북구. 2025. 대만의 그린케어와 한국의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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