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최근 농가 몇 곳의 부탁으로 6차산업 관련 공모사업 계획서를 검토한 적이 있었다. 서류를 넘기며 느낀 것은 한 가지였다.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정작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형식은 갖추었지만 내용은 비어 있었다.
요즘 농가 지원사업은 대부분 공모 방식으로 진행된다. 신청자가 많아 심사는 불가피하며, 동시에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준도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기본 자격을 갖추는 것은 출발선에 서는 조건일 뿐이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다른 질문이 따라온다. “왜 이 농가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서류는 그 자리에서 멈춘다.
검토했던 농가들도 기본 조건은 잘 갖추고 있었다. 관련 분야 교육 이수 시간, 공간 확보, 안전보험 가입 등 형식적인 요건은 빠짐이 없었다. 서류만 보면 준비된 농가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필요성이 보이지 않았다. 왜 이 사업이 꼭 필요한지, 지금 시점에서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체험농장 지원사업에 응모한 농가였다. 계획서에는 창고를 가공장으로 개조하고, 이를 활용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겉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확장처럼 보였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었다. “이미 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점이다.
이 농가는 체험 운영 경험이 없었다. 체험 실적도 없었고, 운영 과정에서 겪은 문제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다시 말해, 무엇이 어려운지 모르는 상태에서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체험을 해보니 동선이 불편하다든지, 위생 관리에 한계가 있다든지, 참여자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원이 필요하다는 흐름이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 계획서는 그 흐름이 없었다. 체험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도 없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설계도 없었다. 결국 읽히는 내용은 하나였다. 심사자 입장에서 보면 체험용 가공장을 짓겠다고 하나 체험을 해 본적이 없으므로 창고를 고쳐 쓸 요량으로 지원을 받겠다는 것으로 읽혔다. 사업이 아니라 국비를 활용한 시설 개선에 가까운 계획이었다.
6차산업은 생산에 가공과 체험을 더하는 구조다. 단순히 시설을 늘린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의 경험이 쌓이고, 그 경험이 상품과 프로그램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형태를 갖춘다. 이 과정이 없이 지원부터 받으려 하면 방향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공모사업은 단순히 돈을 지원받는 과정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사에서는 자연스럽게 비교가 이루어진다. 이미 체험을 운영해 보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사진을 포함해서 체계적으로 정리한 농가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농가가 같은 조건에 놓일 수는 없다.
현장에서 보면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교육을 듣고, 공간을 마련하고, 서류를 준비하는 데까지는 잘 간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현장의 경험과 시도’는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작은 규모라도 직접 해본 경험, 그 과정에서 생긴 문제,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계획서에 담겨야 한다.
지원사업은 준비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필요가 분명한 사람을 뽑는다. 준비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필요성은 경험에서 나온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모르면 설명할 수 없다. 설명이 없으면 설득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업계획서를 쓸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왜 이 지원이 필요한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아직은 신청할 때가 아닐 수도 있다.
먼저 작은 규모로라도 시작해 보는 것이 낫다. 체험을 실시해 보고, 사람을 만나 보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겪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 경험이 쌓여야 계획서는 살아 움직인다. 전남 6차산업도 결국 사람과 현장에서 출발한다. 지원은 그 다음이다. 무엇을 하려는지 분명하고, 그 과정에서 겪은 고민이 쌓여 있을 때 지원은 힘을 발휘한다. 지원을 받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지원이 될 때 비로소 사업은 자리를 잡는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전남 6차산업을 잇는 사람들, 은하철도처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03.27.).
허북구. 2026. 전남 농촌융복합산업에서 치유농업이 만드는 농촌회복.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02.08.).
허북구. 2026. 일본에서 6차산업의 성과와 한계, 전남 농업의 선택.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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